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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팩트체크]“우주 공간 평화적 이용, 왜 우리만 안되나” 이용호의 주장이 넌센스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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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조연설을 하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EPA=연합뉴스]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23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가 부당하고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안보리가 유독 북한에만 이중적이고 불공정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그의 주장은 사실일까.

①우주 공간의 평화적 이용은 자주권?=이 외무상은 첫 번째 이유에 대해 “안보리는 우주 공간의 평화적 이용을 국가들의 자주적 권리로 명시한 국제법에 위반되게, 그리고 위성 발사를 진행하는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문제시하지 않고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 위성 발사를 금지한다는 불법적이고 이중 기준적인 결의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그간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며 이유로 댄 게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 권리였다. 군사용 로켓이 아니라 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2015년 2월 7일 쏜 3단계 장거리 로켓도 ‘광명성 4호 위성’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안보리가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응해 채택한 결의 1718호부터 일관되게 금지해온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북한의 모든 발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미 결의 위반이었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국제사회를 속여 뒤에서 공격용 핵무기를 개발해왔고 지속적으로 그만 두라는 경고도 무시했다. 다른 나라들의 위성 발사는 다 허용돼도 북한만은 안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안보리는 2015년 3월 결의 2270호를 채택하면서 아예 인공위성 발사도 금지한다고 못을 박았다. 이후 북한은 위성이라는 핑계도 대지 않았다. 지난 7월 화성-14형 발사 성공을 발표하며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위한 최종 관문인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어느 지역도 타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외무성의 주장은 위성을 못 쏘게 해서 공격용 로켓을 쐈다는 궤변인 셈이다.

②국제법적으로 핵시험 금지 안됐다?=그는 “핵시험 금지에 관한 국제법이 아직 발효되지 않았으므로 이 문제는 철저히 자주권에 속하는 문제”라고 두 번째 이유를 댔다. 국제적 금지 규정이 없으니 각국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논리다.

핵실험 금지에 대한 유엔 차원의 결의 중 대표적인 것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이다. 1996년 채택됐다. 하지만 조약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들과 국내 비준절차가 끝나지 않은 국가들이 있어 아직 발효되지 않고 있다. 서명을 하지 않은 국가 중 한 곳이 바로 북한이다.

지난 7월엔 ‘유엔 핵무기 금지 협약’이 채택됐다. 핵무기의 개발·실험·생산·제조·비축·위협 등 모든 핵무기 관련 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번 유엔 총회에서 서명에 들어갔으며, 50개국 이상이 비준하면 90일 이후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북한은 여기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선 발효된 국제 규범이 없다고 핵실험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발효된 조약도 있다. 1969년 채택된 핵비확산조약(NPT)이다. 핵 비보유국의 핵무기 보유를 금지한 NPT는 70년 국제조약으로 정식 발효됐다. 북한도 85년 가입했다가 93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탈퇴하고 본격적 핵실험을 시작했다.

③유엔 헌장이 자위권 인정?=이 외무상이 든 세 번째 근거는 유엔 헌장이었다. 그는 “국가의 자위권을 인정한 유엔 헌장 51조에 어긋나게, 그리고 각종 신형핵무기들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문제시하지 않고 북한에 대해서만 핵무기 개발을 국제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매도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유엔 헌장 51조는 자위권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경우라는 단서가 명확하다. 51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유엔 회원국에 대해 무력 공격이 발생한 경우 안보리가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

51조는 또 “회원국이 취한 자위권 행사 조치는 즉시 안보리에 보고된다. 또 이 조치는 ‘안보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조치를 언제든지 취한다’는 이 헌장에 의한 안보리의 권한과 책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무력 공격 등 긴급한 경우에 회원국이 우선 자위적 조치를 취할 수는 있지만, 안보리의 권한이 이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북한은 자위적 조치라고 주장하는 핵실험을 한 이후에 안보리에 이를 보고한 적도 없다.

이 외무상은 다른 나라의 핵무기 개발도 언급했으나, 북한처럼 실제 사용이나 공격을 공언하는 나라는 없다. 정부 소식통은 “21세기 들어 핵무기로 다른 유엔 회원국을 공격하겠다고 하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다. 사실상 핵을 보유하고 있는 파키스탄과 인도의 사례도 있지만 북한과는 다르다”며 “이 외무상이 든 이유들은 전부 교묘한 말장난이자 넌센스”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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