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이완용·박정희…‘국정화 찬성’ 여론조작자 찾아낼 것”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짬】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 고석규 위원장

한겨레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고석규 위원장.


“허위 찬성의견서 작성에 억지로 동원된 사람들은 이완용과 경술국치일, 박정희와 그의 사망일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 볼 때 역사의식이 있는 이들인 것으로 보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가 11일 공개한 ‘국정화 허위 찬성의견서’를 보고 국민들은 경악했다. 2015년 11월 국정화 행정예고 때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적극 찬성” 의견서를 낸 이들의 성명란에는 ‘이완용’, ‘박정희’와 같은 납득하기 어려운 역사 속 인물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이들의 주소는 조선총독부나 청와대, 전화번호는 경술국치일이나 전 대통령 사망일로 적혀 있었다. 심지어 개인정보란에 ‘미친 짓’, ‘개소리’, ‘뻘짓’ 같은 단어도 나왔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고석규(전 목포대 총장) 위원장은 12일 <한겨레>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교육부 문서 창고에서 찬성의견서 상자를 처음 열었을 때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출범 보름 만에 ‘허위 의견서’ 발굴
“문서창고 상자 열어본 순간 개탄”
교육부 ‘셀프 조사’ 우려 시선 응원으로


검찰에 ‘차떼기 의혹’ 수사의뢰서
퇴직한 김동원 전 실장 등 ‘지목’
“역사 사유화 ‘재발방지’ 사명감 느껴”


한겨레

지난 9월25일 출범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고 위원장은 “참으로 개탄스러웠다. 우리 사회가 이런 정도로 수준이 떨어졌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찬성의견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조차 국정화에 회의적이거나 반대하면서 작업을 했고 억지로 동원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허위 찬성의견서를 통해 당시 국정화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판단이 상식적이었음을 확인하게 됐다고 했다. 확인 작업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해방 이후 쌓아온 민주적이고 공정한 사회를 위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위안도 받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엉터리’ 찬성의견서를 본 그는 “반드시 이 과정을 명명백백히 밝혀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국정화처럼 소모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가 출범했을 때, 교육계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올 초까지 국정화를 밀어붙이던 교육부가 ‘셀프 조사’를 한다는데 과연 잘되겠느냐는 걱정이 많았다. 15명으로 꾸려진 위원회에는 교육부 공무원도 당연직 위원으로 포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범 보름 만에 나온 ‘1차 성과’는 이런 우려를 응원으로 바꾸었다. 고 위원장은 “국민이 정부 정책에 대해 찬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지만, 허위 찬성의견서는 여론을 읽는 시스템 자체를 우롱하는 행위”라며 “특히 특정단체나 집단이 조직적으로 허위 의견서를 작성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한 용도로 여론조사를 오용했다면 정말 문제”라고 말했다.

진상조사위의 요청으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2일 오전 서울 대검찰청에 ‘차떼기 의혹’ 수사의뢰서를 첨부한 공문을 보냈다. 수사 대상은 국정화 행정예고 당시 교육부에서 국정화 업무를 총책임졌던 김동원 전 교육부 학교정책실장(퇴직), 허위 찬성의견서를 일괄 출력해 제출하는 과정을 총지휘한 사람으로 지목되는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교육학과), 허위 찬성의견서 상자에 쓰여 있는 단체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민운동본부’이며 혐의는 공무집행방해, 사문서 위조 등이다.

진상조사위는 찬성 의견이 조작됐다는 근거가 충분함에도 외부기관이나 퇴직 공무원에 대해 직접 조사할 권한이 없다보니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게 됐다고 했다. 고 위원장은 “조사팀이 교육부 내 실무자 10여명을 면담해보니, 2015년 11월 당시 국정화 핵심 책임 보직자였던 김동원 전 실장을 최초의 지시 발원지로 지목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교육부 내부인들은 대부분 실무자라 외부기관과 교육부 고위공무원 사이에 어떤 협력이 이뤄진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범죄 사실이 충분히 드러났는데도, 그 행위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진상조사위에 속한 법률전문가 세 명도 ‘이 사건이 교육부 단독으로 수행한 일이라 보기 어렵고 청와대나 국가정보원의 지시 등을 받았다는 합리적 의혹 제기가 가능하다’며 수사를 통해 사법처리가 이뤄지게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진상조사위가 국정화의 여러 문제점 등 ‘차떼기 의혹’을 집중 조사한 까닭은 이 사건을 국정화 추진 과정의 여러 불법 행위 가운데 초기 발단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후 국정화 정책을 추진하며 여러 불법 행위가 이어졌다. 고 위원장은 “국정화 전체 흐름을 놓고 보면 ‘차떼기 의혹’이 하나의 변곡점이다. 교학사 교과서 등 정부가 역사교육에 손을 대려는 의도는 꾸준히 갖고 있었지만, ‘차떼기’는 위법 행위를 해서라도 정책으로 옮기고자 무리수를 뒀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사건”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고 위원장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대해 ‘정권이 국가기관을 편취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국정화는 단순히 교과서 하나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고, 정권이 자신의 편파적 견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헌법적 가치와 교육기본법을 해치면서 국가기관을 사적으로 편취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