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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대한민국 긴급점검]중국 진출 기업들 총체적 난국…“출구가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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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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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강길홍 기자]

중국 정부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의 고삐를 풀지 않으면서 한국 기업의 중국 사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대하며 기다리던 우리 기업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국 시장 철수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린 상황이다.

롯데그룹의 중국 철수는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처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롯데마트는 최근 중국 내 112곳 점포 전체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6개월째 영업중단이 이어지면서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지만 중국 당국이 규제를 풀어줄 여지를 보여주지 않아 내린 결단이다.

롯데그룹은 롯데마트 철수 외에도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의 현지 법인 매각설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롯데홈쇼핑은 중국 사업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롯데는 중국 시장에 공을 들여왔던 만큼 피해가 더욱 두드러졌다.

앞서 이마트가 중국에서의 사업 철수를 고민해오다가 사드보복 사태를 계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밖에 CJ오쇼핑·현대홈쇼핑 등의 국내 유통 대기업들이 사드보복에 따른 어려움으로 철수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사드보복의 영향은 초기에는 유통·관광 업계를 중심으로 나타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동차·전기차배터리 등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롯데마트의 중국 시장 철수가 한국 기업들의 ‘차이나 엑소더스’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중국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면서 공장 가동을 중단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됐다. 지난달 현대차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차는 중국 내 생산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한 바 있다.

기아차 국내 공장은 9월25일부터 잔업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사드보복을 이유로 꼽기도 했다. 기아차는 “올 3월 이후 본격화된 사드여파, 업체간 경쟁 심화 등으로 인한 판매하락, 재고증가로 인해 생산량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계도 중국 시장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정부가 나서주길 바랐지만 이젠 거의 포기한 상태다”라면서 “이제는 그냥 시간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라고 토로했다.

항공 업계도 사드보복에 따른 피해가 적지 않은 업종이지만 정부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인허가가 사업 방향에 직결되는 만큼 불만이 있어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게임 업계는 중국에 신작 출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 게임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서비스허가권인 판호를 받아야 하지만 지난 3월 이후 판호를 발급받은 국내 게임은 전무하다.

현재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레드나이츠’와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이 올해 초 판호를 신정하고 기다리고 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게임업계는 일본·미국 등 시장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진출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와 LCD패널 호황이 이어지면서 사드보복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던 전자 업계도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5조원을 투자해 중국 광저우에 대형 OLED 패널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정부의 승인이 미뤄지고 있다.

OLED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을 받은 국가 핵심기술로 해외 투자를 하려면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7월 심사를 요청했지만 정부는 핵심기술 유출, 국내 일자리 창출 등을 이유로 신중을 기하고 있다. 하지만 사드보복에 대한 여파가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시장에 ‘갤럭시노트8’을 출시했지만 중국 매체들이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 곤혹스러운 처지다. 중국 매체들은 사드사태와 관련한 ‘반한’ 감정을 부추기면서 삼성제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키우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겪는 피해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사드보복에 따른 정확한 피해액도 추산하지 못한다. 산업은행은 연간 8조5000억~22조4000억원으로 전망하는 정도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도 포기했다. 북핵 사태와 관련해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고 제소를 하더라도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가 별다른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WTO 제소’ 카드를 버리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WTO를 통해 중국의 노골적인 사드보복 조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표시할 수 있고 합법적인 대응전략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치적인 이유로 국내 기업들이 애꿎은 피해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며 “북핵 해결은 위한 협상은 WTO 제소와 무관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길홍 기자 sl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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