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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세계는 지금] “너무 달라서” vs “더 잘살아서” 전세계로 번지는 분리독립운동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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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화적 차이로 ‘마이웨이’… 폐쇄적 민족주의 불붙나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을 허용하면 다른 지역들도 같은 일을 시도할 것이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 대학 연설에서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카탈루냐 사태가 자칫 유럽의 다른 지역들을 자극해 ‘분리독립 쓰나미’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최근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와 스페인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분리독립 투표를 강행하면서 전 세계에 분리독립 열풍이 불어닥쳤다. 그 원인과 배경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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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카탈루냐의 독립을 외치다 스페인 프랑코 독재정권에 희생된 루이스 콤파니스 사망 77주기인 15일(현지시간) 콤파니스 묘역에 독립이라고 적힌 깃발이 설치되고 있다. 바르셀로나=AP연합뉴스


◆이라크·스페인 달군 독립의지…“폐쇄적 민족주의 촉발 우려”

KRG는 지난달 25일 분리독립 찬반 투표에서 92%가 넘는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었다. 이를 근거로 이라크 중앙정부를 상대로 자치권 확대 및 독립국 수립을 위한 논의를 요구해 왔다.

이를 거부하던 이라크 중앙정부는 16일 KRG가 관리해 오던 키르쿠크의 주요 군사기지와 석유회사를 장악했다. 앞서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KRG가 분리독립 투표 결과를 취소해야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라크 바그다드 루사파 지방법원은 “이라크 대법원 결정에 반해 투표를 실행했다”며 KRG의 분리독립 투표를 관리·진행한 투표관리위원회의 헨드렌 살레 의장과 의원 2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라크 중앙정부는 지난 13일 쿠르드족이 장악한 북부 키르쿠크 유전지역을 뺏기 위해 군사작전을 개시했고, KRG가 민병대인 ‘페슈메르카’ 수만명을 배치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결국 3일 만에 쿠르드계가 장악한 주요 지역이 이라크군에 넘어갔다.

지난 1일 분리독립 투표를 강행한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지난 10일쯤 독립을 공식 선언할 계획이었지만 스페인 중앙정부의 반발로 한발 물러났다. 카를레스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은 독립절차를 일시 중단하고 중앙정부에 대화를 촉구했다. 국제사회의 중재도 요청했다.

하지만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대화를 거부했다. 라호이 총리는 오히려 “독립선언을 한 것인지 밝히라”고 자치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푸지데몬 수반은 16일 “독립 추진을 두 달간 유보하겠다”며 스페인 측에 재차 대화를 요구했다. 이에 스페인 중앙정부가 헌법 155조를 발동해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박탈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주변국 시선도 싸늘하다. 카탈루냐의 독립이 자칫 폐쇄적 민족주의 확산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유럽대륙의 주요 전쟁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EU 내 골칫거리인 난민·이민자 문제, 테러리즘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필립 램버트 유럽의회 의원은 카탈루냐의 독립에 대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보다 유럽 통합정신에 위협을 주는 사건”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유럽부문 에디터 토니 바버는 ‘카탈루냐의 위기가 유럽 질서에 위협을 미치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유로존 금융위기가 수십년에 걸친 EU의 통합 노력을 망칠 뻔한 상황에서 카탈루냐 민족주의자들의 독립 추진은 유럽 내 민족주의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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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국경절인 지난 12일(현지시간)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분리독립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바르셀로나=AP연합뉴스


◆두 가지 분리독립 목소리…“너무 달라서” vs “더 잘 살아서”

외신들은 최근 들불처럼 일어난 분리독립 요구의 배경을 문화적 차이와 경제적 요인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분리독립 동기는 고유의 문화와 언어 보존 등 다양하지만 대부분 재정, 수익 등 경제적 원천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싶은 열망으로 압축된다”며 “특히 최근 유럽에서 일어나는 분리독립 움직임은 종교적 억압보다 경제적 이익이나 국내 정치적 대표성 확보가 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쿠르드족 인구는 약 3000만명으로, 중동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민족이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프랑스 등 강대국에 의해 인위적으로 나뉜 국경선 탓에 국가를 수립하지 못한 채 터키·이라크·이란 등지로 흩어져 박해를 받았다. 이라크 내 쿠르드족은 사담 후세인 정권 당시 이란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10만여명이 학살되는 수난을 겪었다. 단일민족으로 이뤄진 독립국에 대한 열망이 큰 배경이다.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의 독립 움직임은 종교적 문제에서 시작됐다. 분리주의 반군은 1989년부터 인도로부터의 독립 및 파스키탄과의 합병을 요구하며 무장항쟁을 이어가고 있다.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의 끝없는 교전으로 현재까지 최소 7만명이 사망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인도 대륙은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됐다. 이 과정에서 카슈미르 북부는 파키스탄령, 남부는 인도령으로 분할됐다.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인 카슈미르 주민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영국 BBC방송 기자 출신 국제정세 전문가인 팀 마셜은 “유럽 식민주의로 인해 아랍의 통치자들은 자신이 속한 부족과 이슬람 종파에게만 호의를 베풀게 됐다. 유럽 식민주의 최악의 유산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카탈루냐도 표면적으로 민족적·문화적 차이를 독립운동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경제적 요인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카탈루냐 인구는 스페인 전체의 16%에 불과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의 19%를 담당하며 스페인 전체 수출액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경제 대들보다. 특히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자신들이 매년 중앙정부에 조달하는 164억유로(약 21조9000억원)의 세금이 실업, 재정 파탄으로 허덕이는 중앙정부에 투입되는 데 불만이 쌓였다. 힘겹게 번 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는데, 이런 분위기가 분리독립 투표 강행으로까지 이어졌다.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카탈루냐가 또 다른 스페인 자치지역인 바스크와 달리 분리독립 실행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인 자신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100여개 독립 목소리…“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세계 각국에서 표출되고 있는 분리독립 목소리의 배경도 큰 틀에서는 문화의 차이나 빈부 격차로 귀결된다.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아주와 베네토주는 오는 22일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두 지역에서 거둔 세금이 낙후한 남부지역을 지원하는 데 쓰이는 것에 반발한 게 주요 배경이다. 롬바르디아와 베네토는 각각 이탈리아 GDP의 20%와 10%를 차지할 정도로 부유한 지역이다. 당초 분리독립 투표를 시행하려 했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을 존중해 자치권에 대한 투표로 축소했다. 앞서 베네토주는 2014년 3월 인구 73%가 참여한 비공식 온라인 국민투표에서 89%가 분리독립을 지지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텃밭인 남동부 바바리아 지역은 뮌헨을 주도로 하는 가장 부유한 자치지역이다. 적극적으로 실행한 적은 없지만 오랫동안 독립을 갈망해 왔다.

브라질의 파라나주와 산타카타리나주, 히우그란지두술주 등 남부 3개주 연합단체인 ‘남부는 나의 조국’(SIM)은 수년간 계속되는 정치·경제적 혼란 속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지난 7일 두번째 비공식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치렀다. 2014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주민투표 부결이라는 결과를 얻은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벨기에 플랑드르와 덴마크 페로섬(Faroe Islands), 프랑스 코르시카섬 등 전 세계 100개가 넘는 지역에서 독립의 꿈을 키우고 있다.

비영리 언론매체 더 와이어는 “독립운동은 몇몇 이상주의자들이 시작하지만 자유를 향한 열망이 뿌리를 내려 빠르게 확산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자치정부가 분리독립을 선언하더라도 중앙정부와의 갈등과 독립 비용 조달 등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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