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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 해 8400만 마리 밍크들, 산 채로 온몸이 찢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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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는 야생동물들] <3> 모피 산업 위해 가죽이 벗겨지는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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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포흐얀마 지역의 한 농장에서 모피 생산을 위해 사육되던 북극여우.(사진 핀란드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위한 정의'(Oikeutta eläimille) 제공)©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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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철장 우리 안에서 잔뜩 겁을 먹은 채 웅크리고 앉아있는 정체불명의 동물. 얼굴과 몸통을 두르고 있는 여러 겹의 주름진 살집은 앞을 보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힘겹게 만든다.

이 생명체는 다름 아닌 북극여우. 날렵한 몸으로 야생에서 1000km 이상의 넓은 행동반경을 자랑하는 북극여우가 왜 이토록 비좁은 철장 안에 갇힌 것일까. 그것도 비대해진 몰골로.

최근 핀란드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위한 정의’(Oikeutta eläimille)가 공개한 영상 속 장면이다. 핀란드 포흐얀마 지역의 한 농장에서 모피 생산을 위해 사육되던 북극여우는 몸무게가 무려 19kg으로, 정상 체중 3.5kg의 다섯 배가 넘었다. 모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지방함량이 높은 사료를 먹여 억지로 살을 찌운 것이다.

좁은 철장에 갇혀 살아있을 때도, 죽어가면서까지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북극여우 20마리가 희생돼야 한 벌의 모피코트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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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포흐얀마 지역의 한 농장에서 발견된 북극여우는 모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지방함량이 높은 사료를 억지로 먹여 몸무게가 19kg이었다.(사진 핀란드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위한 정의’(Oikeutta eläimille) 제공)©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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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스위스 동물보호단체인 ‘스위스동물보호기구’는 중국 허베이 지방을 잠입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은 참담했다. 작업자들은 사후경직이 오기 전 모피를 벗기기 위해 동물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후 한쪽 다리를 거꾸로 걸어놓고 의식이 있는 동물의 털가죽을 벗겼다. 머리끝까지 가죽이 벗겨진 벌거숭이 몸뚱이들은 바닥에 쓰레기더미처럼 쌓였고, 그 안엔 피부가 다 벗겨진 후에도 10분 동안 심장이 뛰는 동물이 있었다.

2011년 1월 국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모피의 불편한 진실이 공개됐다. 모피를 만들기 위해 라쿤을 잡아 온 한 상인이 둔기로 마구 내리쳐 기절시키고 가죽을 벗겨냈다. 가죽이 벗겨진 라쿤 한 마리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몸을 쳐다봤다.

해마다 모피를 생산하기 위해 수천만 마리가 넘는 동물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그중 85%는 공장식 축산 형태의 모피 농장에서 길러지는 동물들이다. 사방이 뚫려 있는 ‘뜬장’ 안에 구겨 넣어진 동물들은 지붕도 없는 감옥 같은 곳에서 겨울이면 매서운 눈비와 칼바람을, 여름이면 따가운 뙤약볕을 그대로 몸으로 맞아야 한다.

나머지 15%는 야생에서 포획된 코요테, 비버, 물범, 물개, 족제비 등이다. 국내에서 인기 있는 명품 브랜드 캐나다구스는 야생에서 잡은 코요테 털을 사용하는데, 덫에 걸린 코요테는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다 다리가 잘리기도 하고, 부상과 출혈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모피 농장에서 주로 사육되는 동물은 밍크, 여우, 라쿤 등이다. 이들은 넓은 곳에서 사는 습성을 가진 야생동물이다. 좁은 사육장에 갇힌 동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뜬장 안을 빙글빙글 돌거나 왔다 갔다 하는 정형행동, 팔다리·꼬리 등 자신의 신체 일부를 뜯어 먹는 자해행동, 동족끼리 서로 잡아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까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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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사육장에 갇힌 야생동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뜬장 안을 빙글빙글 도는 정형행동, 팔다리·꼬리 등 자신의 신체 일부를 뜯어 먹는 자해행동까지 보인다.(사진 핀란드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위한 정의'(Oikeutta eläimille) 제공)©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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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 생산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은 대개 생후 6개월 때 도살된다. 도살은 ‘좋은 품질의 상품’이란 미명 하에 잔인한 방법으로 이뤄진다. 일산화탄소를 사용한 질식사나 입이나 항문, 생식기에 전깃줄을 넣어 전류가 흐르게 하는 전살법 등 법적으로 허가된 도살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질식사 과정에서는 피부가 벗겨지는 도중 의식이 돌아오기도 하고, 전살법은 의식을 잃기 전 심장마비의 고통을 겪는다.

이런 모피 산업의 잔인성 때문에 모피 농장을 금지한 나라들도 있다. 영국,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등에서는 모피를 위해 동물을 기를 수 없다. 유럽연합(EU)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밍크를 생산하던 네덜란드도 밍크 사육을 단계적으로 금지한다고 밝혔다. 독일과 스위스는 모피 농장이 불법은 아니지만 운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동물복지 규정을 정하고 있다.

모피 생산뿐 아니라 수입과 판매까지 금지하는 나라도 늘어나고 있다. 뉴질랜드는 밍크 수입을 금지했고, 미국에서는 지난 2013년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모피 판매가 금지된데 이어 올해 4월 버클리 시도 모피 판매를 금지했다. 인도 역시 올해 1월 밍크, 여우, 친칠라의 모피 수입을 금지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모피를 판매할 경우 6개월 징역형에 처하는 ‘모피금지법’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모피로 거래되는 동물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 국제모피연합에 따르면 모피 거래는 밍크의 경우 1990년대 4500만 마리에서 2015년 8400만 마리로 두 배 가량 늘었다. 시장 규모는 400억 달러(45조3200억원)에 달한다.

지난 20년간 모피 농장은 동물을 사육하는 데 규제가 없었고, 노동력이 싼 중국으로 옮겨갔다. 국제모피연합에 따르면 2014년 한해 중국은 3500만 마리의 밍크 모피를 생산해 전 세계 밍크 모피 생산량의 40%를 차지했다. 이어 덴마크가 1780만 마리로 뒤를 이었고, 폴란드, 네덜란드, 핀란드, 미국 순으로 많은 밍크 모피를 생산했다.

중국 모피 농장에서는 동물학대 행위가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동물보호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가족이 소규모 형태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어 정확한 수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비인도적인 중국 모피 생산이 문제가 되자 일부 의류업체들이 중국산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광고를 하지만 모피는 대규모 국제 경매에서 원자재로 거래되기 때문에 원산지 추적은 물론 어떤 동물의 털과 가죽인지조차 확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실제 중국의 모피 농장에서는 개와 고양이까지 모피용으로 길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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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사육장에 갇힌 야생동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팔다리·꼬리 등 자신의 신체 일부를 뜯어 먹는 자해행동까지 보인다.(사진 핀란드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위한 정의'(Oikeutta eläimille) 제공)©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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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중국, 러시아와 함께 모피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중 하나다. 2015년 기준 홍콩이 전 세계 무역량의 25%인 20억 달러어치의 모피를 수입해 1위에 올랐고, 이어 중국이 15억 달러였다.

한국은 2억7900만 달러로 세계 8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제모피협회 등 모피산업을 대표하는 기구에서도 우리나라를 새로운 모피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내 백화점들은 여름철에도 모피 판매에 열을 올리고, 모피가 아니더라도 라쿤털이 모자 끝에 달린 패딩점퍼가 유행하면서 오히려 동물털을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결국 ‘라쿤패딩’을 입는 우리가 중국 모피 농장의 라쿤들을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2009년 스웨덴의 밍크 농장에서 사육되는 밍크 75마리로 실행한 연구를 통해 몸을 숨기거나 오르내릴 수 있는 등 행동풍부화 시설을 갖춘 사육장에서 기른 밍크 역시 정형행동을 보이는 사실이 입증됐다”면서 “이는 야생동물을 좁은 철장에 가둬서 사육하면 행동풍부화 시설과 상관없이 정신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모피는 사람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도, 삶의 질과 직결되지도 않는다”라며 “동물의 털은 동물이 입고 있을 때 가장 빛나고 아름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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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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