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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20년 논의 ‘공수처’…이번엔 야당도 움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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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한겨레

한인섭 법무·검찰개혁위원장(왼쪽 셋째)이 18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관련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위원회는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와 검찰 비리를 엄벌해야 한다는 국민의 여망을 담은 공수처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 및 공수처 법안에 포함되어야 할 주요 내용에 대해 권고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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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권고안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정부가 검찰개혁의 핵심 공약인 공수처 신설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고, ‘사정’이라는 국가 중추 기능과 구조를 둘러싼 격론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공수처’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게 1996년이었으니, 존재하지도 않는 조직을 둘러싼 논의의 역사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16대 국회에서 별도의 공수처 설치 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검토조차 되지 못하고 방치되다 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17대, 18대, 19대에서 발의됐던 공수처 법안들도 매번 같은 운명을 되풀이했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사이 공수처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있었고, 국민들도 이제 공수처 논의에 익숙하다. 기소를 독점한 검찰을 개혁할 필요성이 커지고, 국정농단 사태 등 최고위 권력자들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면서 공수처 설치 여론은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공수처 논의 때마다 언제나 따라붙는 맥빠지는 질문이 있다. ‘이번엔 가능할까? 국회를 통과할 수 있나?’

공수처를 누가, 어떻게, 누구를 대상으로 운영할지 논의하기에 앞서, 그런 조직을 만들 수 있을지가 언제나 불투명했다. 역대 정권 중 공수처 설치 의지가 가장 강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마저 보수정당과 검찰의 반발에 부딪혀 좌절해야 했고, 그의 자서전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게 정말 후회스러웠다”는 진한 회한만 남았다.

국회의 문턱을 넘기가 왜 그리 어려웠을까? 올해 초 보수정당의 핵심 당직을 맡고 있던 한 중진 국회의원이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공수처 도입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막을 거야. 한번 생각해봐. 고위 공무원들은 비리가 그렇게 많지 않아. 있더라도 은밀해서 잡아내기도 어렵고. 그런데 조직은 한번 만들어지면 성과를 내야 하잖아. 그러면 뭐야? 결국 선거 때 돈 필요하고, 지역구 민원 때문에 이리저리 부탁할 게 많은 국회의원이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고. 공수처 생기면 거기서 종일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미행을 할 텐데, 그런 조직이 생기는 걸 내가 찬성할 이유가 없지. 안 그래?”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안이 나온 뒤 “푸들로 충분한데 맹견을 풀려고 한다”고 비꼬았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속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입법권을 쥐고 있는 이들은 그저 곁에 둘 푸들이 편하지, 언제 자신을 물어뜯을지 모르는 맹견을 들이길 원치 않는다.

권고안을 받아든 법무부는 현재 국회에 최종 제출할 정부안을 확정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고민의 핵심은 ‘설립 단계부터 제대로 된 공수처냐’, 아니면 ‘부족하더라도 일단 공수처를 만드는 게 중요한가’를 두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것이다.

위원회의 권고안은 사실 전자에 가깝다. 기소권을 가진 공수처 검사 최대 50명과 고위공직자 우선수사권, 수사 중 발견된 다른 사안에 대한 수사권까지 합치면 언론의 표현대로 ‘대검 중수부+서울지검 특수부’ 수준을 뛰어넘는다. 박근혜 정부 때 제대로 권한도 주지 않고 만든 특별감찰관 제도의 몰락을 보면, ‘처음부터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일단 공수처 자체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과 김명수 대법원장 인준안 표결을 거치며, 정부·여당은 이미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한 터다. ‘좋은 재료’로 여론의 지지를 얻고 야당이 반발할 만한 명분을 주지 않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나서 야당 지도부를 설득하고, 여당 대표가 과거 발언을 사과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가까스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

공수처 신설은 이번 인준안 처리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본회의에 상정하려면 검사 출신인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이 상임위원장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직권상정은 불가능하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공수처에 찬성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선 이견이 있다. 양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세부 안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무늬만 공수처’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정부·여당으로선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양보로 야당을 설득하는 고도의 종합예술을 펼쳐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수준의 ‘옥동자’를 낳는 과정이 이렇게 지난하다.

석진환 사회에디터석 법조팀장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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