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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열린 시선/성재호]재판에 대한 간섭과 위협 있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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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선시대 풍속을 바로잡는 일과 감찰 업무를 맡았던 사헌부 수장인 대사헌의 흉배에는 해태가 새겨져 있다. 해태는 상상 속의 존재로, 중국 문헌 산해람(山海覽)은 시시비비를 가려내는 영물로 기록하고 있다. 국가의 기강을 세우고 억울한 일을 풀어주는 대사헌의 옷에 해태를 새긴 데에는, 냉철하고 사려 깊은 판단으로 옳고 그름을 정확히 짚어내길 바라는 기대가 담겼을 것이다. 실제로는 법관이 판단하는 과정에서 법률 적용의 과부족이 없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법관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판결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화가 둘 있다. 하나는 황희 정승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솔로몬에 관한 이야기이다. 황희 정승이 여종 둘의 다툼을 듣고 그 둘 모두에게 네가 옳다고 하였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상반되는 주장과 대립에 귀를 기울이는 신중함으로도 이해된다. 반면 솔로몬은 확실한 판단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다. 한 명의 아이를 놓고 서로 자신의 자식이라고 다투는 두 여인에게, 솔로몬은 아기를 반쪽씩 나누어 가지도록 결정내림으로써 아이를 살리려는 여인이 친모일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법관이 갖게 되는 고민과 노력은 황희 정승 못지않을 것이지만, 그 와중에도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끌어내기 위해 고독한 판단을 하여야 한다.

근자에 자신의 입장과 다른 판결이나 결정을 내린 법관을 상대로 위협적인 언사를 가하거나, 자신들의 주장대로 판결이 내려지도록 무리를 이루어 압력으로 비치는 언사를 가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압력적 언사도 말하지 않는 다수의 의견이 반영된 객관적 의견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며칠 전 국제적 기업평판도 조사에서 삼성의 평판도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글로벌 기업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크게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이다. 일부 정치인과 소위 댓글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법관은 의도된 간섭적 행태에 영향 받지 않고 독립된 입장에서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친모가 아니면서 목청을 돋운 여인의 주장에 휘둘리지 않고, 애절하게 모성애를 표출한 친모에게 아기가 돌아가게 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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