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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집행 20년, 사형제를 말하다] '1분이 1년' 같았던 그날의 형장… '평생의 회한'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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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가까이서 본 사형제 / 몸부림… 신음… 팽팽한 밧줄… 억겁같은 10분 ‘평생의 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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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또렷해지고 떠올릴 때마다 몸서리치게 되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극도의 스트레스, 공포 등을 동반하는 불쾌한 경험의 산물이다.’

사형은 흉악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것일지라도 생명을 박탈한다는 점에서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이들의 머릿속에 이런 낙인을 남기기도 한다. 구형과 선고를 담당하는 법조인들이 그렇고, 특히 사형집행을 담당하는 교정공무원들의 평생의 회한이 된다.

사형제 존폐 논란의 초점은 주로 위헌성 여부, 범죄 예방 효과, 국민의 법감정, 사형수의 인권 등에 맞춰지지만 사형 선고와 집행에 관련된 이들의 인권, 양심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30여년 동안 사형수 교화활동을 하며 70번 넘게 집행현장을 목격한 문장식 목사 등 종교인들과 전직 교도관들의 기억을 재구성해 1980년대 후반 교도관 A씨가 참여한 사형집행 현장으로 먼저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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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집행자` 중 한 장면


◆1분이 1년처럼…교도관이 본 사형집행

198×년 5월의 어느 날. 1년 만의 사형집행 소식이 알려진 서울 서대문 서울구치소는 아침부터 긴장감이 가득했다. 교도관들은 교수대에 쌓인 먼지를 털거나 집행에 쓰일 밧줄 등을 점검했다. A씨는 처음으로 사형수의 ‘연출’(사형장까지 연행하는 것을 뜻하는 교정 용어)을 맡았다. 이날 사형이 집행되는 2명은 모두 31살. 공교롭게도 A씨와 동갑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긴장한 티 내지 마.”

선임 교도관이 잔뜩 긴장한 A씨를 다독였다.

“이○○.” A씨가 사형수의 이름을 불렀다.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걸까. 그는 ‘올 것이 왔다’는 듯 순순히 수갑을 찼다. 하지만 의연한 표정과는 달리 다리는 힘이 풀렸는지 걸음을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끌다시피 해 도착한 집행장, 수용자들이 ‘넥타이 공장’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름은? 본적과 주소는 어떻게 되시죠? 수형번호 19××번은 198×년 ○월○일 살인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맞죠? ○월○일 항소했지만 기각됐습니다. 맞죠?”

“네.”

“법무장관 명령에 따라 사형을 집행합니다. 유언 있으면 하세요.”

교도소장의 인정신문이 끝나자 유언 의식과 예배가 진행됐다. 집행에 참여한 종교인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했지만 돌발행동이 있을까 온 신경을 사형수에게 쏟던 A씨에겐 들리지 않았다.

집행은 빠르게 진행됐다. 밧줄로 사형수의 온몸을 꽁꽁 묶고 용수를 씌운 뒤 휘장 안으로 옮겼다. 한 교도관이 목에 밧줄을 걸자 곧바로 ‘포인트’(마룻바닥이 꺼지게 만드는 장치)가 내려졌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이 꺼졌고 밧줄이 팽팽해졌다.

‘끄윽, 끄윽, 끼익….’

숨이 끊기기까지는 보통 13분 안팎. 사형수의 몸부림과 신음소리, 팽팽해진 밧줄이 만드는 기묘한 소리가 공중에서 뒤섞였다.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자 의무관이 숨진 것을 확인, 검사에게 보고했다. 집행에 걸린 시간은 총 30분 남짓이었지만 A씨에겐 1분이 1년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 집행이 이뤄지기 전 30분 정도 휴식이 주어졌다. 들것에 실린 시신이 A씨 곁을 지나가자 소독약과 피냄새가 섞인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십년이 지나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며 A씨를 부단히도 괴롭힐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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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트라우마 겪는 사람들

12일 법무부에 따르면 1980∼97년 166건의 사형이 집행됐다. 하루에 가장 많은 사형이 이뤄진 건 ‘마지막 집행’이었던 1997년 12월30일(23명)이었다. 전두환·노태우정부에서 각각 70명, 39명을, 김영삼정부에서 57명을 집행했다.

현행법상 사형은 교도소나 구치소 내에서 교수형으로 이뤄지는데, 검사와 검찰청 서기관, 교도소장, 교도관, 의사, 종교인 등 40여명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사람마다 다르긴 해도 ‘그날’은 대개 괴로운 기억으로 남는다. 문 목사는 “집행 현장을 처음 접한 몇달 동안은 매일같이 울며 괴로워했다”며 “사형에 대한 찬반을 떠나 그것을 직접 봐야 하는 사람들에겐 큰 비극”이라고 전했다.

한 현직 교도관은 “명령이었지만 ‘범죄자를 단죄한다’는 일종의 정의감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집행 기억이 선명해지면서 삶에 대한 회환이 커졌다”고 말했다. 집행에 참여한 교도관들 중에는 이때의 괴로움을 떨치지 못해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심하게는 마약에 손대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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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을 구형과 선고, 집행하는 법조인들의 고민도 깊다. 지난 6월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5·18민주화항쟁에 참여했던 한 버스운전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일을 두고 “평생의 괴로움으로 남아 있다”고 털어놨다. 한 현직 검사는 “사형을 구형할 때는 죄에 대한 ‘당연한 업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집행 소식을 듣고 나서 한동안 우울감과 허무감이 컸다”고 토로했다. 사형을 선고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행히(!) 난 그런 경험이 없다”는 한 고위 법관의 대답은 흉악범에 대한 것일지라도 사형선고가 얼마나 큰 부담인지를 보여준다.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사형은 결국 국가에 의한 ‘제도살인’”이라며 “사실상 국가가 국민에게 또 다른 국민을 ‘죽이라’는 것인데, 여기에 가담해야 하는 이들의 인권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형제 존폐 논란의 핵심은 아냐”…기술적 보완 가능

하지만 이 같은 문제가 사형제 존폐를 가르는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견해도 강하다. 이재교 세종대 교수(법학)는 “사형과 관련한 이들의 인권문제도 중요하지만 사형제 존폐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며 “집행의 문제는 자원자를 받거나 방식을 달리하는 등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영삼정부 시절 교도관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으로 사형집행 버튼을 5개로 만들어 여러 교도관이 동시에 누르도록 조치한 적이 있다. 교도관 중 누가 집행을 했는지 모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 전직 교도관은 “곁에서 본 사형수에게 연민을 느끼는 교도관도 있지만 사형집행에 찬성하는 경우도 많다”며 “방식이 문제가 된다면 독극물 주사나 전기형 등으로 대체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말했다.

사회부 경찰팀=강구열·박현준·남정훈·김선영·김민순·김범수·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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