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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추적>부인을 '두번 죽인' 성형전문의, 그에게 의술은 범행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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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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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2004년부터 서울 청담동에서 성형외과 전문의로 활동해왔던 빈모(45)씨. 11일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1부(재판장 한경환)는 근육 이완제 ‘베카론’을 아내에게 투여해 살해한 빈씨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전신 마취 수술을 할 때 쓰는 약품 베카론은 외국에서 사형을 집행하거나 안락사를 할 때 쓰는 약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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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2일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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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처벌이 ‘살인 의사’를 만들었나
법원이 일찌감치 빈씨를 엄벌해 의사 면허를 박탈했다면,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빈씨가 약물로 사람을 숨지게 한 건, 아내가 세번째였다. 그도 과거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을까.
첫 범죄는 보험 사기였다. 빈씨는 2008~2009년 환자에게 허위 입·퇴원 확인서를 발급해 보험 사기를 돕다가 적발됐다. 사기 방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그는 2011년 법원에서 벌금 500만원형을 받았다.
사망 사고는 2010년이 처음이었다. 얼굴 주름을 펴는 ‘리프팅 수술(안면거상술)’을 하던 중 수면유도제 ‘프로포폴’과 마취제 ‘케타민’을 과다 투여하는 바람에 환자가 숨졌다. 이 일로 빈씨는 2014년 법원에서 업무상과실치사죄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때까지 빈씨 병원에 쌓인 적자는 3억3000만원. 여기에 국세청이 세금 1억5000만원을 추징했다. 빈씨는 병원 문을 닫았고, 부인과 이혼했다.
그는 2015년부터 강남 성형외과를 전전하며 일명 ‘페이닥터(고용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해 두번째 사망 사고가 났다. 처진 눈을 올리는 ‘안검하수 교정술’ 환자에게 또 다시 프로포폴을 과다 투여해 숨지게 만든 것. 그는 또 다른 ‘입꼬리 리프팅 수술’ 환자에게 시술을 잘못하는 바람에 상해죄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사기방조죄 벌금 500만원, 업무상과실치사죄 벌금 1000만원, 상해죄 벌금 200만원…. 모두 ‘벌금형’에 그쳤기 때문에, 빈씨의 의사 면허는 그대로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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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35년을 선고받은 성형전문의 빈모(45)씨의 의료 범죄는 이전에도 있었다. /인터넷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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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근육이완제로 살인 설계
빈씨는 2016년 4월 재혼했다.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만난 김모(44)씨다. 전 남편과 사별한 김씨는 현금 1억원·8억원 상당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다. 김씨는 빈씨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충남 당진에는 성형외과가 별로 없다. 당신은 서울대 의대 출신이니, 지방에서 개업을 하자. 빚도 갚아주겠다.”
당진에서 성형외과를 열었지만, 재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가사분담 문제, 병원 내부설비 문제, 고부 갈등, 빈씨가 전처에게 매달 800만원씩 지급하는 아이 양육비 문제…. 불화의 원인은 많았다. 빈씨는 결국 둘째 부인 김씨를 죽이고, 그녀의 재산을 차지하기로 결심했다. 살인을 치밀하게 계획했다. 약물을 스스로 처방했다. 항불안제 ‘아티반’(로라제팜) 6정(6㎎)을 빻은 가루, 근육 이완제 ‘베카론’(베쿠로늄브롬화물) 40㎎을 생리 식염수에 희석한 용액 10㏄가 범행 도구였다.
로라제팜은 강력한 진정·수면 효과가 있고, 기억 상실을 유발하기 때문에 ‘데이트 강간’이나 ‘사기도박’ 범죄에 자주 악용되는 약이다. 팝 가수 마이클 잭슨도 로라제팜을 프로포폴과 함께 맞다가 사망한 바 있다.
베카론은 전신 마취 수술을 진행할 때, 긴장한 환자 근육을 이완시키려고 쓴다. 투여하면 호흡할 때 필요한 근육인 횡격막(가로막)도 이완되기 때문에, 환자는 2~3분 안에 자가 호흡이 불가능해진다.
1차 살인 시도는 2016년 11월이었다. 김씨의 애초 계획은 이랬다. ①아티반 가루를 탄 물을 아내가 자연스럽게 마시게 한다. ②잠든 아내에게 베카론을 정맥 주사한다. ③집 밖으로 나가 아내가 사망할 때까지 일정한 시간을 보낸다. ④집에 들어오면 같은 건물에 사는 김씨 조카에게 119 신고를 하게 하고, 조카 앞에서 심폐 소생술을 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첫 시도에서 빈씨는 막상 불안·당황·두려움 때문에 ③번 단계에서 시간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씨 호흡이 멎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은 상황에서 119신고가 이뤄졌다. 119구급대는 쏜살 같이 도착해 심폐소생술을 했다. 김씨는 극적으로 살아났고, 보름 뒤 살아서 퇴원했다. 병원에선 약물 투여로 인한 사고를 눈치채지 못했고, 당사자 김씨도 로라제팜 효과로 쓰러지게 된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빈씨는 “범행이 실패로 돌아가자 단념하고 다시 아내와 살아보려 했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또 부부 싸움이 났다. 앞선 범행이 들통나지 않았다는 점을 노려 2017년 3월 2차 범행에 나섰다.
같은 수법이었다. 이번엔 시간을 충분히 끌었다. 결국 아내는 호흡 마비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이형협심증 등에 의한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마무리됐다. 빈씨는 김씨의 장례절차를 마치고 시신을 화장했다. 보험사에는 “처가 예전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다. 내가 의사라서 그런 부분에 대해 잘 안다”고 거짓말했다. 완전 범죄로 끝나는 듯 했다.
숨진 김씨 가족들이 의심을 품었다. 갑작스러운 사망이 납득이 가지 않은 유족들은 검찰에 진정서를 냈다. 수사가 시작되자, 빈씨는 모든 범행을 자백했다.
재판부는 살인 의사에게 징역 35년형을 선고하며 이렇게 밝혔다.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고 그 누구보다도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의사로서 본분을 망각한 채 자신의 의학지식을 그저 살인 범행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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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수법, 美사형 방식 떠올리게 해
살인 의사 빈씨의 범행 수법은 미국 일부 주(州)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형 방식을 연상시킨다. 미국 아칸소주의 약물주사형은 3단계다. 먼저 ‘미다졸람’으로 수면 상태를 만든다. 이후 베카론을 놓아 호흡이 막히게 한다. 마지막으로 독극물인 ‘염화 칼륨’을 투여, 심장 세포를 망가뜨려 최종 사망에 이르게 한다.
미국의 약물 주사형은 사형수 인권과 관련해 오랜 논쟁 거리가 돼왔다. 빈씨가 1차 범행에 실패했던 것처럼, 이 약물 사형 역시 실패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1단계에서 주사하는 미다졸람 효과가 강력하지 않아, 사형수가 고통 속에 신음하다가 숨진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베카론은 지난 2012년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강남 H산부인과 의사 김모(50)씨의 시신 유기 사건에도 등장했었다. 산부인과 의사 김씨가 프로포폴 중독자였던 내연녀 이모(당시 30세)씨에게 13종류 약물을 섞은 ‘칵테일 주사’를 놓아 숨지게 만든 사건이다.
당시 김씨는 미다졸람과 베카론을 다른 약물과 섞어 이씨에게 투여했다. 2년 전 인천 G종합병원에서도 간호사가 베카론을 다른 약물로 착각하고 20대 군인에게 투여해 숨지게 만든 사고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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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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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혁 상계백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베카론은 어떤 주사제인가.
“베카론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는 근육이완제다. 환자 근육이 긴장되어있으면 수술이 어렵기 때문에 전신 마취 수술을 할 때 사용한다. 베카론은 발현이 빨리 되고 지속 시간이 다른 마취제에 비해 비교적 짧은 편이다. 그래서 적정량을 투여한다면 좋은 약품이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 환자를 빨리 깨울 수 있다. 보통 프로포폴과 함께 사용한다.”

-오·남용할 경우 얼마나 위험한가.
“그런 베카론은 굉장히 위험한 약물이기도 하다. 베카론을 주사하면 사람이 아예 숨을 자발적으로 쉴 수 없다. 그래서 꼭 인공 호흡기를 달아 놓고 투여한다. 의사가 인공 호흡기 없이 환자에게 베카론만 투여한다한다는 건 ‘어떤 의도’가 있거나, 의학적인 기초 상식이 없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약물이 변사·살인 사건 기사에 종종 등장한다.
“베카론은 일반인은 취득하기 어려운 약품이고 사용하기도 어렵다. 다만 의료인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수술을 하는 병원은 필수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약품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이 마음을 나쁘게 먹는다면 손에 넣기 쉽다.”

-이번 ‘징역 35년 의사’나, ‘H산부인과 시신 유기사건’ 같은 베카론 사고를 예방하려면.
“근육이완제는 따로 이력을 남기지 않는다. 제약회사에서 출고할 때부터 어느 병원에 몇 개 들어갔는지 기록을 남겨야한다.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물론 이미 대장을 기록하고 이력을 추적하고 있는 향정신성의약품도 현실에선 관리가 안돼 빈번한 사고가 나긴 하지만….”

[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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