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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영화 `카3`와 행복한 레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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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동네 놀이터를 지나는데 아이들이 장난감 자동차를 갖고 놀고 있었다. 그중에는 애니메이션 영화 '카(Cars) 시리즈'의 주인공 '라이트닝 맥퀸'도 있다. 문득 몇 달 전에 보았던 '카3' 영화가 기억났다.

경주차 맥퀸은 이미 늙었다. 신예들에게 잇달아 추월당했다. 특히 잭슨 스톰은 1등을 독차지하며 맥퀸을 조롱했다. 첨단 엔진을 장착하고 첨단 장비로 훈련하는 신예들을 맥퀸은 이길 수가 없었다. 무리하게 주행하다 큰 사고를 당한다.

절치부심한 그는 실력파 트레이너 크루즈 라미레즈를 만난다. 그의 도움을 받아 신예들이 쓰는 첨단 기계로 훈련하려 하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만 절감한다.

좌절 끝에 맥퀸은 옛 멘토인 닥 허드슨의 동료들을 찾아간다. 허드슨처럼 레이싱을 자신의 삶에서 영영 잃고 싶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이때 맥퀸은 뜻밖의 얘기를 듣는다. 허드슨은 사고로 레이싱계를 은퇴했지만 맥퀸을 훈련시키면서 가장 행복해했다는 것이다.

이후 맥퀸은 허드슨과 같은 길을 걷는다. 한때 자신을 동경해 레이싱카가 되고자 했던 라미레즈와 함께 훈련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라미레즈는 맥퀸의 훈련 파트너에 불과했다. 하지만 레이싱 출전 직전 연습주행에서 라미레즈가 오히려 맥퀸을 앞지른다.

실제 레이싱에 나선 맥퀸은 라미레즈를 위해 마음 따뜻한 결정을 내린다. 라미레즈가 '너는 레이싱카가 아니야, 트레이너일 뿐이야'라는 조롱을 당하는 상황을 접하자 라미레즈에게 경주를 양보한다. 그 대신 헤드셋을 끼고 라미레즈를 격려한다. 주행 중에 자신감을 잃고 순위가 처지던 라미레즈에게 힘을 불어넣는다. 결국 라미레즈는 잭슨 스톰을 제치고 1등을 한다. 허드슨이 맥퀸의 멘토가 된 것처럼 맥퀸은 라미레즈의 멘토가 된 것이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행복한 레임덕'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10여 년 전 인터뷰했던 경영 구루(guru) 마셜 골드스미스가 했던 말이다. "레임덕은 피할 수 없습니다. 현실을 직시해야죠. 그러니까 행복한 레임덕이 되는 게 중요하죠."

영화 속 허드슨과 맥퀸이 그런 예다. 둘은 한때 레이싱계를 주름잡았지만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다. 어느새 레임덕이 된다. 처음에는 좌절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행복한 레임덕'의 길을 택했다. 누군가의 멘토가 되고 후배의 성장을 도왔다. 이를 통해 행복을 얻었다.

그러나 현실을 둘러보면 '행복한 레임덕'을 찾기란 어렵다. 정·재계의 권력자들 중에는 '불행한 레임덕'이 많다. 권력자들은 힘이 쇠약해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후임을 키워 자리를 물려줄 생각을 않는다.

하지만 드물게 '행복한 레임덕'의 길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이가 2016년 작고한 윤병철 전 하나은행장이다. 그는 1997년 2월 명예직인 '회장'으로 물려나면서 후임 행장에게 3가지를 서면으로 약속했다. "첫째, 회장은 대표를 맡지 않는다. 하늘의 해는 하나만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둘째, 회장이 은행에 대해 얘기할 때는 은행장을 통해서만 한다. 조직원들이 행장과 회장, 양쪽으로 줄을 서면 곤란하므로. 셋째, 그 외의 일은 은행에서 묻는 것에만 답을 한다. 고문 역할은 하지만 먼저 나서지 않는다." 이후 그는 권력을 내려놓고 멘토 역할에 충실했다.

윤 전 행장은 생전에 "시간을 두고 사람을 준비시키는 게 최고경영자(CEO)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회고하곤 했다. 이를 위해 행장 후보에게 중요한 업무를 경험토록 했다. 대외적으로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많이 만들었다. 중요한 자리에 갈 때면 꼭 행장 후보를 대동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권력은 10년을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레임덕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윤 전 행장처럼 미리 준비하고 즐기는 게 현명하다.

[사회부 = 김인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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