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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사모바위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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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북한산 비봉 능선 중간쯤에 사모바위라는 우람한 바위 덩어리가 있다. 1968년 1월 북한의 김신조 일행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남파돼 하룻밤을 보냈다고 해서 김신조 바위라고도 부른다. 사모(紗帽)는 조선시대 관리가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인데 실제 이 바위는 생김새가 사모와 비슷하다. 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하나 전해진다. 청 태종이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 당시 사랑하는 여인이 청으로 끌려가자 그녀를 기다리던 한 남자가 북한산에 올라 청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다가 바위가 됐다는 것이다.

▦ 병자호란 때 청은 인조의 항복을 받아 낸 뒤 조선 백성 50만~60만명을 피로인(被虜人)으로 끌고 갔다. 이 중 여성은 2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은 한겨울에 청의 수도 심양(瀋陽)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맞아 죽고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노리개가 되는 등 말로 하기 힘든 고통을 당한다. 피로인 중 남자는 전쟁에 징집되거나 머슴살이를 했으며 여성은 궁중으로 들어가거나 첩이 됐다. 양국의 약조에 따라 조선은 탈출해 돌아온 조선인을 청으로 돌려보냈다. 청으로 다시 잡혀간 사람들은 발뒤꿈치가 잘렸다.

▦ 피로인이라도 몸값을 지불하면 데려올 수 있었는데 그렇게 돌아온 여성을 환향녀(還鄕女)라 불렀다. 그러나 조선에 남아 있던 남자들은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냉대했다. 견디다 못한 여성들은 목숨을 끊었으며 그게 아니면 기생이 되거나 청으로 돌아가기까지 했다. 이에 임금이 홍제천 같은 개천에서 몸을 씻고 심신을 정화하면 받아들이라는 교지를 내리지만 그렇다고 냉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환향녀가 낳은 자식 또한 호로(胡虜)자식이라 부르며 멸시했다. 조선은 국가의 피해자를 그렇게 차별하고 학대했다.

▦ 환향녀와 호로자식에 대한 조선의 무책임한 태도와 흔히 대비되는 사례가 몽골 칭기즈칸의 이야기다. 그는 아내가 다른 부족에게 끌려가 임신까지 했지만 문제 삼지 않고 도리어 그 아이를 장남으로 삼았다 한다. 부자의 관계가 훗날 순탄치 않았지만 그건 별개 문제다. 병자호란을 다룬 영화 ‘남한산성’은 김상헌과 최명길을 내세워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를 보여 주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전쟁의 참상이다. 우리는 인조가 청 태종 앞에 머리 조아린 것을 슬퍼할 게 아니라 죄 없는 백성들이 피 흘린 것을 슬퍼해야 한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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