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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뒤끝뉴스] “폭탄주 10잔? 끄떡 없어요” 안철수의 주사(酒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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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9일 전남 여수시 종포해양공원 낭만포차에서 여수지역 청년당원에게 술을 따르고 있다. 여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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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정치권으로 돌아온 뒤 내려놓았던 술잔을 연이어 들고 있습니다. 의사에서 사업가, 교수에서 대선 후보까지. 화려한 이력과 달리 안철수와 술은 큰 연관성이 없는 단어였는데요. 대선 패배와 비판 속에 복귀한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안 대표가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자 새삼 그의 주량과 과거 술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안 대표는 사석에서 자신의 주량을 “소주 한 병 정도는 충분히 마셨다. 양주도 제법 마시는데 잘 취하진 않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술을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사업을 했던 시절에는 좋든 싫든 술 자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인데요. 특히 그는 “평소 조깅 등 운동을 자주 해 체력만큼은 자신 있다. 술도 체력전 아니냐. 잘 안 마셔서 그렇지 작정하면 웬만한 사람만큼은 마실 것”이라며 여느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은근히 자신의 주량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며 웃곤 했습니다.

하지만 안 대표는 간염 등 건강상 이유로 1999년 술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2012년 대선 출마 선언 뒤, 안 대표를 두고 이른바 ‘룸싸롱 출입 의혹’이 시중에 돌았을 때도 그는 자신의 건강 문제 등의 팩트를 근거로 “어불성설”이라고 대처하기도 했었죠. 그는 이와 관련 기자에게 “결과적으로 누가 지라시를 만들었는지 몰라도, 내 간 건강까지 국민들에게 알려준 게 돼 버렸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정치권에서 만난 안 대표는 수차례의 당 워크숍 등 행사와 개인적인 식사 자리에서 폭탄주를 만들어 건네긴 했지만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안 대표가 정치권에서 술을 마신 것으로 유일하게 확인된 사건은 2015년 연말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해 이듬해 20대 총선을 준비할 무렵이 유일합니다. 당시 새로운 도전에 스트레스가 많았던 안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멘토이자 후원회장인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를 찾아 17년 만에 술을 한 잔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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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대표가 무소속 의원 시절이던 2013년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해 축하 떡을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최상용 후원회장, 안 의원, 최장집 이사장, 장하성 소장. 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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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독대를 했던 최 명예교수는 지난 4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나는 안 대표가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그 날도 그랬다. 오히려 ‘스스로 단점이 많고 실패도 한다’고 고백을 했다”며 “다만,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고 회상한 바 있습니다. 이후 안 대표는 최 교수에게 “총선이 시작되면 타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서 전국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노원구민들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고, 최 교수가 권한 위스키 한 잔을 안 대표가 조용히 마셨다고 합니다.

안 대표가 술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은 대선 이후 “대인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연이은 지적을 수긍했기 때문이라는 전언입니다. 최근 전문이 공개된 당 대선평가보고서도 안 대표의 대표적 단점을 ‘정치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개인주의적 경향’이라고 꼽았는데요. 타인과 술자리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않으려는 안 대표의 개인주의적 경향이 반정치적 이미지를 준 게 대선에서 정치적 한계로 작용했다는 의미였습니다.

여기에 국민의당 지지율이 이유미씨 제보 조작 사건 등으로 바닥을 치는 등 막다른 상황에 몰린 것도 안 대표의 변화에 영향을 줬다는 게 당내 평가입니다. 그가 평소 즐겨 쓰는 “나부터 못 바꾸면서 어떻게 나라를 바꾸겠느냐”라는 말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당 혁신의 의지를 강조하려 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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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시·도당위원장협의회 간담회에 앞서 위원장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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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대한 안 대표의 변화된 모습은 최근 당 안팎에서 뚜렷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는 호남 중진들과 주 1회 이상 회동하는 등 원내 의원들과 접촉을 늘리고 있으며, 당 대표 선거 경쟁자였던 정동영ㆍ천정배 의원 등과는 따로 만나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외에도 호남과 대구ㆍ경북, 충청 지역 등에서의 민심 청취 과정에서 당원들과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당 출입기자들과 같은 날 점심ㆍ저녁 연속으로 식사 자리를 가지며 폭탄주를 총 10잔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안 대표는 당분간 술을 정치의 도구로 계속 사용하겠다는 의지도 밝혔습니다. 그는 폭탄주 10잔 마신 날의 기억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웃으며 “저 (술에 잘) 안 취해요”라고 답한 뒤 “99년 이후, 못 먹는 것은 아닌데 안 먹다가 오랜만에 술을 마셨지만 크게 (주량이) 달라진 것 같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정치인으로, 술자리를 적극적인 대화의 수단으로 활용할 생각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치인들이 어디 술을 마신다고 속내를 털어놓기야 하겠어요?”라고 반문하면서도 “저에게 술자리 스킨십 등 여러 부분이 부족하다고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부분이 있으니, 사실이든 아니든 고쳐야겠죠. 앞으로도 더 열심히 술자리를 가지고 노력할 겁니다”고 답했습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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