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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비좁은 사육장에 갇혀 정신질환 얻고 결국 병들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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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는 야생동물들] <6> 세상에서 가장 슬픈 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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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저우의 한 쇼핑센터에 있는 그랜드뷰 아쿠아리움에 살고 있던 북극곰 ‘피자’.(사진 애니멀 아시아 파운데이션 제공)© News1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아르헨티나 멘도사 동물원에는 북극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이 북극곰은 북극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1985년 미국 뉴욕 주 버펄로동물원에서 태어난 북극곰은 원래 ‘아서’라는 이름으로 생활하다 생후 10개월 때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 동물원으로 팔려갔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덥고 습한 날씨는 아서의 몸을 항상 초록색으로 뒤덮게 만들었다. 털에 녹조가 자란 것이다.

여덟 살이 되던 해 아서는 캘리포니아보다 더 더운 아르헨티나의 멘도사 동물원에 기증된다. 거기서 ‘아서(Arthur)’는 스페인식 이름 ‘아르뚜로(Arturo)’로 개명했다. 영하 40도의 기온에 적응하도록 태어난 북극곰에게 영상 40도가 넘는 남미의 날씨는 고문과도 같았다. 콘크리트 사육장 안에 있는 50cm 깊이의 수조는 헤엄은커녕 납작 엎드려야 겨우 몸을 물에 담글 수 있었다. 덥고, 열악한 사육장 안에서 아르뚜로는 무기력하게 누워 있거나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정형행동을 반복했다.

2012년 함께 살던 ‘페루자’라는 암컷 북극곰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아르뚜로는 텅 빈 우리에 혼자 남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아르뚜로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북극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원을 통해 아르뚜로를 기온이 낮은 캐나다의 동물원으로 옮길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7월, 22년을 남미의 무더위와 싸우던 북극곰 아르뚜로는 바다얼음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영원히 눈을 감고 말았다.

슬픈 북극곰은 또 있다. 중국 광저우의 한 쇼핑센터에 있는 그랜드뷰 아쿠아리움. 이곳에는 북극곰 ‘피자’가 살았다. 피자는 빛도 공기도 부족한 수족관 안에서 500여 종의 동물들과 함께 갇혀 지냈다. 아쿠아리움을 찾는 관람객들은 피자가 있는 수족관의 유리를 두드리고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다. 이런 상황이 고통스러운 피자는 언젠가부터 지친 듯 자리에 주저앉거나 벽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통풍구에 코를 대거나 발로 긁는 행동도 보였다.

슬픈 북극곰은 먼 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7월 국내 한 동물보호단체가 삼성 에버랜드를 방문했을 때 북극곰 ‘통키’의 사육장은 안내판이 철거된 채 사방이 두꺼운 가림막으로 가려져 관람이 중단된 상태였다. 동물보호단체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 30도가 넘는 한낮 폭염 속에서 물 한 방울 없는 방사장에 홀로 방치돼 있던 통키는 더위에 지친 듯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작은 대야 속에 고인 빗물에 발을 담그려고 애쓰는 모습이 포착됐다.

에버랜드의 북극곰 사육 및 전시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이미 과거에도 있었다.(<뉴스1> 2015년 6월24일 보도) 2년 전 비좁은 사육장과 열악한 환경 속에 살던 통키가 정신질환인 '정형행동'까지 보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에버랜드는 뒤늦게 북극곰 방사장 내 에어컨 설치, 외부 그늘막 확보, 수질 개선을 위한 풀장 펌프 설치, 행동풍부화 프로그램 확대 등 통키의 사육환경을 일부 개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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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남아 있는 북극곰은 대략 2만 6000마리인데, 40년 뒤엔 1만 7000마리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사진 Alan Wilson 제공)©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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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사육되던 또 다른 북극곰 ‘남극이’는 지난 1월 췌장암으로 대전 오월드에서 생을 마감했다. 남극이는 2002년 스테인 동물원에서 오월드로 팔려온 후 국내에서 15년을 살았다. 여름이 되면 동물원 동물 피서법이라며 얼음을 안고 부수어 먹는 남극이의 모습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지만 남극이에게는 피서가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북극곰은 곰과 동물이지만 바다얼음 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해양포유류로 분류돼 있다. 캐나다 미국 알래스카, 러시아, 덴마크의 그린란드, 노르웨이 등 북극권에 분포한다. 넓은 지역에 분포하기 때문에 개체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남아 있는 북극곰은 대략 2만 6000마리. 하지만 40년 뒤엔 1만 7000마리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이는 결국 북극곰의 생존을 위협한다. 여기에 인류의 무분별한 사냥과 관람을 위한 포획까지 더해지면 북극곰 개체 수는 더욱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북극곰은 육상에 사는 포유류 동물 중 가장 넓은 영역에서 생활하는 동물이다. 겨울이면 바다얼음 위에서 물범을 사냥하고 얼음이 녹는 여름에는 먹이를 찾아 먼 거리를 헤엄친다. 이처럼 광대한 자연을 누비던 북극곰들이 비좁은 동물원 사육장에 갇혀 정신질환을 얻고, 결국 병들어 죽고 있다.

북극곰은 코끼리, 유인원, 돌고래와 함께 동물원에서 사육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야생동물이다. 그래서 북극곰의 전시를 중단하는 동물원도 늘고 있다. 2016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동물원은 사육하던 북극곰 ‘툰드라’를 디트로이트 동물원으로 보내면서 북극곰 사육을 영구적으로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독일 라이프치히 동물원 등 해외 유명 동물원은 북극곰 전시를 중단한 지 오래다. 영국, 스위스를 비롯해 싱가포르의 동물원도 북극곰 전시 중단 선언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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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은 겨울이면 바다얼음 위에서 물범을 사냥하고 얼음이 녹는 여름에는 먹이를 찾아 먼 거리를 헤엄친다. 이처럼 광대한 자연을 누비던 북극곰들이 비좁은 동물원 사육장에 갇혀 정신질환을 얻고, 결국 병들어 죽고 있다.(사진 Alan Wilson 제공)©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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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사 린들리 영국 글래스고대 수의학과 교수는 “북극곰에게 열대성 온도는 엄청난 스트레스이며 높은 온도에 적응하는 것이라기보다 그저 대처할 뿐”이라며 “동물원의 수조가 아무리 크다 한들 북극곰에게는 매우 열악한 시설일 뿐 열대성 기후 속에서 북극곰의 동물복지는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북극곰의 복지 개선 기준은 캐나다 마니토바주의 북극곰 보호규정을 따른다. 이 규정에 따르면 북극곰 사육 시 총 면적은 최소 마리당 500㎡, 이중 북극곰사의 125㎡는 반드시 흙, 지푸라기, 나무껍질 등으로 덮여 있어야 한다. 내실은 최소 75㎡이고, 곰 1마리 추가 시 25㎡가 추가로 제공되어야 한다. 서식지는 최대한 야생과 가깝도록 디자인하고 곰이 야생에서 생활하는 것 같은 단조롭지 않은 환경을 제공해야 하며, 북극곰사는 관람객으로부터 180도 이상 보이도록 해선 안 된다.

또한 낮 동안에는 북극곰이 생활할 수 있는 플랫폼(Day Bed)과 콘크리트가 아닌 폭신한 바닥을 제공하고, 낮은 실내온도와 낮은 풀장의 온도를 유지해야만 한다.

이밖에 북극곰이 수영, 쉬기, 걷기, 뛰기, 오르기, 사냥하기, 채집하기 등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과 환경을 구성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지구 온난화로 빙하 면적이 감소하면서 사라져가는 북극곰은 기후 변화의 마스코트가 됐다”면서 “일각에서는 멸종위기 동물의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동물원에는 북극곰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북극곰의 입장에서는 사람 때문에 서식지가 사라지고 생존을 위협받는 것도 억울한데,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깨우쳐 주기 위해 평생을 동물원에서 더위와 지루함과 싸우다 죽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동물원에는 북극곰 말고도 생태적 습성이나 서식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동물이 많다”면서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동물원이 적어도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사육해서는 안 되고, 비록 동물원에서 태어난 동물이라 해도 타고난 습성을 유지하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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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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