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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디테일추적>'김규리=최대 피해자' 논쟁이 불붙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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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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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블랙리스트의 최대 피해자는 배우 김민선.’
배우 문성근(64)씨는 지난 18일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사건 피해 진술을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로 배우 김규리(개명전 이름 김민선)씨를 거론했다. 이유는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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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문성근씨가 18일 검찰에 출석하며 배우 김규리씨를 블랙리스트 사건의 최대 피해자라고 언급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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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이 상업 영화가 막히면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들면 되고, 가수와 개그맨은 콘서트를 하면 된다. 하지만 배우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배우는 20~30대에 연기력을 키우고 이름을 알려야 하는데 김민선 배우는 집중적으로 배제됐다.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봤다.”
닷새 뒤인 23일, 김규리씨는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와 오열했다. 그녀는 “국정원이 ‘청산가리’ 하나만 남게해서 글 전체를 왜곡했다”며 “10년간 열심히 살고 있는 삶 틈 사이사이에서 저를 왜곡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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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씨가 23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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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김씨는 2008년 문제가 됐던 ‘청산가리 글’ 전문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다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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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김규리씨가 올렸던 글의 전문. 빨간색 문장이 김규리씨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었지만, 파란색 문장들로 인해 '광우병 공포를 선동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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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글에는 문제의 ‘청산가리’라는 표현 외에도, 미국산 쇠고기를 두고 ‘세계가 피하는…자국민들조차 피하는’,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채로 수입하다니’ ‘닭이나 돼지고기 생선류 역시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 ‘머리 속에 숭숭 구멍이 나’ 등의 표현이 들어있다.

김씨는 문제의 글을 다시 게재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2008년 5월 1일에 썼던 글 전문입니다. 국민의 건강권은 보수적으로 지켰으면 했고 검역주권 포기한것이 (미국과) 내내 마음에 걸려서 썼던 글입니다. 초등학교에서도 배우는 ‘수사법’... 수사법으로 이뤄진 문장은 제 글의 전체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의 혼란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걱정끼쳐드리고 또 부족해서 늘 죄송합니다...^^;;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도 부족한 세상입니다. 그러니 모두 화이팅!!! 글에도 썼지만 저는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김씨는 25일에는 문성근·김미화씨 등과 함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국가정보원법 위반, 강요,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다. 같은날 검찰에 출석해 4시간30분 동안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블랙리스트에 등재돼 국가로부터 유·무형의 피해를 직·간접적으로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김씨는 그동안 쌓인 게 많을 것이다. 김씨는 청산가리 글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해 2010년 승소할 때까지 송사에 시달리기도 했고, 온라인에서 줄곧 ‘청산규리’라는 조롱이 따라붙었다. SBS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이 ‘출연 배제’ 요구를 했다”고도 밝혔다.

그럼에도 문성근씨가 규정한 ‘최대 피해자=김규리’ 주장을 놓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독특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김씨가 정말 최대 피해자 맞느냐”는 논쟁이 불붙고 있는 것. 25일 밤 진보 성향 네티즌이 모인 대형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김규리’ ‘김민선’을 검색했더니, 지난 2주간 200여건의 글이 올라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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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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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대부분은 ‘국정원 블랙리스트 사건은 철저히 조사해 일벌백계 해야한다’는 전제에 동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규리씨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김규리씨가 10년 간 실제 피해를 입은 것이 맞는지
▲김씨가 그간 연기력을 꽃피우지 못한 이유가 국정원 블랙리스트 활동의 결과가 맞는지
▲김씨 주장대로 해당 글이 ‘청산가리’가 주된 내용이 아님에도 국정원이 일부 표현만을 발췌·왜곡해 유포한 게 맞는지
▲김씨가 앞서 원 글에 등장하는 오류를 바로 잡거나, 대중에게 진솔하게 사과한 적이 있는지….
아예 김규리씨의 출연작 리스트(필모그래피)를 분석, 블랙리스트 등재 이후에도 전과 다름 없이 꾸준한 작품활동을 해온 점을 들어 피해 주장을 반박하는가 하면, ‘청산가리 원인제공설’을 꺼내며 격렬한 댓글 싸움을 벌이는 네티즌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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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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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정면 돌파 의지를 보이고 있는 김규리씨는 “더 이상의 혼란이 없었으면 좋겠다”면서도, 정작 2008년 광우병 공포를 부추겼던 글을 소셜미디어에 다시 올렸다. 그러자 이 글에서도 진흙탕 댓글싸움이 벌어졌다. 김씨는 ‘청산가리’ 문장이 초등학교에서도 배우는 ‘수사법’으로 이뤄진 문장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김씨의 수사법은 일종의 ‘말 버릇’ 같은 특유의 언어 습관으로 보인다.

김씨는 지난 12일 인스타그램에 “(블랙리스트) 이 몇 자에 나의 꽃다운 30대가 훌쩍 가버렸네. 10년이란 소중한 시간이”라며 “내가 그동안 낸 소중한 세금들이 나를 죽이는데 사용되었다니”고 밝혔다. ‘몇 글자↔10년’ ‘세금이 나를 죽였다’ 같은 문장에선 2008년 글에서 봤던 과장·대조를 통한 강조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광우병이든, 블랙리스트든 ‘실체적 진실’을 원하는 대중은 ‘강렬한 수사’를 걷어낸 팩트를 원한다. 국정원이 말도 안되는 짓을 벌였다고 생각하면서도, ‘최대 피해자 김규리’ 주장에 의심을 품는 네티즌이 많은 건 그래서인걸까.

[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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