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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기 쓰기, 언제가 마지막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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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일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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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일기를 써본 게 언제인가요? ⓒPixabay


"엄마, 추석 연휴 기간에 선생님이 일기 2개만 쓰라고 했는데 나 3개 쓸 거다. 우리 찜질방에 간 게 월요일이었나?"

"아니 일요일. 월요일엔 놀이동산 갔잖아."

"아, 맞다."

"엄마는 6학년 때 매일 일기 썼는데... 선생님이 쓰라고 하지 않아도."

"왜?"

"그냥... 좋았으니까."

4학년 딸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그땐 그랬다. 일기 쓰는 게 좋았고, 좋아서 많이 쓰면 선생님이 상도 줬다. 칭찬을 받으니, 글쓰기에 자신감이 붙었다. 초등학교·중학교 때는 일기로, 고등학교 때는 편지로 틈틈이 글을 썼다. 글 쓰는 게 재밌었고,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기자를 꿈꿨다. 대학에 가서 글쓰기는 기사 쓰기로 이어졌다. 전공 공부는 소홀히 해도, 매주 돌아오는 기사 마감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사를 쓰고, 기사를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아이가 일기를 쓴다고 하면 기분이 좋다. 글 쓰는 즐거움을 딸아이가 알게 될까 싶어 반가워서다. 강요는 하지 않지만, 일기 숙제는 내심 알아서 했으면 하고 바라는 이유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일기를 왜 지금은 쓰지 않지? 마지막으로 쓴 일기가 언제더라? 그래서 한번 해봤다. 일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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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최은경


사실 정확하게 일기는 아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그날 먹은 끼니를 매일 기록한 것이었으니까. 우연히 들른 서점 문구센터에서 몰스킨 수첩도 샀다. 휴대하기 좋게 분철이 되어 있는 앙증맞은 크기였다(뭘 하든 연장은 중요한 법이니까). 삼시세끼 외식인지 집밥인지 나눠 적고 그날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일주일은 꼬박 잘 썼다. 한번 미루기 시작하니 금세 일주일이 흘렀다. 아, 뭐든 꾸준히 하는 것은 정말 어렵구나, 새삼 깨달았다.

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 건 그쯤이다. 일기를 잘 써서냐고? 아니다. 요즘 딸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게 있어서다. 바로 사마귀약을 바르는 거다. 발바닥에 뭔가 굳은살 같은 것이 박혀 피부과에 갔더니 사마귀란다. 의사는 한 달 정도 약을 꾸준히 바르면서 치료하는 방법과 냉동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내원하는 방법이 있다고 알려줬다. 딸은 집에서 약을 꾸준히 바르는 것을 택했다. 며칠이 지나 이번에는 내가 피부과에 갔을 때 의사가 물었다.

"딸아이 사마귀 약은 잘 바르고 있나요? 그거 엄마들이 매일 챙겨주기 무척 힘들어하셔서 결국 병원에 다시 오시기도 하셔서요."

처음 알았다. 약을 매일 바르는 게 힘들다는 것도, 그걸 엄마가 매일 챙겨야 한다는 것도. 나는 그런 살뜰한 엄마와는 거리가 먼 인물. "딸이 알아서 잘 챙겨 바른다"라고 했다. "훌륭하네요." 의사가 말했다. 정말 그랬다. 딸은 훌륭했다. 씻는 것도 귀찮아하는 아이가 매일 발바닥에 살을 뜯어내고(잠자기 전 약을 바르고 하루가 지나면 피부가 각질처럼 하얗게 일어나 뜯기 좋은 상태가 된다), 약을 바르는 걸 한 달이 넘게 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내가 그걸 제대로 알아준 적이 없다는 거였다. 왜 그걸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을까.

일기 쓰는 이야길 하다 갑자기 웬 사마귀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이 두 이야기에서 내가 말하려는 건 하나다. 아이들이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 훌륭한 일이라는 거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 가량 젖을 물지 않아서 애를 태웠던 적 있다. 매일 젖을 물기 시작하면서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한 일인지 알았다.

뿐인가. 밤새 푹 자는 일, 세끼 밥을 먹는 일, 매일 양치를 하는 일, 기저귀를 떼고 오줌과 똥을 싸고 가리는 일, 매일 어린이집에 가고 학교에 가는 일 또한 그랬다. 문제는 그게 익숙해질 때쯤이면 부모들은 아이들이 그토록 대단하고 훌륭한 일을 지금도, 여전히, 잘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다. 왜? 부모들이 생각하기에 그런 것들은 너무 '당연한' 거니까!

공휴일이나 주말이면 "오늘 쉬는 날이야? 어린이집에 안 가서 좋다"는 막내에게 "네가 뭘 한다고 쉬어서 좋다고 하는 거야?"라고 핀잔을 줬다. 그 소릴 듣은 어머님이 "애들한테는 그게 힘든 거지. 꼭 일을 해야 힘든 건 아니지" 하셨다. '그래 그렇지. 애들은 그게 일이지.' 똑같은 하루 같지만, 모두 다른 하루. 특별한 것만 대단하고, 훌륭한 건 아니다. 때론 일상적인 것들이 더 특별하다. 아이를 따라 일기를 쓰며 그걸 알았다. 아이 마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엄마 이거 봐봐. 드디어 사마귀 한 개는 떨어진 것 같아."

아이가 활짝 웃는다. 나도 활짝 웃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두 딸과 함께 읽으며 울고 웃은 그림책을 소개하고,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글로 씁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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