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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장훈의 퍼스펙티브] 혁신성장 성공은 정부의 응원단장 변신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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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에도 관료의 권력은 막강

투자·금융·조세 혜택 거머쥐고

새 규제 그물망 만들 수 있어

규제 권력을 가진 관료조직이

민간 활력 지원하는 슬림화된

응원단장 돼야 혁신성장 성공

대통령·여당, 관료가 혁신성장에

장애일 수 있다는 인식 공유하고

정부 혁신에 초당파적 합의 필요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의 성공 조건

모든 대통령은 자신이 역사에서 너무 늦게 등장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후한 편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통령은 나름의 역사적 업적으로 기억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초의 지역 간 평화적 정권 교체, 외환위기 조기 수습이라는 업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또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말 외환위기라는 암울한 기록을 남겼지만 금융실명제, 세계화 개방론 제창, 과거 군부 쿠데타 세력에 대한 심판 등의 업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 주도 성장론으로부터 소득 주도와 혁신성장의 병행 성장으로 선회하며 자신의 역사적 업적으로 기록될 수 있는 중대 실험에 들어섰다고 필자는 본다. 문 대통령이 지향하는 혁신성장을 필자가 이해한 바대로 정리하자면 ▶우리 경제가 대기업 중심 체제로부터 벗어나 중소기업·혁신창업과 같은 다양한 주체가 이끄는 경제 주체의 다양화로 나아가자는 것 ▶이 과정에서 과거 발전국가 시대처럼 정부가 민간을 규율하고 감독하는 체제에서 벗어나 민간이 혁신을 주도하고 정부는 지원 역할에 머무는 정부-기업 관계의 전면적 혁신을 지향하는 것 ▶이를 위해 단순히 기업-정부 관계의 변화만이 아니라 고등 교육과 초·중등 교육의 혁신, 평생 직업교육과 재훈련 과정 혁신을 통해 민간 부문을 오늘날 IT 경제의 핵심적 가치인 유연함·창의력 중심으로 재편하자는 것을 포함하는 거대 비전으로 이해된다.

중앙일보

민주화 이전과 사회적 혁신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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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말해 혁신성장론은 그동안 다양한 이름으로 시도되었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김대중 대통령), 동반성장론(이명박 정부), 창조경제(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딛고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 교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역사적 업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교체는 사실 우리 정부만 시도했던 것은 아니다. 1970~80년대에 걸쳐 고통스럽게 진행된 전후 경제모델 위기와 전 지구적 세계화 확산을 겪으면서 선진 국가들도 열띤 논쟁을 거듭했던 이슈였다. 사회과학자들은 이러한 서구 국가의 패러다임 전환을 ‘경쟁국가(competition state)’ ‘혁신국가(innovative state)’ ‘슘페터적 근로국가(Schumpeterian Workfare state)’라는 다양한 개념을 통해 이론화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여기서 우리는 ▶혁신국가를 향한 노력들이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에서는 왜 실패했는지를 민주화의 이중효과와 세계화의 이중효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을 정리해 보자.

민주화의 이중효과와 세계화의 이중효과

얼마 전 혁신성장 전환의 기관사라고 할 수 있는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혁신성장은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와 사회 전체가 응원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김 부총리의 발언처럼 혁신성장의 첫 번째 목표는 정부가 엄격하고 꼼꼼한 김성근 야구감독처럼 선수들(즉 민간기업과 노동 부문)의 모든 활동을 세세하게 감독하고 보상과 처벌을 내리는 전능한 국가로부터 탈피해 민간이 자율적으로 활력을 발휘하도록 무대 아래의 역할에 머무는 것이다. 김 부총리가 큰 방향을 제대로 짚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어떻게 하면 지금의 규제 중심의 강한 국가가 무대에서 내려와 한 걸음 물러서서 민간 부문을 지원하는 역할로 대변신할 수 있는지의 구체 전략은 언급하지 않았다. 필자는 과거 한국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노력들을 면밀하게 돌아봐야만 그 구체적 전략이 떠오를 수 있다고 본다.

달리 말해 지난 30년간 구조적 환경으로서의 민주화와 세계화가 한국의 국가 능력, 정부의 대내외적 위상에 불러온 양날의 효과를 예민하게 인식할 때에만 비로소 대전환 로드맵이 보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87년 이후 민주화는 시민들의 삶의 자유, 개성·인권의 중시와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신장시켜 왔지만 경제 패러다임 전환에는 이중적 효과를 가져왔다. 민주화는 한편으로 과거 발전국가 시대부터 축적해 온 막강한 정부 권력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용해 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핵심 중추인 관료조직의 힘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체적으로 말하면 국가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 권력은 국회의 다양한 권한 강화, 종종 출현하는 여소야대 정부,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제약이 늘어나면서 과거처럼 기업과 노동 부문 위에서 절대적으로 군림하지 못하고 크게 약화되었다(물론 전반적인 권력 약화의 흐름 속에서도 기업들에 대한 탈법적 혹은 그와 유사한 무리한 통제와 요구가 커다란 정치 스캔들로 비화하고는 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의 또 다른 축인 관료조직의 힘은 민주화 이후에도 그다지 축소되지 않았다. 각종 위원회 제도 도입, 시민단체에 의한 모니터링 증가 등을 통해 관료조직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업과 노동 부문에 대한 관료조직의 규제 권력은 방대하고 촘촘하고 치밀한 채로 유지되고 있다.

관료조직 축소 위해 대통령 리더십 절실

앤드루 갬블이 영국 대처리즘의 신자유주의화를 분석하면서 예리하게 지적했듯 규제를 줄이면서 정부의 역할 축소라는 대전환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 달리 말해 관료조직의 방대한 규제 권력 축소를 위해서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휘하고 조율하며, 반대 세력을 설득하거나 돌파할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역설적 과제가 성립되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혁신성장이라는 역사적 전환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100만 명이 넘는 방대한 관료조직을 적절한 시점에 깐깐한 야구 총감독 역할에서 유쾌하고 겸손하면서도 민간을 돕는 역할을 하는 영리한 응원단장(smart cheer-leading state)으로 변신시켜야만 한다. 역대 대통령이 공통적으로 시도했던 과제였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었다. 임기 초반 대통령들은 정부조직 개편과 대규모 인사를 통해 관료조직을 긴장시키곤 했지만 이내 역대 대통령들은 관료들과 타협의 길로 들어서곤 했다.

물론 대통령들은 단기적 성과를 내야 하는 정치적 압박에 시달리고 임기 5년의 대통령은 평생 고용을 보장받는 공무원들을 효율적으로 지휘·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창조경제·동반성장·혁신성장이라는 표지는 계속 바뀌지만 관료조직의 권력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했던 것이 그동안 우리의 쓰디쓴 경험이다.

문 대통령, 혁신경제 전환은 역사적 과제

이렇다 보니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로봇·핀테크·바이오산업 혁신과 같은 신산업 분야에서도 과거 발전국가 시대의 양상은 여전하다. 정부는 한편으론 혁신 산업 성장을 위한 투자·금융·조세의 두둑한 혜택을 손에 쥔 채 ‘저 높은 곳에서’ 대기업·중소기업·벤처창업자들을 마치 양떼 몰이하듯 관리하게 된다. 게다가 혁신산업으로의 혁명적 이행은 분명 새로운 사회적 규칙과 제도의 대대적 정비와 적응을 필요로 하게 되니, 관료조직은 새로운 규제의 거대한 그물망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거리에 다니는 자동차의 절반이 자율주행차라고 할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새로운 규칙과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가를 상상해 보라. 신호체계, 교통사고 시 보험 처리 방식, 자동차 제조사와 자율운전자의 사고 책임 경계 등등.

주화와 더불어 세계화 역시 이중적인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 경제는 세계화 개방에 따라 과거 냉전시대보다 압도적으로 세계적 경쟁에 노출되어 있지만, 동시에 세계화 개방에 따른 국내적인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밖으로는 개방된 국제경제 (무)질서 속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지만, 동시에 안으로는 양극화의 갭을 메꾸고 사회적 평화를 동시에 유지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그림 참고). 결국 혁신성장의 한 축에는 정부-기업 관계의 전면적인 혁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한 축에는 글로벌 경쟁과 국내의 사회적 평화 사이의 균형이라는 과제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정리하면 문 대통령이 혁신경제로의 전환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통해 역사책에 기록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를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관료조직은 유능한 집단이지만 정부조직의 유능함이 민간 부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꽃피우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대통령과 참모들, 여당과 야당이 깊이 공유해야 한다. 둘째, 대통령이 관료조직을 유쾌하고 스마트한 지원 조직으로 변신시키는 일은 한 정부의 임기 안에 마무리되기는 어려운 과제다.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은 정부의 혁신이라는 과제가 한국 경제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이해 위에 이념을 넘어선 초당파적 합의와 지속 추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다른 모든 개혁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혁신 전환의 수혜자들의 지지를 강력히 끌어모으는 동시에 개혁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최소한의 바람막이를 세워주는 균형 감각을 가져야만 혁신성장은 지속 가능하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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