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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스라엘판 ‘사드’는 게임 잘하는 병사가 조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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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력 잠수함, 디지털 세대 고려

4300만원 잠망경 전용 컨트롤러

3만원 가정용 게임기 장치로 교체

가상현실 전투 사실성 높아져

탱크·전투기 훈련에 속속 도입

빈 라덴 사살한 네이비실 대원 일부

팀 작전 내용 게임회사에 유출도

게임 같아지는 전쟁, 전쟁 같아지는 게임
중앙일보

미 해병대 병사들이 실내 훈련장에서 개인용 가상현실(VR) 고글(안경)을 끼고 전투체험을 하고 있다. ‘미래 몰입형 훈련 환경(FITE)’이라고 불리는 이 가상훈련 시설은 병사들이 실제 전쟁터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도록 만들어졌다. [사진 미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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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의 주력 핵추진잠수함인 버지니아급(7000t) 전투정보실에 곧 신형 장비가 들어선다. 가정용 게임기인 엑스박스(Xbox)의 컨트롤러(조종장치)다.

버지니아급 잠망경은 특수 카메라로 외부 영상을 찍어 보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미 해군은 3만8000달러(약 4300만원)짜리 전용 조종장치를 사용했다. 이를 단돈 30달러(약 3만3000원)에 불과한 게임기 컨트롤러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미군 기관지인 ‘성조지’에 따르면 디지털 세대인 승조원들이 게임기 컨트롤러에 친숙한 점도 고려됐다고 한다.

노르웨이 육군은 2014년부터 전차병에게 가상현실(VR) 헤드셋인 ‘오큘러스 리프트’를 나눠줬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VR 게임을 즐기는 데 반드시 필요한 주변 장치다. 전차 외부에 달린 4대의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전차병의 오큘러스 리프트로 보낸다. 이렇게 하면 전차병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외부 상황을 마음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아이들 놀잇거리라고만 생각되는 게임이 요즘 전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게임의 군사화는 군이 게임기 주변 장치를 장비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게임이 전쟁 같아지고, 전쟁이 게임 같아지는 모습이 보인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게임은 가상현실에서 목표를 달성하거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유희(遊戱)”라며 “전쟁은 초창기부터 스포츠와 함께 게임의 모티브였다”고 말했다. 최초의 컴퓨터 게임으로 꼽히는 1962년 ‘스페이스워!’는 우주선을 움직여 상대 우주선을 격추하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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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훈련 시설에서 가택수색 중인 미 해병대 앞에 게릴라가 나타났다.[사진 미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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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장 관련 깊은 게임 장르는 1인칭 슈팅 게임(FPS)과 시뮬레이션이다. FPS는 게이머가 총으로 상대를 쏘는 게임이다. 시뮬레이션은 주로 전투기나 탱크를 모는 내용이다.

이들 장르 게임의 소재가 전쟁이다 보니 게임 개발자들은 점점 더 현실적인 전쟁의 모습을 게임 속에서 그려 내려 노력한다.

2012년 미국 법원은 7명의 전직 미 해군 네이비실 데브그루(팀6) 대원들을 기밀 누설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팀6는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미국 최정예 특수부대다. 그런데 이들이 ‘메달 오브 아너’라는 FPS 제작에 참여하면서 문제가 됐다. 팀6의 작전 내용이 게임을 통해 유출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은 2009년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라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저작권을 사들였다. 이 게임은 현직 조종사들로부터 실제 항공기 조종과 거의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록히드마틴은 자사가 제작한 스텔스 전투기인 F-22와 F-35의 조종교육용으로 이 게임을 활용하고 있다.

군사 전문 자유기고가인 최현호씨는 “최근 VR과 증강현실(AR)을 이용한 게임이 늘어나면서 사실도가 정말 높아졌다. 실전과 같은 훈련을 원하는 군이 게임에 주목한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항공산업 전문지인 ‘에비에이션위크’의 한국통신원 김민석씨는 “컴퓨터 그래픽은 시나리오에 얽매이지 않는 게임이 영화보다 더 박진감 넘친다”며 “미국 국방부는 게임 관련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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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응용한 탱크시뮬레이터에서 전차병이 운전 훈련을 하고 있다.[사진 라인메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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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은 80년 탱크 게임인 ‘배틀존’을 응용해 장갑 보병 전투차량인 브래들리 훈련장비(시뮬레이터)를 만들었다. 배틀존은 탱크를 몰아 적 탱크를 격파하는 게임이다. 이와 같은 게임을 응용한 시뮬레이터는 점점 더 진화해 요즘은 헬기·전투기·탱크 조종훈련에서 필수 과정이 됐다.

미 해병대는 2011년 캘리포니아에 1.2㏊ 규모의 가상훈련시설을 만들었다. 이곳에 입소한 해병대원은 개인용 VR 고글(안경)을 쓴다. 이 고글을 통해 보이는 전경은 모두 컴퓨터 그래픽이다. 해병대원이 진짜 전쟁터에서 작전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졌다. 해병대원이 적을 발견해 총을 쏘면 컴퓨터가 명중 여부를 가린다.

미 육군은 가상훈련시설을 더 개선해 보병의 총격전뿐만 아니라 헬기·탱크 등 다양한 무기가 동원된 전투를 모사(模寫)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우리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미국과 비슷한 가상전투훈련센터를 이르면 2019년까지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 리버풀대의 재클린 휘트크로프드 박사가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겨 하는 사람과 전투기 조종사, 민간 항공기 조종사의 무인기(UAS) 조종 능력을 비교하고 있다. 휘트크로프트 박사는 “아직 초기 단계 연구라 게이머가 훌륭한 무인기 조종사라고 결론을 내리긴 부족하다”고 했지만 상대적으로 비행 시뮬레이션 게이머의 실력이 더 나았다고 한다. 게임을 자주 하는 사람이 외과 수술 솜씨가 더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군사잡지 ‘플래툰’ 편집장인 홍희범씨는 “미 육군은 프레데터·그레이이글 등 무인기 조종장치를 만들 때 게임을 많이 참조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언론에 나온 무인기 조종 화면은 게임과 비슷하다.

이스라엘군은 아예 게임을 잘하는 병사들을 따로 뽑아 첨단 방어무기인 ‘아이언돔’ 작동을 맡겼다. 아이언돔은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쏘아대는 로켓포를 요격하는 무기로 미니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다. 아이언돔 조종 화면엔 다양하고 복잡한 기호가 나오는데 이를 재빨리 읽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데 게이머만 한 사람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김민석씨는 “전쟁이 더욱더 무인화하고 원격화할수록 게이머가 최강 병사로 인정받게 된다”고 말했다.

‘디스 워 오브 마인’ ‘스펙 옵스’ … 전쟁 참상 고발하는 ‘반전게임’
모든 게임이 전쟁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게임도 제법 많다. 이른바 반전(反戰) 게임들이다.

폴란드의 게임사가 2014년 내놓은 ‘디스 워 오브 마인’이 대표적이다. 이 게임은 1992~96년 보스니아 내전을 모티브로 삼았다. 게임 속 주인공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다. 주인공은 낮에는 저격수 때문에 돌아다니지 못한다. 해가 진 뒤 밖으로 나와 음식과 물을 찾아다니며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스펙 옵스:더 라인’이란 게임의 주인공은 특수부대 대장이다. 게임은 총을 쏴서 적을 죽이는 1인칭 시점의 슈팅 게임(FPS)이다. 그런데도 게임은 전쟁의 참혹한 폭력과 광기를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군인들이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는 장면도 있다. 이 게임이 전쟁을 암울하게 그린 이유는 제국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비판한 19세기 소설 『어둠의 심연』이 원작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79년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이기도 하다.

유명 게임인 ‘폴 아웃’에선 미국과 중국 간 핵전쟁 후 세계가 나온다. 이 게임의 주인공은 방사능 낙진으로 황무지로 변해 버린 미국에서 생존해야 한다. 게임 중간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War never changes)”라는 메시지가 자주 나온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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