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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학살 아픔 치유할 ‘르완다 노래’ 찾아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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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카 봉사단원 김정임씨

르완다 식민지배·대학살 아픈 역사

‘아리랑’ 같은 고유 노래·동요 없어

“악보·이론 가르치고 합창단 지도

음악 통해 긍정적 마음 가졌으면”

중앙일보

코이카 봉사단원 김정임씨가 르완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 코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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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음악이 존재하지만, 정작 ‘그들만의 음악’은 없는 곳.

월드프렌즈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해외 파견 봉사단) 봉사단원 김정임(41)씨에게 르완다가 그랬다.

지난해 4월부터 수도 키갈리의 교육청에서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음악 교수법을 가르치고 있는 김씨는 2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에게는 ‘아리랑’도 있고 ‘섬집 아기’도 있지만, 르완다에선 악보가 있는 고유의 음악이나 노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교사가 기억하지 못하면 학생들에게도 노래를 전해줄 수 없기에, 우선 교사들에게 악보를 보는 법과 음악의 기초 이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전했다.

채보(採譜)가 안 된 채 구전으로 전승되고 있다는 얘기다. 동요는 더 열악했다. 그는 “아이들은 어른들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얼거리는 정도이고, 동요라고 할 만한 것은 외국의 비정부기구(NGO) 봉사단원들이 가르쳐준 노래 정도가 전부”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렇다고 르완다 사람들이 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김씨는 “대부분 사람들이 하루 종일 라디오로 음악을 듣는다. 스스로 노래를 만들어 휴대전화로 녹음해 음원을 만드는 일이 흔할 정도로 르완다 사람들은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음악 환경이 열악한 건 식민지배와 대학살이라는 아픈 근대사와 무관치 않다. 르완다의 다수 종족은 후투족으로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벨기에가 식민통치하면서 소수족인 투치족(전체 인구의 약 15% 내외)을 중용하면서 차별이 심해졌다. 62년 르완다가 독립한 이후 종족 간 분쟁이 심해졌고 이후 90년대 말 종족 대학살로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야 정부가 기능을 하게 됐다.

김씨는 “르완다 사람들은 (이런 사정 때문에) 음악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어떻게 하면 체계적으로 공유하고 잘 보전해서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던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안정을 찾은 이후에도 경제 개발에만 국가 역량을 쏟느라 음악은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같다. 지금도 음악은 선택 과목으로, 나에게 음악 교수법 연수를 받는 교사들도 영어와 수학이 본래 가르치는 과목이고 시간이 나면 음악을 가르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씨는 희망을 보고 있다. 그는 “르완다 노래 중에 가사가 슬픈 곡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렇게 음악을 통한 긍정적인 마음의 표현이 르완다인들에게는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점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김씨는 레메라 가톨릭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합창단도 지도하고 있다. 교사들보다도 배우는 속도가 훨씬 빨라 가르치는 보람도 크다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학교와 영어 학원에서 강사로 활동했던 그가 르완다에서 봉사 활동을 하게 된 건 “설명하기 힘든 힘 때문”이라고 했다.

“교회를 통해 캄보디아 고아원에 단기 봉사 활동을 갔는데 몸이 많이 아팠다. 그런데 아프다가도 막상 아이들을 도우면서 봉사를 하면 안에서 에너지가 솟더라. 앙코르와트 유적을 가는 것보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못 볼 어린이들이 있는 고아원에서 봉사하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기회를 얻지 못 한 사람들을 어떻게든 돕고 싶다는 마음에 이곳 르완다까지 오게 됐다.”

르완다에서 김씨의 봉사 활동 기간은 내년 4월이면 끝나지만 임기 연장도 생각하고 있다. 3월을 목표로 합창 경연대회를 구상 중이기 때문이다.

“르완다 사람들이 ‘르완다의 노래’ ‘르완다의 동요’라는 것을 만들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었을 때 ‘우와, 이 노래 좋다’고 감탄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르완다 사람들이 차근차근 이런 그들만의 음악을 찾도록 돕고 싶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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