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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콱 죽어라” 남편에 농약 건넨 아내, 법원 “자살방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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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도중 남편에 농약병 건넨 60대 女

홧김에 마신 남편 숨져 자살방조 혐의 기소

법원, "남편 등 진술 신빙성 낮아" 무죄 선고

부부싸움 도중 남편에게 농약이 든 병을 건네 실제로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내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자살 방조 혐의로 기소된 신모(62)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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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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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2015년 5월 1일경 경북 울진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남편 김모씨와 크게 다퉜다. 김씨가 유일한 생계수단인 고기잡이 그물을 잃어버린 게 발단이 됐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씨가 홧김에 “죽어버리겠다”고 하자 신씨는 “이거 먹고 콱 죽어라”고 말하며 제초제가 담긴 음료수병을 건넸다. 김씨는 신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 실제로 농약을 마셨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8일 뒤에 결국 숨졌다.

검찰은 신씨가 농약을 건네줘 자살에 이르도록 방조했다며 재판에 넘겼다. 그런데 1심 법원은 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판에는 신씨가 실제 농약을 건넸는지와 김씨가 자살할 것을 예상했는지가 쟁점이 됐다. 자살방조죄가 성립하려면 자살하려는 사람의 의도를 인식하고 실제로 행위를 도와주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신씨의 혐의를 입증할 유력한 증거는 김씨가 숨지기 전 유족에게 남긴 음성 진술과 자필 메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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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2003.10.02.박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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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남긴 진술에는 부인과 다투던 당시 상황과 대화가 기록돼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메모 작성과 녹음이 모두 피고인이 없는 자리에서 피고인과 감정이 좋지 않은 다른 가족들만 있는 가운데 이뤄졌고, 농약을 건네준 시기와 경위, 음독 방법과 분량 등 구체적인 정황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며 “피해자와 유족 간에도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등 진술 자체의 신빙성에 상당한 의문이 든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농약을 마신지 3일 뒤에 병원에 갔다. 병원 진료기록에는 '농약을 마시지는 않았고, 입안에 한 모금만 넣었다가 토했다'고 적혀 있었다. 법원은 이를 자살의 의도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정황으로 판단했다. 신씨는 검찰 조사에서 "남편이 '당신 겁주려고 농약을 마셨는데 이불에 토해버렸다'고 말했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재판부는 "범죄의 증명은 단지 그러할 개연성이 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며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진실한 것이라고 확신을 갖게끔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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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법원도 김씨의 진료 기록과 진술 등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등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농약을 마신 것은 실제로 죽을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긴 것이라기보다 술을 마시고 배우자와 싸우면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충동적으로 벌인 것으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며 “피고인은 피해자가 실제 자살하거나 농약을 마시는 행동으로 나아갈 것을 예견할 수 없었다”고 의견을 밝혔다.

대법원도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사실오인의 위법이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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