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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공권력 남용"… 검찰서 뒤집은 '백남기 물대포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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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직사"… 구은수 前서울경찰청장 등 4명 과실치사 기소]

- 폭력시위 막는 과정이었지만…

2015년 철제 사다리·쇠파이프로 시위대 저지하는 차벽 부수고 경찰버스에도 방화 시도

- 살수차 운용 규정 위반 결론

당시 경찰 "모든 집행과정 정당"… 검찰 "살수, 가슴 위 바로 겨냥"

같은 자료 놓고 정반대 결론

2015년 서울 도심 폭력 시위 중 경찰의 살수차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숨진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과 관련해 검찰이 "국가 공권력을 남용한 업무상 과실치사"라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검찰은 17일 당시 현장 지휘자였던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신윤균 당시 서울청 제4기동단장, 사수 요원이었던 한모·최모 경장 등 4명을 이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지휘·감독 책임이 없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 결과는 '살수차 운용 지침 위반 여부' 등 사건 직후 경찰이 밝혔던 사건의 진상과 다른 부분이 많다.

백남기씨는 2015년 11월 14일 서울 도심 폭력 시위 중 경찰 버스를 밧줄로 끌어당기다 살수차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고, 지난해 9월 숨졌다. 이날 집회는 2008년 '광우병 시위' 이후 최대 규모였다. 당시 민노총과 전교조 등 53개 단체 소속 약 7만명(경찰 추산)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 쪽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시위를 주도한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은 "언제든 노동자·민중이 분노하면 서울을, 이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자"며 "정권의 심장부인 청와대를 향해 진격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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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벽 부수고 경찰버스에 불붙이려 했던 시위대 -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한 집회 참가자가 사다리로 경찰 버스를 파손하려는 모습(왼쪽 사진). 시위대 일부는 경찰 버스 주유구에 불을 붙인 신문지를 넣으려고 했지만, 매연 저감 장치를 주유구로 착각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AP 연합뉴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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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버스 700여 대로 차벽(車壁)을 만들어 저지했다. 시위대는 또 쇠파이프와 철제 사다리를 휘두르며 경찰 버스를 부수고 각목과 쇠파이프를 경찰관들에게 휘둘렀다. 흥분한 일부 참가자는 경찰 버스 매연 저감 장치가 주유구인 줄 알고 불붙인 신문지를 집어넣으려 했다. 밧줄로 경찰 버스를 묶은 뒤 끌어당기는 방법으로 차벽 무너뜨리기를 시도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이었던 백씨는 종로1가에서 밧줄로 버스를 끌어내려고 시도하던 중 살수차 물대포에 맞았다.

폭력 시위의 피해는 컸다. 경찰 수십 명이 다쳤고, 경찰 버스 50여 대가 파손됐다. 시위를 주도했거나 백씨처럼 과격 행동을 한 참가자 51명이 입건됐다. 한 위원장은 3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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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 맞고 쓰러진 백남기 - 경찰이 시위자들을 제지하려고 쏜 물대포에 백남기 농민이 맞아 쓰러지자 다른 참가자 두명이 백씨를 일으키려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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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씨가 살수차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것과 관련, 경찰은 당시 "물대포 살수는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고, '경고 살수 이후 곡사(曲射·물대포를 공중으로 15도 이상 포물선을 그리며 쏘는 것) 살수, 마지막에 직사(直射) 살수' 절차를 모두 지켰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구은수 당시 서울청장은 사건 다음 날 기자간담회에서 "백씨가 다친 것은 안타깝지만 살수차 사용은 규정에 위반되지 않았다"며 "경찰 입장은 민중총궐기가 불법 폭력 집회였다는 것이고, 시위대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경찰은 집회 직후 '살수차 운용 보고서'를 작성하며 경찰이 시위대에 경고 살수를 한 차례, 곡사 살수를 3차례 한 뒤 직사 살수를 2회 했다고 기록했다. 이철성 현 경찰청장 역시 지난해 국감에서 "(백씨가) 경찰 물대포에 희생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모두 살수차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 영상 등을 근거로 한 것이다. 경찰은 당시 CCTV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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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17일 내놓은 수사 결과는 경찰의 이런 조사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검찰은 사건 당시 살수 요원들이 경고나 곡사 살수 없이 직사 살수로 4차례 물대포를 쐈으며 '시위대의 가슴 윗부분은 겨냥해서는 안 된다'는 살수차 운용 규정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또 "살수차 점검·정비를 소홀히 해 수압 조정 장치가 고장 난 상태로 살수차를 운용했다"는 혐의도 적용했다. 구 전 청장과 신 전 단장에 대해서 '위법한 직사 살수가 이뤄지는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방치했다'고 업무상 과실을 인정했다. "살수차 수압이 기준 이상이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밝혔다.

검찰도 이번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살수차 CCTV 영상을 증거로 제시했다. 지난해 국감에서 공개된 CCTV 영상에선 경찰이 곧바로 백씨에게 살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경찰 안팎에서는 "똑같은 자료를 보고 정반대 해석을 내놓은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찰은 이날 오후 "검찰 수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백남기 농민과 유족에게 사과와 애도를 표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이 청장 등 지휘부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해왔었고, 그 결과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알아 달라"고 말했다.

검찰이 고발 접수 후 2년이 지나서야 수사 결과를 내놓은 데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검찰은 이날 "공무 정당성도 일부 있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며 "사안이 중대해 해외 유사 사례를 검토하고, 최대한 확인 작업을 거치느라 오래 걸렸다"고 밝혔다.

[이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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