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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 단체장 비리의혹 수사 뭉갠 ‘경찰 내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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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뒷돈 받고 비위공무원 승진시켜”

추재엽 전 양천구청장 의혹 제보

윗선 보고했지만 ‘손 떼라’ 압박

관련 계좌 ‘수상한 돈거래’에도

끝내 사건 이첩되며 수사 좌절

그후 김 경위는 지구대로 발령



2010년 10월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주복 경위는 제보를 받았다. 추재엽 전 양천구청장이 재임 때 뒷돈을 받고 음주운전 전과자 등 비위 공무원 십수명을 승진시켰다는 의혹이었다. 그 과정에서 공문서 위조도 이뤄졌다고 했다. ‘추 전 구청장의 비서 홍아무개(47)씨가 대신 뒷돈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정황도 있었다. 제보자는 당시 양천구청 감사실 실장 등이었다. 김 경위는 제보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겨레

김 경위는 상부에 제보를 보고했다. “좋은 사건”이라는 답변을 들은 그는 내사 착수 보고서를 작성했다. 며칠 뒤 계장이 김 경위를 불렀다. “이 사건은 2008년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내사했던 사건이다. 남의 진흙탕 싸움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 수사 첩보를 파기하고 제보자들에게 전화해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게 하라.”

2011년 2월 정기인사로 김 경위는 서울청 외사과 국제범죄수사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국제범죄수사대 5팀장 장아무개 경감에게 ‘양천구청 기관장의 인사비리 등에 대해 수사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인사청탁 대가로 해외 골프접대가 이뤄졌다는 제보 내용이 국제범죄수사 근거였다. 장 경감은 흔쾌히 수락했다.

상부에 수사 첩보가 보고됐고 내사 착수 허가가 떨어졌다. 김 경위 등은 제보자로부터 추가 진술을 받았다. 위조됐다는 공문과 구청 인사기록 카드도 확보했다. 금융정보분석원을 통해 추 전 구청장 관련 계좌에서 수상한 현금 거래 정황을 확인했다.

2011년 5월6일 김 경위 등은 관련자 2명을 임의동행 형식으로 불러 조사했다. ‘추 구청장 지시를 받은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진급한 공무원들의 인사서류와 공문서를 조작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다음날 새벽 1시께 김 경위는 상관의 전화를 받았다. 첩보 입수 경위를 묻더니 수사 중단을 지시했다. 사건은 양천경찰서로 이첩됐다. 양천경찰서는 그해 8월 공무원 3명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김 경위와 장 경감의 수난이 시작됐다. 양천서로 사건이 이첩된 직후인 그해 5월 서울청은 두 경찰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내사 과정에서 비위 혐의자들을 불법 체포했다는 고발이 접수됐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피혐의자들이 임의동행에 동의했다는 자필 서명이 발견돼 그해 8월 최종 무혐의 처리됐다.

수사통이었던 김 경위는 이후 지구대로 발령나 현재까지 서울 시내 한 지구대에서 근무 중이다. 장 경감은 그해 7월 서대문경찰서로 발령났지만, 전입신고 두시간 만에 다시 지구대로 발령났고, 같은 날 또다른 지구대로 발령이 났다.

한겨레

12일 <한겨레>가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입수한 관련 보고서에는 이런 정황이 자세히 담겨 있다. 김 경위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사실이다. 자세한 말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12년 2월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추재엽씨의 비서 홍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김 경위 등이 수사한 내용대로였다. 다만 검찰은 홍씨의 단독 범행으로 판단하고 추씨를 기소하지 않았다. 2013년 2월 대법원은 홍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확정했다.

추씨는 2002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양천구청장에 당선됐고, 2007년엔 무소속으로 보궐선거에 나가 재선 구청장이 됐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낙선했다. 하지만 수사를 피한 뒤인 2011년 10월 한나라당 당적을 회복해 양천구청장 보궐선거에 출마했고 3선 구청장이 됐다.

추씨는 2010년 6월 구청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 이제학 구청장을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다. 이 구청장은 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나와 “추씨가 보안사 근무 때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고문에 가담했다”고 주장했었다. 대법원은 2011년 6월 이 구청장에게 벌금 2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구청장은 직을 잃고, 이어진 보궐선거에서 추씨가 당선됐다.

그러나 추씨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보궐선거 때 ‘추씨가 보안사에 근무하며 간첩 혐의자를 고문했다’는 내용의 책을 쓴 저자를 비방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살포했다가 무고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2013년 4월 추씨의 민간인 고문 사실을 인정하며 징역 1년3개월 형을 확정했다. 그는 구청장직을 잃었다.

당시 추씨에 대한 수사를 집요하게 방해한 세력이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지난 5월 청와대가 공개한 ‘캐비닛 문건’ 중에는 2010년 지방선거 직후 작성된 ‘야권 지자체장의 국정운영 저해 실태 및 고려사항’이라는 문건이 있었다. 문건에는 “당·정은 가용수단을 총동원, 야권 지자체장들의 국익·정책 엇박자 행보를 적극 견제·차단함으로써 국정 결실기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추 전 구청장은 이런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그는 1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비서가 저지른 개인 뇌물범죄일 뿐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김 경위의 수사를 제지했던 당시 경찰 간부들은 “해당 구청에서 정식 고발하면 수사에 나서겠지만 그런 상황도 아닌데 내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겠다고 보고 중단시켰다”고 해명했다.

김 경위는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수사 과정에서 겪었던 일을 증언할 예정이다. 진선미 의원은 “정치 경찰의 폐해가 드러난 사건이다.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 회복”이라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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