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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앵커브리핑] 수인번호 503…'더럽고 차가운 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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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여기는 사우나 한증막"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던 소설가 김하기는 숨 막히는 더위를 견디기 위해 기막힌 비법들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콩국수를 만들어 먹었다면서 동료 작가 구효서에게 자랑을 늘어놓았지요.

- 컵라면에 뜨거운 식수를 부은 다음 면발을 헹궈낸다.

- 구치소 매점에서 구한 두유를 라면 용기에 쪼르륵 붓는다.

- 조미김을 아껴두었다가 김 표면에 오돌토돌 붙어있는 소금을 하나하나 털어낸다.

그러니까 이른바 김하기 식의 감방 콩국수 레시피였던 셈이지요.

그는 감방에서 오징어회무침이며 생크림 케이크까지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감옥 안은 부족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지요.

그러나 구효서는 갇혀있는 친구의 마음을 다르게 읽어냈습니다. "왜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콩국수 해 먹는 이야기를 썼는지… 나는 다 알 것 같다…. 바깥에서야 굳이 혼자 웃고 울고 할 필요가 없지만 넌 혼자 뛰고 혼자 웃고 혼자 절망하고….. 그러겠지"

세상과 단절되어 사각의 벽 안에 갇힌다는 것. 수인을 뜻하는 한자, 그 작은 네모 안을 가득 채운 사람의 형상은 감옥에 갇힌 자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더럽고 차가운 감방에서 지내고 있다."

수인번호 503번. 갇혀있는 전직 대통령 측은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시민들은 이제 탄핵된 전직 대통령이 갇혀있는 독방의 구조까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바닥 난방시설과 TV. 사물함과 수세식 화장실. 평균 1인당 수용면적의 네 배. 하루 한 번 꼴로 진행된 변호인 접견과 열흘에 한 번 꼴인 구치소장 단독 면담. 이른바 범털에게도 잘 제공되지 않는다는 매트리스와 병원에서 진행된 건강검진.

대통령의 딸이었고, 그 자신이 대통령이었던 사람.

다른 수인들에게는 호사의 극에 가까운 이런 환경과 조건도 그에게는 단지 더럽고 차가운 공간이었을까.

그래서 그가 감내하고 있다는 고통의 시간, 그 참담함의 깊이를 평범한 우리들은 감히 가늠하기 어려운 것일까.

소설가 김하기의 감방 콩국수 레시피와 전직 대통령이 말하는 '더럽고 차가운 감방'

우리는 누구에게 연민을 느껴야 하는가.

오늘(18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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