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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박병진의 밀리터리S] 北, B-1B 비행 몰랐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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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근무 소홀했거나 레이더 시설 낙후 가능성/ 원산 300㎞ 까지 근접해도 무반응 / 합참 지휘 통제실서도 ‘어리둥절’ / “토요일 심야 근무 태만에 무게” / 일각 “전력난에 레이더 미가동”

지난 23일 밤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 합참 정보·작전 주요 직위자들이 집결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미군의 B-1B 랜서 전략폭격기와 F-15C 전투기 편대가 심야에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북 북한 영공과 인접한 곳으로 진입해 작전을 펴는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사전에 한·미 간 협의가 있었다고는 하나 북한의 돌발상황을 배제못한 탓인지 사뭇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지휘통제실 모니터 상에 나타난 B-1B와 F-15C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를 넘어 점점 북쪽으로 움직였다. 급기야 NLL을 훌쩍 넘어서더니 북한 원산에서 약 300여㎞ 지점까지 근접했다. 참석자들의 낯빛은 더욱 굳어졌다. 북한이 눈치를 챘다면 분명 대공방어용 레이더가 작동되거나 미사일이 발사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북한이 방향을 틀어 남쪽에다 대고 화풀이를 할 수도 있었다.

세계일보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준비 중인 B-1B 랜서 모습.


하지만 B-1B와 F-15C가 이 곳에서 상당 시간을 선회비행하며 무력시위를 벌였지만 북한군의 별다른 군사적 대응조치는 없었다. 오히려 지휘통제실에 모인 군 관계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였다.

당시 상황을 지켜봤던 군 관계자는 “모두가 의아해했다”면서 “북한이 고의로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모르고 있을 수 있다는 쪽으로 추정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B-1B 심야작전 인지 여부는 26일 국가정보원이 국회정보위원회에 “몰랐다”고 보고해 결론이 났다.

이날 정보위에서는 미측이 “북한이 깜짝 놀랐을 것…모르는 것 같아 (B-1B의) 궤적을 공개했다“는 내용까지 언급됐다.

북한은 과거에 B-1B 출격을 파악하고는 공개한 적이 여러차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몰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우리 군에서 방공레이더 관제업무를 담당했던 한 공군 장교는 “토요일 심야시간대 작전이 이뤄져 북한 방공레이더 관제요원들이 경계근무를 소홀히 했거나, 레이더 시설이 노후화돼 B-1B의 항적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을 수 있겠다”면서도 “이전에는 포착이 됐는데 이번만 놓쳤다면 근무 태만 쪽에 무게가 실린다”고 말했다. 잠을 자고 있었거나 딴짓을 했다는 얘기다. 대북제재에 따른 전력난으로 많은 전기가 소요되는 방공레이더를 가동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방공레이더가 가동되지 않는다면 요격미사일은 무용지물이다. 레이더와 연동돼 탐지와 추적, 요격이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공레이더는 탐지레이더와 사격통제레이더 두가지가 함께 운용된다. 우리 군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조기경보레이더를 운용하는 등 상당 수준의 장거리 감시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게 SA-5 지대공미사일 시스템의 일부인 P-14/5N84A 탐지레이더다. 이 레이더의 최대 추적·감시 거리는 약 600㎞다. 이론적으로는 항공기가 제주도와 일본 규슈(九州) 북부를 잇는 선을 넘어 북상하는 순간부터 추적이 가능하다.

이 레이더가 B-1B의 북상을 탐지했다면 SA-5 미사일의 공격용 사격통제레이더(탐지거리 350㎞) 또한 요격 준비를 위해 가동됐을 수 있고, B-1B 랜서는 분명 회피기동에 나섰을 것이다. 사격통제레이더에서 빔을 쏘면 표적이 된 항공기는 레이더 경보 수신기(RWR)를 통해 사전에 감지할 수 있다. 만약 감지됐더라도 SA-5 미사일 사거리(250㎞) 밖에 있었던 탓에 B-1B가 격추됐을 가능성은 희박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 등으로 이번 미군 B-1B의 무력시위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 한·미가 하겠지만 대북 군사옵션의 실행 가능성과 함께 북한군의 야간 대공방어망 운용 실태와 더 나아가 대북제재가 최전방부대에 미치는 파장까지도 엿보는 기회가 됐을 수도 있겠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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