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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탐사보도] ‘빵집 사장님’ 이승렬, “꿈을 꾸는 지금이 더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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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에 월드컵 무대를 밟았던 '축구 유망주'이승렬. “에이전트와의 '20년 노예계약'으로 불행한 축구 인생을 마감했다“고 말하지만, 그는 지금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조용히 어려운 환경의 축구소년들을 도우며 그는 앞으로 펼쳐질 20년을 그만의 그라운드에서 뛰려 한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에이전트와 맺은 20년 노예계약이 불행의 시작”

“에이전트에 찍히면 다른 팀에서 뛰기 어려운 현실”

“1+1 끼워팔기하면 ‘+1 선수’는 경기에 뛸 수 없다.”

제빵 사업가로 변신한 이승렬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다.”

“선수권익 위한 단체로 모여 정당한 권리 지켰으면”

| '피터팬' 이승렬이 다시 팬들 앞에 섰다. 이번엔 축구 유니폼이 아닌 말끔한 정장 차림이다. 이승렬은 지난해를 끝으로 '축구계'라는 네버랜드를 떠났다. 어째서 피터팬은 네버랜드를 떠난 것일까. 아니 왜 떠나야만 했던 것일까. 엠스플뉴스 탐사취재팀과 만난 이승렬은 "20년 노예 계약이 그라운드를 떠나게 한 이유"라며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이승렬은 "더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숨겨왔던 '충격적인 노예 계약의 비밀'을 털어놨다. 이제 그 [2편]이다.

[1편 엠스플 탐사보도] ‘20년 노예계약’ 이승렬, “나도 모르게 강제 이적됐다.”

http://www.mbcsportsplus.com/news/?mode=view&cate=general&b_idx=9992497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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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김00 에이전트와 이승렬이 맺은 매니지먼트 계약서. 계약서엔 계약 기간이 20년으로 명시 돼 있다. 만약 이 계약서상 내용을 위반할 경우 이승렬은 눈에 보이는 손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모두 감수해야 했다. 충격적인 이 계약서는 한국 축구계에선 흔하디 흔한 계약서라는 게 여러 축구인의 증언이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1편에 이어] 만약 현역 선수 시절 용기를 내 에이전트와 구단에 “이건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계약과 이적”이라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제가 김00 에이전트와 계약을 강제 해지한 다음이었어요. 같은 에이전트 소속 선수들은 물론이고, 축구계 선·후배들에게서 전화가 많이 걸려 왔어요. 공통된 얘기가 “김00 에이전트가 니 험담을 하고 다닌다. 이런저런 이야길 하고 다닌다”는 거였어요. (강한 어조로) 선수가 어떻게든 피해를 보는 구조에요. 물론 김00 에이전트가 모든 구단과 친한 건 아닐 거예요. 하지만, 적어도 김00 에이전트와 친한 구단이 절 부르는 일은 절대 없을 거란 걸 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앞선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수가 원하지 않고, 선수가 사전에 알지 못한 상태에서 에이전트와 구단 밀약만으로 충분히 강제 이적이 이뤄질 수 있다"라고요. 엠스플뉴스가 취재를 해보니 같은 에이전트 소속일 경우 이름 있는 선수가 A팀에 가면 이름이 덜한 선수도 끼워서 함께 A로 이적하더군요. 축구계에선 '그게 바로 전형적인1+1 끼워팔기’ 하더군요.

저도 울산 현대 (1+1 끼워팔기로) 가서 6개월간 벤치 신세를 졌어요. 날 원하지 않는 팀에 가게 되면 그 팀에선 당연히 경기에 뛸 수가 없어요. 어쩔 수 없이 받은 선수를 누가 뛰게 하겠습니까.

‘빵집 사장님’ 이승렬, “꿈을 꾸는 지금이 더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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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대표팀 시절 한-일전에 출전한 이승렬(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한 축구인이 승렬 씨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후진적인 한국 축구 시스템과 비정한 에이전트 그리고 무능의 결정체인 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의 방조 탓에 축구 유망주가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고요.

(길게 숨을 내쉬며) ….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축구와는 완전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어떤 일입니까.

(쑥스럽게 웃으며) 조그마한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어요.

베이커리라.

‘TNT FC’에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TNT FC는 축구선수들에게 잃어버린 꿈을 찾아 주는 곳이에요.

네.

저도 제가 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꿈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시작은 제빵으로 했지만, 조금 더 성장시켜 사회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싶습니다.

월드컵을 누볐던 선수 치곤 다소 소박한 꿈이 아닌가 싶은데요.

(양손을 내저으며) 절대 소박하지 않습니다. 정말 크고, 멋진 일이에요(웃음). 어린 시절 축구화를 매번 꿰매고, 창을 갈아 신었습니다. 그거 아세요?

어떤?

지금도 많은 선수가 찢어진 축구화를 신고 있단 사실을요.

그렇습니까?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정말 가슴이 아파요. 그때 알게 됐어요. 제 인생을 어디에 써야 할지.

아.

돌아보면 그래요. 그럼 꿈이 있었기에 힘들었던 순간들을 견뎌낸 게 아닌가 싶어요. 요즘은 파주에 있는 아이들에게 축구 용품을 전달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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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축구 감바 오사카 시절의 이승렬(사진=감바 오사카)



축구와 사업, 어느 쪽이 힘듭니까.

공통점이 많아요. 축구는 매 순간 제 선택에 따라 플레이가 달라져요. 사업도 똑같아요. 제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사업 방향이 바뀝니다. 그래서 늘 변화를 주는 게 중요합니다. 축구할 때도 축구를 통해 많이 배웠지만, 사업 역시 배울 게 정말 많아요.

이제 만 28살입니다. 지금 나이가 축구선수에겐 전성기일 수 있습니다. 평생을 바쳤던 축구. 그만둔 거 후회하지 않습니까.

전혀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습니다. 지금 제 상황에 만족해요. 사실 축구를 그만 두기 마지막 2, 3년은 정말 암울하고, 힘들었어요. 제 삶의 목표 자체가 희미했죠. 축구 처음 했을 때 느꼈던 재미와 기쁨을 전혀 맛보지 못했어요.

‘축구 권태기’는 어느 선수나 한 번씩 찾아오지 않습니까.



월드컵에 나가 마음껏 뛰어다니는 게 제 삶의 목표였어요. 여전히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을 꼽는다면 그라운드에서 뛸 때에요. 하지만, 이젠 다 옛날 일이에요. 그때만큼의 행복은 아니겠지만, 또 다른 행복이 절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 덕분에 미련 없이 축구를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이승렬, "나 같은 피해자, 다신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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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렬은 최근 경기도 파주에 '아를르'라는 베이커리 카페를 오픈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시계를 돌려보지요. 김00 에이전트를 처음 만났던 고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결정을 하겠습니까.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겠죠(웃음). 당장은 달콤하나, 시간이 흐르면 칼이 돼서 돌아올 계약과 결정이 뭔지 선수들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말 많이 이것저것 알아야 해요. 선수와 부모가 함께 공부하고,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법을 배우고, 알아야 한다고 봐요.

지금도 축구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반짝합니다.

지금도 제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습니다. 이 선수들만큼은 외적인 일에 휘말리지 않고, 열심히 축구만 했으면 좋겠어요. 중개인 제도가 생긴 이유가 선수들이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잖아요. 그걸 정말 다들 다시 한번 제대로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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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Pro의 레드카드 캠페인. 손흥민(사진 맨 윗줄 가운데)이 '인종차별 퇴장을 보여주자'는 문구가 적힌 레드카드를 들고 있다. FIFPro 한국지부인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는 선수 권익보호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사진=FIFPro)



앞서 말한 것처럼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계약으로 선수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으려면 선수 스스로 많이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 FIFPro(국제축구선수협회)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FIFPro가 선수들의 권익을 담당해준다면 한국 축구계가 더 건강해질 거라고 믿어요.

FIFPro, 생소한 협회인데요.

FIFPro는 전세계 축구선수들을 아우르는 권익보호단체에요. FIFA가 인정하는 단체죠. 한국에도 지부가 있어요.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로 불리죠. FIFPro가 하는 일은 아주 쉽게 설명하면 선수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평생 축구만 했는데 갑자기 직장을 잃으면 너무 힘들잖아요. 제도적으로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면서 더 안정된 환경 속에서 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FIFPro와 비슷한 성격의 선수권익단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단체들이 ‘상위 1% 선수들의 권익보호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곤 합니다. FIFPro는 어떻습니까.

A급 선수가 아니라면 관심조차 못 받는 게 현실이에요. FIFPro는 그런 환경을 바꾸려고 태어난 조직입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을 겁니다. 저도 적극 돕고 싶어요.

어떤 걸 가장 돕고 싶습니까.

축구는 곧 ‘행복’입니다. 다 같이 행복하게 축구하는 게 우리 선수들과 그걸 지켜보는 분들의 꿈이 아닐까 싶어요. 다른 건 다 뒤로하고, 축구로 웃고,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현장에서 지금도 뛰는 후배들과 동료를 위해 저와 선배들이 할 일이라고 봐요.

용기 있게 축구계의 검은 관행을 가감없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승렬 씨의 용기 있는 발언이 불이익을 당하고도 두려움 때문에 목소릴 내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큰 힘을 줄 것으로 믿습니다.

(잠시 침묵했다가) 저도 두려웠어요. 하지만, 여기서 웅크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젠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모두 달라지고 있어요. 한국 축구도 변화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 축구계의 잘못된 관행이나 비리, 비위, 불공정 행위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면 엠스플뉴스 탐사취재팀(gurajeny@mbcplus.com)으로 제보 바랍니다.




박동희, 김원익, 배지헌, 전수은, 김근한, 이동섭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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