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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Why] 제사는 장손이, 추석엔 성묘… 퇴계도 朱子도 그렇게 생각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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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의 國運風水]

추석에 제사 지내지 말고 성묘하지 말자. 조상님 차례 안 지내고 성묘 안 가겠다는 게 아니다. 이치를 드러내 밝혀보고자 할 뿐이다. 필자는 증조부모·조부모·부모 제사를 모신다. 20년 전 제사를 모실 때 일이다. 당시 증조부의 막내딸(왕고모)이 생존해 있었다. 증조부 제사를 모실 때마다 '증손자인 나보다 당신의 막내딸이 제사를 모셔야 더 애틋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왕고모는 100세 넘게 살다 돌아가셨다. 또 조부의 제사를 모실 때마다 생각한다. 당신의 아들(숙부)과 딸들(고모)이 생존해 있으니 손자보다는 그들이 제사를 모심이 마땅하지 않은가? 제사를 회피하려는 게 아니다. 이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김두규 교수가 차린 제사상. 와인을 비롯해 가족이 먹고 싶은 음식을 제물로 올린다. / 김두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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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퇴계(이황)와 고봉(기대승) 선생이 주고받은 편지글에서 이 문제를 논하는 대목을 발견했다. '4대(고조)까지 모셔야 하느냐, 3대(증조)까지 모셔야 하느냐'는 문제도 언급되었다. '집안이 가난하면 어떻게 4대까지 모시겠느냐' 했다. 또 '윗대 어른이 살아계신데 이를 무시하고 장손 혹은 증손이 제사 지내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였다. 윗대가 생존해 있으면 마땅히 그 일족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내야 한단다. 맏며느리(종부)에게 제사를 모시게 하는 것도 이치가 아니라 했다. 본디 맏며느리에게 제사를 주관하게 함은 그녀가 과부로 내쳐지는(혹은 홀대받는)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 근본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또 왜 아들만 제사를 모시고 딸은 제사를 모시지 않는가?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제사와 차례는 다르다. 조상이 돌아가신 날을 추념함이 제사(祭祀)이다. "祭는 사람과 귀신이 서로 교제한다[際]는 뜻이며, 祀는 似(사·같다)의 뜻이다. 즉 돌아가신 조상의 혼령과 만남[際]을 갖는 것과 비슷한 것[似]이란 뜻이다. 만날 듯 말 듯한 조상과 후손과의 은밀한 교감 행위이다. 따라서 제사는 제물을 많이 장만하는 것이 아니라 모시는 이의 정성이 중요하다."(김기현 전북대 명예교수·퇴계학)

제사상에 무엇을 올려야 하는가? 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사상 음식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탕·전·생선을 올리지 않은 지 오래다. 냄새가 심한 데다 아무도 먹지 않는다. 그 대신 참석자들로 하여금 먹고 싶은 것을 추천하게 한다. 초콜릿·과자·피자·치킨 등은 아이들이, 와인은 필자가 좋아하는 제물이다.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는 할 일이 줄고 제사 음식 낭비가 없어 좋단다. 필자의 독단이 아니다. 이른바 '향벽설위(向壁設位)인가 향아설위(向我設位)인가'에 대한 본질적 문제이다. 향벽설위란 벽을 향해 음식을 차려놓은 것을 말하며, 향아설위는 나(후손)를 향해 음식을 차리는 것을 뜻한다. 후손이 맛있게 먹고 마시면 조상님도 기분이 좋다. 왜 그러한가? 내(후손) 안에 조상이 계시기 때문이다. 조상과 후손 사이 동기감응(同氣感應)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제사와 달리 차례를 지내는 추석(그리고 설)은 무엇인가? "그날은 가족이 오붓하게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거워하는 속절(俗節)이다. 옛날에는 없었으나 후대에 생겨 온 가족이 제철 음식을 마련하여 즐기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날 어찌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돌아가신 부모님도 함께하십사' 하는 마음의 발로가 차례이다. 예의 올바름이 아니나[非禮之正] 인정상 그럴 수 있다." 성리학자 주자(朱子)의 말씀이다.

더구나 성묘(省墓)는 추석날 할 일이 아니다. 전국의 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날 무슨 성묘인가. 성묘는 평소에 조상님 무덤[墓]을 둘러보는[省] 일이다.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좋고(지내도 좋고), 성묘를 하지 않아도 좋다(평소에 자주 하면 더 좋고). 온 가족이 추석(설)을 즐기면 조상님도 좋아하신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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