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7 (수)

"경영 똑바로 하시오" 옐로카드 내미는 주주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스트운용 김두용 대표는 지분 1%를 가진 기관투자자 자격으로 지난 19일 '미샤'로 유명한 화장품 회사, 에이블씨엔씨에 내용증명 편지를 보냈다. 15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하겠다는 회사의 발표를 수용하기 어려우니 주주들에게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요구를 담았다. 김 대표는 "회사가 대규모 시설 투자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내에 현금을 이미 1100억원 넘게 보유하고 있어 유상증자는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올해 대주주가 된 사모펀드(IMM PE)가 싸게 지분을 늘리기 위해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진이 석연치 않은 의사 결정을 내렸는데 펀드 수탁자로서 눈감고 지나갈 순 없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도 주주 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가 본격 등장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주주 행동주의란, 주주들이 기업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투자 수익을 높이려는 행위를 뜻한다. 시세 차익이나 배당금에 주력해 눈치 보기만 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경영 투명성 제고나 부실한 의사 결정 추궁 등 기업의 경영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주 행동주의는 문재인 정부가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적극 추진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는 "주요 기업과 이해 상충 관계가 없는 독립계 운용사의 젊은 매니저들을 중심으로 주주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옐로우 카드' 내미는 주주들

밸류파트너스운용은 지난 12일 축전지 제조업체 아트라스BX 경영진에게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대주주(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가 아트라스BX의 자동 상장폐지를 방치하고 있어 주주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며 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아트라스BX는 지난해 자진 상폐 계획을 공시했고, 이후 공개매수를 진행해서 소액주주 비율이 크게 낮아졌다. 현재 소액주주 보유 주식은 95만주로, 코스닥 상장폐지 요건(소액주주 보유 주식 100만주 미만)에 해당한다.

조선비즈


밸류파트너스는 앞서 지난달엔 현대홈쇼핑 경영진에게 '현금성 자산을 과도하게 보유하고 있다'면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책을 시행하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김봉기 밸류파트너스 공동대표는 "한국은 대주주와 소수 주주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대기업을 옹호하는 문화나 법 체계가 고착화돼 있다 보니 대주주가 지분 30%만 갖고서도 기업의 주인인 양 행세하고 짠물 배당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말 기준 한국 상장사들의 배당성향(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은 19.3%로, 미국(53.8%), 일본(35.2%), 대만(62.5%)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김 대표는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과 상법 개정(다중대표소송제·집중투표제 등) 추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이 맞물리면서 주주의 의결권 행사 기회가 늘어날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 14일 "한국은 재벌 저격수라고 불린 주주 권리 운동가를 반독점 규제 기관의 수장으로 임명했다"면서 "지난 4년간 한국 기업들이 행동주의 투자자 요구를 받아들인 사례는 13%로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낮았지만 앞으론 기회가 커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행동주의 사정권에 들어간 한국 기업

전 세계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운용 자산은 2009년 362억달러에서 2015년 1300억달러(약 147조원)까지 연평균 23.7%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행동주의 펀드를 출시한 라임자산운용의 원종준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착되고 지배구조 개선이 추진되면 한국에서 주가가 20% 이상 오를 기업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단기 이익에 치중하기 때문에 기업의 장기 경쟁력엔 피해를 준다는 반론도 있다. 이에 대해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서 기업과 일정 수준의 대화를 하려는 '온순한 행동주의'는 외국에선 정상적인 투자 활동"이라면서 "'온순한 행동주의' 펀드가 늘어나면, 엘리엇처럼 기업을 압박하는 '난폭한 행동주의'가 단기 목표를 갖고 공격해 올 때 방패 역할을 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경은 기자(diva@chosun.com);김민정 기자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