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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韓·美가 개발한 유전자 가위, 중국만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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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바이오산업을 획기적으로 바꿀 유전자 교정 기술 분야에서 전 세계 임상시험을 독식하며 상용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과학자들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란 유전자 교정 기술을 이용해 인체 세포에서 질병 유전자를 차단하고 대신 암세포를 찾는 유전자를 추가해 암이나 유전병과 같은 난치병을 치료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중국의 발 빠른 행보에 바이오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도 유전자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상용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바이오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법적 규제에 막혀 기초연구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임상시험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진행하더라도 기초연구만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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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 임상시험 90% 중국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부분만 정확하게 잘라낼 수 있는 효소 단백질이다. 잘린 부분은 정상 DNA로 대체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일반인도 몇 시간 교육을 받으면 쓸 수 있을 만큼 간단하면서도 정확도가 높아 바이오산업에 혁명을 가져올 기술로 꼽힌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6일 미국 국립보건원(NIH) 임상시험 데이터베이스를 인용해 "현재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관련 임상시험은 모두 10건이며, 이 중 9건이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나머지 1건은 미국 인간게놈연구소의 빈형 치료 임상시험이었다.

중국 과학자들은 난치성 빈혈에서부터 자궁경부암·에이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난치병 환자 치료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적용하고 있다. 근육통 치료 연고처럼 피부에 발라 유전자 가위를 전달하는 기술도 세계 최초로 환자에 시험하고 있다. UCLA의 도널도 콘 교수는 "미국도 유전자 가위 임상시험을 서두르고 있지만 대부분 중국이 1~2년 전에 선점한 분야"라며 "중국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이 분야에서 계속 다른 나라를 한 걸음 앞서 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 생명윤리법에 막혀 해외서 실험

사이언스지는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 완화 노력이 중국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상용화를 주도하는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대학이나 병원의 자체 윤리위원회만 통과하면 자유롭게 유전자 가위 임상시험을 할 수 있다. 기초 연구도 자유롭다. 인간 수정란에 대한 유전자 가위 실험도 2015년 세계 최초로 중국에서 성공했다. 미국은 국립보건원(NIH) DNA 자문 기구와 식품의약국(FDA) 그리고 기관 자체 윤리위원회 등 3단계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유럽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 미국과 유럽은 중국에 자극받아 임상시험 관련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연구 목적에 한해 인간 수정란에 대한 유전자 가위 실험을 허용했다. 그 덕분에 지난 8, 9월 미국과 영국에서 잇따라 인간 수정란에서 질병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제거한 연구 성과가 나왔다.

반면 한국은 미국과 함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개발을 주도했지만 인체 대상 연구나 임상시험에서는 크게 뒤처지고 있다. 2013년 초 당시 김진수 서울대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 등 5개 그룹이 거의 동시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개발했다. 김진수 현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지난 8월 미국 연구진과 함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인간 수정란에서 질병 유전자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으며, 9월에는 영국 연구진과 수정란이 태아로 자라는 데 핵심적인 유전자의 기능을 역시 유전자 가위로 알아냈다. 김 단장은 "국내 생명윤리법이 인간 수정란의 유전자 조작을 금지하고 있어 해외에서 모든 실험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국회서 법률 개정 움직임, 정부도 호응

과학계의 반발이 잇따르자 국내에서도 제도 개선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11일 신용현 의원(국민의당)은 유전자 치료 범위를 규정된 것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할 수 없는 것만 정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도 지난달 27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주재로 생명공학종합정책심의회를 열고 유전자 교정 관련 규제 완화를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동률 차병원 교수는 "인간 배아줄기세포 복제나 치료제 임상시험도 모두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번 기회에 바이오산업을 옥죄는 규제를 대거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완 과학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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