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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닻 올린 ‘김명수號’] 법원행정처, 집행기관 개편 유력… 사법행정 제자리 찾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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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사법행정권의 분산 / 소수 인원이 행정권 독점 구조적 문제 / 金 대법원장 “권능 적절히 이관 검토” / 전국법관회의 상설화… 연구·의사 결정 / 법조계 “중앙집권적 시스템 개편 필수” / 외부통제장치 둬 민주적 통제 필요성 / ‘지방 자치 행정권’ 행사 방안 등도 거론

세계일보

“사법행정제도의 개혁은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이라는 관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이는 법원행정처에 집중돼 있는 권능의 분산을 의미합니다.”

25일 임기를 시작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달 초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법원조직의 최우선 혁신과제는 사법행정의 제자리 찾기”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김 대법원장의 취임에 따라 그간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에 쏠려 있던 사법행정권이 앞으로 일선 판사들로 이뤄진 전국법관대표회의체로 상당 부분 옮겨 갈 것으로 보인다. 행정처 내 소수의 법관끼리 기획·논의·결정해 위에서 아래로 ‘하달’하는 기존 방식을 탈피하고, 실제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중심이 돼 제안하고 논의한 내용을 행정처가 지원 및 집행하도록 하는 형태다.

김 대법원장은 이 같은 행정처 개편작업을 통해 “법원의 수직적 서열문화가 자연스럽게 소멸하고 보다 민주적이고 독립적이며 재판에 초점을 맞추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관측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행정처는 대한민국 사법행정업무의 전 과정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사법정책을 연구·수립하고 사실상의 정책 결정과 이를 일선 법원에 적용하는 집행 업무까지 모두 이 안에서 이뤄진다. 인사나 예산 등 대국회 업무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상 사법행정을 독점하는 셈이다. 전국 3000여명의 법관 중 소위 ‘발탁’된 40여명의 ‘엘리트 법관’들이 이곳에서 근무하며 업무를 수행한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이른바 피라미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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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처의 이 같은 기능과 역할, 시스템은 효율성 측면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사법부 내 소통이나 법관 독립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행정처 심의관에서 실·국장, 차장, 처장까지 에스컬레이터식 인사가 이뤄지면서 소수의 사람이 법관 인사 등 모든 사법행정권을 독점하는 구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에 대해 “사법정책과 행정의 방향성을 행정처의 고위 간부 몇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관회의, 전국법원장회의,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에 그 권능을 적절히 이관하거나 실질적으로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며 “사법행정에 대한 감독기능도 강화해야 한다”는 뜻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현재 행정처의 사법행정 연구·의사 결정·집행기능을 쪼개 분산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선 법원의 법관들이 참여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상설화해 사법행정 관련 논의 또는 의사 결정의 일부를 맡도록 하고, 행정처는 집행기능만을 담당하는 방안이다. 그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의 구체적 방안과 관련해서도 법관대표회의의 결론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많은 법조계 인사들은 중앙집권적인 사법행정시스템을 반드시 개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인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행사는 개별 법관들이 소신껏 재판을 잘할 수 있게 지원하고 도와주는 데 그쳐야 한다”며 “그런데 지금은 이를 통해 오히려 법관들을 줄 세우고 통제하고 있다는 데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도 “행정처에 사법행정권력이 집중될수록 행정처를 총괄하는 대법원장의 권력은 더 강화된다”며 “현재의 행정처 구조는 오히려 법관 독립이란 헌법의 대원칙을 저해하고 있는 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법원과 행정처가 법관 인사 평가부터 시작해 승진 여부를 모두 결정하는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외부통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국회 개헌특위가 논의 중인 사법평의회 도입과 비슷한 맥락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장기적으로는 법관 대표, 정치인 대표, 시민사회 대표들이 모여 사법위원회를 만들고 이 안에서 인사, 예산 등을 처리하는 방안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행정처의 비법관화가 과제로 꼽히기도 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을 맡아 온 기존 인사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며 “이는 법무부의 문민화 작업과 비슷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각급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 단위로 일종의 ‘지방 자치 사법행정권’을 행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국공법학회장인 이헌환 아주대 로스쿨 교수는 “각급 법원 단위로 나눠 내부에서 판사회의 등을 통해 인사나 예산 등을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울러 “이를 위해서는 사법부에게 독립적인 예산 편성권을 부여하는 방안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혜진·박진영 기자 jangh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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