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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고란의 어쩌다 투자] 은행은 정말 도둑놈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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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서 은행들 과도한 가산금리 지적

씨티ㆍ전북ㆍ광주, 기준금리 3배 폭리

그러나 ‘은행=도둑놈’ 프레임 탓 오해

간접 규제로 가산금리 마음대로 못 올려

폭리 지목 은행은 저신용자 대출 많기 때문

가산금리 낮춘 건 규제 아니라 경쟁자 출현

프레임.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다. 프레임을 만들면 복잡한 현상도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은행은 도둑놈들 집단이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은 99% 금융소비자가 한 번은 품었음 직한 프레임이다. 삼성전자가 열심히 반도체ㆍ핸드폰을 팔아 분기 15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그러면 삼성전자는 자랑스러운 ‘우리’ 기업이다. 국민은행, 신한은행이 분기 1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그러면 은행이 서민들의 고혈을 빨아 배를 채웠다고 비난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장사를 잘하면 고리사채업 했다고 욕먹고, 장사를 잘 못 하면 경영 실패라고 비판받는다”고 말했다.

이러나저러나 욕먹는 프레임에 은행이 갇힌 건 은행 탓이 크긴 하다. 비 올 때 우산 뺏었다. 돈 필요 없을 땐 돈 좀 빌려 쓰라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더니, 정작 돈이 필요할 땐 빌려준 돈부터 앞다퉈 회수해 간다. 그게 업계 용어로는 ‘리스크 관리’다.

또, 수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공유화했다. 외환위기 때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은행을 살렸다. 공적자금의 재원은 세금이다. 내가 납세자이거나 가족 중 누군가는 납세자다. 곧, 내 돈으로 은행을 살린 셈이다. 그렇게 살아난 은행이 돈을 벌었지만, 그 과실은 납세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은행들 임직원의 성과급 잔치가 벌어졌다.

그래서, 은행은 도둑놈들이다. ‘이윤 추구’가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인 ‘기업’이지만, 국가가 ‘인가’라는 진입 장벽을 만들어 영업을 허가했기 때문에 공공성도 담보해야 한다. 은행이 돈 벌어도 욕먹는 이유다.

중앙일보

주택대출 금리 오늘부터 인상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인상된 17일 여의도 한 은행에서 관계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는 9월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가 8월보다 0.05% 포인트 상승한 1.52%라고 전날 공시했다. 작년 12월 기준 1.56%에 이어 9개월 만에 기록한 최고치다. 9월 잔액기준 코픽스는 전월보다 0.02% 포인트 상승한 1.61%를 기록했다. 8개월 만에 올해 1월 기준 코픽스와 같은 수준으로 올랐다. 코픽스는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 역할을 하며 17일부터 시중은행의 대출 계약 때 상승분이 반영된다. 2017.10.17 lees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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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프레임에서 이번 국감 때 은행이 비난받은 부분 중 하나가 ‘가산금리’다.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문제 삼았다.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국내은행 일반신용대출 금리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16개 은행의 기준금리는 2013년 말 2.85%에서 지난 6월 말 1.5%로 1.35%포인트 떨어졌는데 같은 기간 대출금리는 1.02%포인트 떨어지는데 그쳤다. 기준금리보다 대출금리 감소폭이 작은 것은 이 기간 가산금리가 되레 0.33%포인트 올랐기 때문이란다. 특히 한국씨티ㆍ전북ㆍ광주은행은 가산금리가 기준금리의 3배에 달한다고 비판했다.

<관계기사 ‘금리 내렸는데 내 대출이자는 그대로?…은행들, 가산금리 올렸다’>

역시 은행은 도둑놈들이었을까. 은행 관계자는 “때리면 맞아야죠”라고 자조했고, 그 은행을 감독해야 하는 금감원 관계자는 “숫자는 맞지만 그렇게 해석하는 건 좀 과하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프레임 안에서는 괜히 나섰다간 돌만 맞는다. 그래도 변명거리가 있지 않겠나. 이들의 입장을 들어봤다. 결론적으로, 무조건 은행을 비난하기엔 가산금리에 대한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

①은행이 무턱대고 가산금리를 올렸나

은행의 대출금리는 은행이 정기예금ㆍ양도성예금ㆍ은행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때 평균 조달 원가를 감안해 정하는 내부 기준금리(MOR)에 가산금리를 더해 결정된다.

가산금리는 은행이 대출자의 신용도 및 은행의 목표이익률 등을 감안해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그간 가산금리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어떻게 산출되는지가 불투명하게 운영됐다.

중앙일보

자료: 박찬대 의원실, 금융감독원, 은행연합회. 그래픽=이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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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의원이 분석한 자료의 대상 기간(2013년 말~2017년 6월) 동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2.5%에서 1.25%로 1.25%포인트 떨어졌다. 은행의 대출 기준금리(일반신용대출)는 이보다 더 큰 1.35%포인트 떨어졌다. 가산금리만 0.33%포인트 올라갔다.

어떻게 정해지는지도 모르는데 가산금리만 올렸으니 은행이 장삿속에 가산금리를 무턱대고 올렸다고 비난하기 쉽다.

은행들이 왜 가산금리를 올렸는지는 개별 은행별로 사정이 다르겠다. 금감원 관계자는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과거 기준금리가 높았을 때에는 은행들이 오히려 가산금리를 낮춰잡았다”며 “기준금리가 내려가는데도 가산금리를 올렸다기보다는 이전에 과도하게 낮았던 가산금리를 정상화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기준금리가 10%라고 가정해 보자. 쉽게 이를 조달 원가라고 생각하자. 가산금리 산출식이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은행의 목표이익률만 반영된다고 가정한다. 목표이익률을 조달원가의 20%라고 은행이 정했다면, 은행이 돈을 벌기 위해 고객에게 추가로 지우는 금리 부담은 2%포인트다. 1000만원이라는 대출을 팔아 은행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20만원이다.

그런데 기준금리가 5%로 떨어졌다. 목표이익률이 여전히 조달원가의 20%라면 목표이익률로 얻을 수 있는 은행의 이익은 당초 대출액의 2%에서 1%로 줄어든다. 과거 1000만원 팔아 20만원 벌 수 있었는데 기준금리가 떨어지면서 수익이 반토막(10만원) 난 셈이다. 이전 수준으로 돈을 벌자면 목표이익률을 종전의 두 배로 올려야 한다.

그간 금리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올려 수익을 유지해 왔다. 그렇다고 은행들이 터무니없이 가산금리를 올린 것은 아니다.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2013년 3월부터 국내 은행들의 가산금리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자료가 공시돼 있다. 실제로 이걸 찾아보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보가 공개돼 있으니 무턱대고 가산금리를 올릴 ‘간 큰’ 은행은 없다.

게다가 지난 6월부터는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대출금리체계 모범규준’을 개정해 시행하고 있다. 개정된 모범규준에 따르면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인상할 때 내부 심사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산금리 수준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은행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대신 가산금리 인상 절차를 제대로 거쳤는지 자세히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간접적으로 인하 압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②씨티은행과 지방은행은 정말 나쁜 놈들인가

박찬대 의원 자료에는 특히, 씨티은행과 전북ㆍ광주은행이 가산금리 폭리를 취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이들 은행은 일반신용대출 기준금리 대비 가산금리가 3배 이상이나 높다.

숫자만 놓고 보자면 정말 도둑놈 수준이다. 그런데 가산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몇 배나 높은 상황이 벌어진 건 무엇보다 기저효과 때문이다.

조사 대상 기간 초기인 2013년 말, 씨티은행의 기준금리는 2.83%, 가산금리는 4.38%다. 가산금리가 기준금리의 1.7배다. 그런데 지난 6월 말엔 기준금리가 1.36%, 가산금리가 4.63%다. 가산금리가 16개 은행 평균치(0.33%포인트)보다도 더 적게 올랐지만(0.25%포인트), 기준금리가 워낙 낮아진 탓에 가산금리가 기준금리의 3.4배가 됐다.

씨티은행이나 전북ㆍ광주은행 등 지방은행이 다른 일반 시중은행에 비해 가산금리 자체가 높기는 하다. 이 역시 이들 은행 입장에선 억울한 부분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씨티은행 일반신용대출에는 카드대출 부분이 들어가 있고, 지방은행은 주요 시중은행에 우량 고객을 뺏기다보니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 대출 비중이 커 가산금리가 높다”고 설명했다.

박찬대 의원의 자료에 나온 은행별 가산금리는 신용등급별 대출액을 가중평균해 구한 수치다. 곧, 우량 등급 고객에 대한 대출액이 클수록 평균 가산금리는 낮게 정해진다.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서 지난 9월 기준 일반신용대출 금리 공시 자료를 보면, 국민은행의 신용등급 9~10등급 대출자에 대한 가산금리는 8.89%에 달했다. 그런데도 평균 가산금리가 1.28%로 국내 은행 가운데 가장 낮은 것은, 그만큼 우량 신용등급 대출자에 대한 대출이 많았기 때문이다.

③가산금리 규제가 대출금리 낮출 수 있나

정부가 민간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가산금리 수준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시장 경제 원리에 어긋난다. 또 은행별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일정한 수준(예를 들어 중간값)으로 가산금리 수치를 맞춘다면 어떤 은행은 과도하게 이익을 챙겨가고, 또 다른 은행은 거의 이익을 못 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가산금리를 정부가 정한다는 건 정부가 담합을 조장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직접 규제가 아닌 감독을 통해 가산금리를 마음대로 못 올리게 만든 간접 규제가 지난 6월 시행된 ‘대출금리체계 모범규준’ 개정안이다. 그럼 개정안 시행 후인 7월에 가산금리가 내려갔을까.

아니다. 공교롭게도 7월 은행들의 가산금리는 6월과 똑같은 3.29%였다. 신한은행의 경우엔 가산금리를 2.45%에서 2.71%로 되레 0.26%포인트 인상했다.

그리고 8월엔 3.15%, 9월엔 3.23%를 기록했다. 특히, 8월 한 달 사이 가산금리가 0.14%포인트나 낮아졌다. 그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나.

중앙일보

계좌 개설 100만 개 넘은 카카오뱅크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인터넷 전문은행 한국카카오은행(카카오뱅크)이 영업 시작 5일 만에 개설 계좌 100만 개를 돌파했다. 사진은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카카오뱅크 서울오피스에서 실행한 카카오뱅크 애플리케이션. 2017.7.31 yato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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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말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가 출범했다. 최저 연 2%대 금리의 신용대출 상품을 선보이며 돌풍을 일으키자 은행들이 반응했다. 신한은행은 가산금리를 8월과 9월에 전달보다 각각 0.22%포인트, 0.01%포인트 낮췄다. 간접 규제에도 꿈적않던 은행들이 경쟁자의 출현에는 즉각 반응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산금리를 일률적으로 통제하는 것보다는 은행 간 경쟁을 유도해 소비자 편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감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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