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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은 다른 인간" 로힝야 혐오 이끄는 극단주의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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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청소 선동…군부 비호에 모스크 방화 후 호화 옥중생활

"미친개 옆에서 못잔다…불교도 행동으로 이슬람국가화 막자"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이슬람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박해문제가 전 세계의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미얀마에서 반(反)무슬림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는 극단주의 승려가 주목을 받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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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라투 승려 [EPA=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위라투라는 이름의 이 승려는 이슬람 혐오설교로 미얀마 내 반무슬림 정서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미얀마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거나 유튜브나 페이스북에 영상과 글을 올리며 로힝야족을 비롯한 무슬림에 대한 미얀마인의 반감을 자극하고 있다.

그는 올해 초 피격당해 사망한 이슬람교도 변호사 사건을 잘한 일이라고 옹호하다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으로부터 설교를 제재당하기도 했다.

위라투는 지난 8일에도 미얀마 양곤의 작은 마을을 찾아 마이크를 든 채 무슬림을 동물에 비유한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도대체 무슬림은 어떤 사람들이냐?"고 반문한 뒤 "그들은 뒤로 음식을 먹고, 입으로 싸는 사람인가? 그들은 자연의 모든 것을 거스르는 존재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위라투의 발언에 1천여 명의 군중들은 환호했다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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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연합뉴스]



이에 그가 미얀마 반무슬림 캠페인의 상징이 된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위라투의 측근들은 아버지를 일찍 여읜 성장기와 무슬림을 내쫓길 원하는 미얀마 군부의 집권이 그를 극단주의로 몰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미얀마 만달레이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윈 카잉 우 마을에서 태어났다.

은퇴한 군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항상 술에 취해있었고, 어머니는 이웃의 빨래를 해주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은 뒤 어머니는 무슬림 상점주인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위라투는 14살의 나이에 승려의 길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그가 완전히 변하기 시작했다고 주변인들은 전했다.

그는 아주 능력 있는 설교자로서 반무슬림 행보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위라투는 무슬림이 마을을 장악하려 한다는 유인물을 나눠주거나 이슬람을 믿는 남성들이 불교도 여성들을 착취하려 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

이후 마을에서 모스크(이슬람사원) 2곳이 불타고, 2명이 살해당하는 종교반란이 일어나자 위라투는 이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25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감옥 안에서도 군부의 비호 아래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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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연합뉴스]



그는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총선에서 승리한 2012년 감옥에서 풀려났고, 이후 만달레이 사원에 복귀해 반무슬림 설교활동을 재개했다.

위라투는 2012년에는 로힝야족의 집중거주지인 라카인주(州)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로힝야족을 제3국으로 이주시키려는 군부의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승려들을 이끌고 해당 지역을 찾기도 했다.

위라투는 현재도 "미친개 옆에서는 절대 잘 수 없다"며 "불교도들이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미얀마는 곧 이슬람 국가가 될 것"이라고 미얀마인들에 경고하고 있다고 WSJ는 덧붙였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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