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독일총선 '지각변동', 축배 들지 못한 메르켈...양대정당 최악 성적, 극우의 대약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독일 정치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독일 주간지 디자이트의 요제프 요페 편집장은 24일 치러진 자국 총선 결과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이날 총선에서 독일 정치를 양분해 온 중도 좌·우파 정당인 기독민주연합(CDU)과 사회민주당(SPD)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극우정당으로는 나치 집권 후 70여년 만에 연방의회에 입성했을 뿐 아니라 예상을 뛰어넘는 두 자릿수 득표율로 제3당에 올랐다. CDU를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4연임에 성공했지만 실망스러운 지지율에 축배를 들 수 없었다. 난민포용 정책을 고수해 온 메르켈 체제에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AfD의 선전이 올해 들어 주춤하던 유럽의 극우 바람을 추동할지 주목된다.

■메르켈의 ‘씁쓸한 승리’

독일 선관위 발표에 따르면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련은 이날 총선에서 33%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4년 전 총선보다 지지율이 8.5%포인트가 급락했다. 1949년 이래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사민당은 20.5%로 1933년 이후 최악이었다. 독일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기성 정당을 거부한 것이다.

반면, AfD는 12.6%를 얻어 3위를 기록했다. 창당한 지 4년밖에 안된 AfD로서는 눈부신 약진이다. 2013년 총선에서 지지율 4.7%로 연방의회 진출 문턱(5%)에 걸렸지만 4년 전보다 지지율이 무려 8.3%포인트나 늘었다. 0석이던 의석은 전체 709석 중 94석이 됐다. 동부지역에선 22.5%나 얻었다. 기민련보다 보수적인 자유민주당도 지난 총선보다 지지율을 5.9%포인트 끌어올린 10.7%로 4위를 차지했다.

메르켈 총리의 향후 4년은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기민·기사련과 대연정을 해 온 사민당은 연정 참여를 거부했다. 야당으로 살아남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마르틴 슐츠 사민당 대표는 “제1야당의 자리에 있겠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에게 남은 대안은 자유민주당, 녹색당과의 ‘자메이카 연정’이다. 기민련(흑)과 자민당(황), 녹색당(녹)의 색깔이 국기 색깔과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정책적 간극이 적지 않다. 연정이 성사되려면 메르켈은 자민당의 새 이민법, 녹색당의 화석연료 사용 금지 정책을 수용해야 한다. 슈피겔은 “유권자들이 현재 연정 정당을 혹독하게 심판했다”며 “메르켈이 4연임에 비싼 값을 치렀다”고 분석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반난민 민심, 양대 정당에서 이탈

유럽에서 정치지형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 독일에서 일어난 이변은 의미가 적지 않다. AfD 부상은 AfD에 대한 적극적 지지라기보다는 강렬한 반난민 민심이 기성 정당에 대한 지지철회로 이어졌다는 것이 지배적 분석이다. 25일 쥐트도이체차이퉁에 따르면 선거분석기관 선거연구그룹(FGW) 조사에서 AfD를 지지한 유권자의 89%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기독민주연합(CDU)이 더 이상 독일인의 관심사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고 여겼다. 특히 난민 문제가 핵심이었다. 메르켈 총리의 난민포용 정책에 쌓인 불만에 AfD가 내건 ‘반이민, 반난민’ 캠페인이 먹혔다는 얘기다.

기성 중도 양대 정당의 기록적 부진과 AfD의 부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AfD 지지자의 60%가 “다른 모든 정당에 반대”한다면서도 AfD와 신념을 같이해 지지한다는 사람은 34%에 불과했다. 여론조사기관 인프라테스트디맵 조사에서도 AfD는 지난 총선에 기권한 유권자 120만명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였고 기민·기사련에서 100만명, 사민당에서 50만명의 지지자가 이탈해 AfD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AfD의 정치적 영향력은

AfD가 제3당이 됐지만 정치적 위상은 애매하다. 사회민주당이 연정 참여를 거부하면서 제1야당 자리를 가져갔고 의회 내 동맹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분석가 오스카 니데마여는 도이체벨레에 “누구도 AfD와 연정을 맺으려 하지 않을 거고 AfD가 다른 정당과 타협한다면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은 25일 기자회견에서 “AfD는 정책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AfD는 의회 연단에 설 수 있다. 도이체벨레는 “‘제3국(나치)’ 이래 쓰이지 않던 말과 생각이 의회에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AfD 총리 후보로 나섰던 알렉산데르 가울란트는 “메르켈을 잡겠다”고 호언했다.

올 상반기 주춤하던 유럽의 극우들은 AfD의 선전에 환호했다. 프랑스 대선 결선에서 패배한 극우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트위터에 “AfD는 유럽인들을 일깨우는 새 상징”이라고 썼다. 네덜란드의 극우 자유당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는 르펜, 프라우케 페트리 AfD 공동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우리나라와 국민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총선에서 제1당을 넘보던 자유당은 공동 2위에 그쳤다. 이탈리아 극우 북부동맹의 마테오 살비니는 “변화의 바람이 커지고 있다”고 자평했다.

‘AfD 효과’를 가늠할 시험대는 다음달 15일 오스트리아 총선이다. 지난해 말 지지율 35%로 1위를 달리던 극우 자유당은 올 들어 집권 사회민주당과 공동 2위권에 머물러 있다.

유럽 경제담당 집행임원 피에르 모스코비치는 트위터에 AfD의 의회 입성을 두고 “충격”이라고 썼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알리며 “유럽을 위한 협력을 결연히 추구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지금 유럽은 어느 때보다 강력한 독일 정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