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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우주 행성에 붙은 첫 한국지명, '자청비'는 대체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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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전통 농업신, 갖은 역경 뚫고 신이 된 여성영웅
로마 농업 여신 케레스보다 역동적 주인공
조선시대 유교적 관점에서 크게 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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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스 모습(사진제공=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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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태양계 소행성대에서 가장 큰 천체로 알려진 왜행성(Dwarf Planet) '세레스(Ceres)'의 크레이터(구덩이)에 한국 전통신인 자청비의 이름이 붙게 됐다. 자청비는 제주도의 전통신화인 '세경본풀이' 신화 속의 주인공이자 농업을 주관하는 여신으로 역시 로마의 농업신 케레스에서 비롯된 세레스와 의미가 맞아 지명으로 선택됐다고 한다.

국제천문연맹(IAU)이 올해 8월말 세레스에서 발견된 크레이터 13곳의 지명을 공식 승인했는데, 이 중 1곳에 '자청비(Jacheongbi)'라는 한국 신 이름이 포함됐다. 이 이름은 슈테판 슈뢰더 독일항공우주센터(DLR) 박사(47)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슈뢰더 박사는 세레스를 탐사 중인 무인탐사선 '돈(Dawn)'의 프레이밍 카메라 연구팀 소속으로 2007년부터 돈이 보내온 데이터를 토대로 세레스 등을 연구하고 있다.

자청비가 세레스의 크레이터 이름으로 붙은 이유는 로마의 농업신 케레스에서 비롯된 세레스의 지명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국제천문연맹은 세레스가 로마 신화 속 곡물의 여신인 '케레스'에서 따온 만큼 세레스의 지명도 전 세계 농업의 신들 가운데서 고르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한국 신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슈뢰더 박사의 제안으로 제주도의 농업신 자청비가 선택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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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탐라국 입춘굿놀이 축제에 나온 자청비 등 모습(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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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자청비를 잘 모른다. 자청비 이야기가 나오는 세경본풀이는 제주도 지역의 굿을 통해 구연되는 서사무가로서 유교를 국시로 삼던 조선시대 500년을 거치면서 미신으로 치부됐으며 근대화 이후에는 한때 잊혀진 신이 됐다. 오늘날에는 제주도 지역을 중심으로 신화 연구가 재개되면서 재발굴 된 우리 전통신이다.

특히 자청비 이야기는 유교적인 관점에서는 물론 현대 관점에서도 매우 파격적인 이야기다. 세경본풀이 전체를 끌고가는 주인공 자청비는 여성으로서 갖가지 고난을 거쳐 사랑을 쟁취하고 또한 전쟁에도 참전해 난을 진압하기도 하고 결국 농업신이 된 후에도 자신이 주신으로서 매우 주관이 뚜렷한 삶을 산 여성상으로 나오기 때문에 유교사회에서는 배척받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자청비의 일대기는 보통 지고지순한 여성 캐릭터나 헌신적 어머니 캐릭터가 대부분인 한국 신화의 일반적 여성상과 대단히 거리가 멀다. 일단 이름 자체도 자청비의 부모가 백일 불공을 드려 나아 자청해서 낳은 아이라 하여 자청비라 지어졌다. 이후 15세 때, 하늘에서 문화와 농업을 관장하는 문곡성의 아들인 문도령에게 반한 자청비는 스스로 남장을 하고 문도령과 3년간 동문수학하며 지내 대단한 학식과 지혜를 얻게 된다.

이후 자청비는 자신을 사모하던 남자 노비인 정수남이 자신을 겁탈하려하자 그를 죽였다가 이 일로 부모가 사람을 죽였다며 자신을 집에서 내쫓자 서천꽃밭으로 가서 환생꽃을 구해 정수남을 다시 살려내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후 문도령의 약혼자를 제치고 혼인에 성공, 결혼 후 문도령이 살해당하자 다시 환생꽃으로 그를 살려낸다. 또한 옥황상제의 부탁으로 멸망꽃을 이용해 천궁의 반란을 진압하기도 한다. 이렇게 주도적 삶을 살아온 자청비는 결국 농업신이 됐으며 남편인 문도령은 상세경으로 삼고, 자신은 중세경, 노비였던 정수남은 하세경으로 삼아 목축을 담당시켰다.

이 자청비 여신은 '메밀'을 제주도에 처음 퍼뜨린 신으로도 알려져있다. 동북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원산지로 알려진 메밀이 제주도까지 내려가는 동안 대륙과 한반도 지역의 설화가 제주도 지역 전통설화와 합쳐져 만들어진 신화로도 해석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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