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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세계적 컬렉터 울리 지그 "왜 미술품을 사서 기증하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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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중국 현대미술 '슈퍼컬렉터'…'코리아갤러리위켄드' 맞춰 방한

뉴스1

스위스 출신 현대미술품 컬렉터 울리 지그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주중 스위스 대사를 지낸 울리 지그는 대사 시절 수집한 중국 현대미술 1,500여 점을 홍콩 엠플러스 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2017.9.2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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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을 오랫동안 했지만 한번도 제 '취향'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고, 중요한 국립기관이 반드시 소장해야 할 작품들만 모았죠. 처음부터 '축적'이 아닌 '기증'이 목표였고요. 좋은 컬렉터는 자신만의 컬렉션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위스 출신의 외교관이자 사업가, 그리고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인 울리 지그(Uli Sigg·71)가 2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뉴스1과 단독으로 만나 자신의 미술 컬렉션 철학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40여 년간 중국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2300여 점을 수집했다. 이 중 1500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컬렉션을 2019년쯤 홍콩 서구룡문화지구에 문을 여는 M+미술관에 기증했다. 홍콩 정부가 문화 인프라 구축을 위해 개발 중인 서구룡문화지구의 핵심 전시공간 M+미술관이 울리 지그의 컬렉션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도 중국 현대미술에 관심이 없던 시절, 그는 중국의 국립기관에 기증을 목표로 중국 현대미술 역사를 쓰기 위한 작품들을 '광적'으로 모았다.

지난해 3월에는 M+에 소장된 지그 컬렉션 80여 점을 볼 수 있는 전시가 홍콩 쿼리 베이(Quarry Bay)에 위치한 콘월하우스(Cornwall House) 전시 공간에서 열려 세계 미술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장웨이, 왕광이, 장환, 리우 웨이, 차오 페이 등 1950년대 이후 중국 출신 세계적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총망라해 보여줬다.

울리 지그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김선영)가 주관하는 '코리아 갤러리 위켄드'(21~24일)를 위해 최근 방한했다. 문체부와 예경은 국내 최대 규모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 기간에 맞춰 해외 유수의 미술기관 관계자 및 컬렉터들을 초청했다. 해외 미술인들에게 한국 작가와 한국 갤러리를 소개하는 행사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2회째를 맞았다.

다음은 울리 지그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뉴스1

스위스 출신 현대미술품 컬렉터 울리 지그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중 스위스 대사를 지낸 울리 지그는 대사 시절 수집한 중국 현대미술 1,500여 점을 홍콩 엠플러스 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2017.9.2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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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문은 몇 번째인가.

▶아마도 10번 이상은 왔을 거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중국을 비롯해 북한, 몽고 등 사회주의 3개국을 담당하는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한국도 자주 찾았다. 중국은 1970년대 말부터 왕래했다. 중국과 외국 기업이 합작한 첫 조인트 벤처회사에서 나는 첫번째 외국인 투자자였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미술 전시들을 봤는지.

▶사실 오늘 오후 3시쯤 한국에 도착한 터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만 둘러봤다. 건물도 크고 조형적으로도 훌륭한 공간이다. 전시는 '올해의 작가'전을 봤는데 시간이 짧아서 제대로 몰입해서 보진 못했다.(웃음)

-중국 현대미술 수천 점을 컬렉션하게 된 이유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나는 중국 현대미술 이전에도 현대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였다. 그래서 1970년대 말부터 중국을 왕래하며 자연스럽게 중국 현대미술에도 관심을 가졌다. 두번째, 처음에는 중국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편협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중국 현대미술을 보면 중국 현실의 또 다른 측면, 더 넓은 면을 보지 않을까 해서 관심을 갖게 된 거다. 당시가 중국 현대미술이 태동하던 때였고, 그러한 태동기를 목격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때에는 작품을 구매하지 않았다. 사실 좋아보이지도,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았다.

-그런데 수천 점의 작품을 사서 다시 중국에 기증을 했다. 큰 비용이 들었을텐데.

▶그렇지 않다. 처음 중국 작품들을 살 때에는 그렇게 많은 돈이 들지 않았다. 중국 미술이 인기있던 시절이 아니어서 약 200~500달러 정도면 한 작품 정도 살 수 있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1년에 100만달러 정도만 있으면 사고 싶은 작품들은 다 살 수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갑자기 중국 미술품 가격이 급등한 거다. 그러나 나는 작품들을 '축적'(accumulation)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언젠가는 작품을 기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모았다. 중국 기관조차 중국 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때였다. 처음 한 두 점은 나를 위해 샀지만, 나중에는 나의 취향이 아닌 '중국 국립기관이 수집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모았다. '비이성적'(irrational manner)으로 보일만큼 짧은 시간에 수많은 작품들을 '백과사전'(encyclopedia)식으로 컬렉션 한 것이다. 중요한 건 언제, 어디에 기부하느냐였다.

뉴스1

스위스 출신 현대미술품 컬렉터 울리 지그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주중 스위스 대사를 지낸 울리 지그는 대사 시절 수집한 중국 현대미술 1,500여 점을 홍콩 엠플러스 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2017.9.2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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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미술 작품 외에 다른 컬렉션은.

▶유럽, 아프리카 작품들도 몇 백점 있다. 중국 현대미술을 수집할 때는 중국 미술의 발전상을 보여줄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맥락을 갖고 했지만, 나머지는 나의 취향을 기준으로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술품은 돈을 버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작품을 사고 판 적은 없다. 홍콩 M+ 측에서 내게 기증작 일부에 대해 2200만달러를 제안했다. 기증작 중에는 아마도 수억 달러쯤 하는 것도 있을 테지만, 나는 얼마나 돈이 되는지 여부에는 흥미가 없다. 그동안 다른 여러 미술기관들도 내 컬렉션에 대해 구매 의사를 밝혔었다. '아예 개인 미술관을 만드는 게 어떻느냐'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미술은 공공의 것이어야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는 상업 갤러리의 '포로'가 되고 싶진 않았다.

-중국 외에 북한에서도 사업가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북한미술은 잘 알려지지 않은터라 일부 컬렉터들이 궁금증을 갖고 있다. 북한 미술품도 갖고 있나.

▶7~8점 정도 있다. 전통회화 작품도 있고 사회주의에 기반한 리얼리즘 작품도 있다. 특히 후자에 관심이 많다.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에서도 이 부분은 내게 중요한 기준이었다. 중국 현대미술의 첫번째 세대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미술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것과는 다르게 '감정적인 변주'가 있다. 북한에서는 작품 구매가 쉽지 않아 북한 정부와 협상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뉴스1

스위스 출신 현대미술품 컬렉터 울리 지그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중 스위스 대사를 지낸 울리 지그는 대사 시절 수집한 중국 현대미술 1,500여 점을 홍콩 엠플러스 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2017.9.2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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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산수'로 유명한 한국작가 이세현의 작품도 구매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점에 매료됐나.

▶한국 작가들 작품을 여럿 갖고 있다. 그 중 이세현 작가가 있다. 북한과 관련이 있는 남한의 한국 작품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세현 작가가 DMZ 풍경을 다룬 점이 흥미로웠다.

-이세현 작가 외에 한국미술 컬렉션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북한 노동자들과 협업하는 함경아 작품도 몇 점 갖고 있다. 단색화도 있고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갖고 있다.

-컬렉터로서 생각하는 좋은 작가는.

▶반드시 나를 놀라게 해야 한다. 내가 혼자서 갈 수 없는 곳으로 나를 이끌어 주는 작가가 좋은 작가, 좋아하는 작가다. 그러나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적절한 형태(Form)를 찾지 못하면 좋은 작가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나 콘셉트를 1%도 표현하지 못하는 작품들도 많이 본다.

-컬렉터로서 다른 컬렉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컬렉션에서 중요한 건 축적이 아니다. 무엇에 '초점'(Focus)을 맞출 것인가다. 취향대로 이것 저것 다 모을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남는 컬렉터는 자신이 집중하는 초점이 있어야 하고, 전체적인 컬렉션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다 만들어져야만 비로소 진정한 컬렉터라고 부를 수 있다. 매우 어렵고도 중요한 부분이 바로 컬렉션의 '규율'(discipline)이다.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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