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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인물] 10억 연봉 포기하고 스타트업에 합류한 ‘차이(蔡)’씨, 6.4조 거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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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蔡)씨는 1990년 대 말 소위 엘리트의 전형이었다.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이자 사모펀드 업무를 하던 그의 연봉은 무려 70만 달러(당시 한화 약 10억 원).

홍콩에서 스웨덴계 벤처캐피털 아시아지역 총괄을 하던 차이씨는 1999년 5월 첫 창업에 실패한 뒤 재창업을 준비중인 스타트업 대표 마(马)씨를 만난다. 마씨는 인터넷을 통해 중국 물건을 서방세계에 팔겠다는, 당시로선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차이씨의 지인은 마씨를 ‘미쳤다’고 평했다.

하지만 차이씨가 판단한 마씨의 역량은 달랐다. 그는 마씨의 인격과 비전에 끌렸다. 다른 이들은 마씨의 구상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차이씨는 그의 능력이라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차이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회사에 합류를 결정한다. 가족을 비롯해 모든 사람이 격렬히 반대한 결정이었지만 차이씨는 요즘 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로켓에 올라타기로 한다.

당시 이 회사는 중국 항저우의 아파트를 임대해 설립된 작은 기업이었다. 그는 항저우까지 직접 가 마씨를 만나 입사를 타진한다. 마씨도 회사 직원들도 그의 말에 반신반의했다. “왜? 뭐가 아쉬워서?” 그의 연봉이면 그 회사 정도는 몇 개를 인수할 수도 있었다.

마씨가 월급으로 제시한 금액은 500위안(한화 10만 원). 이전 그의 연봉에 비하면 보잘것 없었고 복지나 처우는 말할것도 없었다. 하지만 차이씨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직장에 사표를 던진뒤 바로 회사에 합류한다. 당장의 월급은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회사에서 CFO(재무책임자)를 자임한다. 시작은 그저 작은회사의 회계업무를 보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 회사는 아직 법적으로 설립조차 되지 않은 사모임 수준의 조직이었기에 차이씨는 직접 관공서를 돌며 온전한 주식회사로 변모시킨다. 마씨는 인연이 그리 길지않은 차이씨에게 회사 재무에 대한 모든 것을 일임한다.

2000년, 후일 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회자되는 두 차례 투자유치 협상에서 차이씨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당시 회사는 데스밸리에 빠진 순간이었고 제대로 사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 때였다. 하지만 차이씨는 조급하지 않게 대응했다. 섣불리 투자자의 제안에 응하지 않고 불합리해 보이는 것과 금액 부분에서 여러번 이견을 표명하며 최대한 회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이끌었다. 결국 이 회사는 그해 2500만달러 규모의 투자유치를 끌어내며 본격적으로 비즈니스에 돌입한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2014년 9월 20일, 이 회사는 전세계 재계와 미디어의 관심속에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서 미국 IPO 역사상 가장 큰 규모를 기록하며 상장된다. 이날 차이씨는 회사 중역으로 대표 마씨의 오른편에 서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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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3대 주역 (왼쪽부터)차이충신 부회장, 마윈 회장, 루자오시 전 대표. 이들은 알리바바 재무와 운영, 기획의 상징이다.



이 회사는 현재 중국을 넘어 글로벌 IT기업으로 우뚝선 ‘알리바바 그룹’이다. 미쳤다는 평가를 받던 회사 대표 마씨는 마윈(马云) 회장, 그리고 차이씨는 알리바바 성장의 일등공신이라 평가받는 차이충신(蔡崇信) 부회장이다.

마윈 회장이 대외적인 활동이 많은 반면 차이충신은 필요한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차이충신은 대외 활동이 극단적으로 적은 반면 회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협상 자리에는 제일 앞선에 모습을 드러내왔다. 차이충신은 2000년 소프트뱅크, 골드만삭스와의 투자협상에 이어 2005년에는 마윈 회장을 대신해 8200만 달러를 조달해 야후차이나를 합병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 이는 오늘날 알리바바가 중국 1위이자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으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또한 2014년 알리바바의 기록적인 뉴욕증시 데뷔도 그의 역할은 컸다. 때문에 차이충신을 가르켜 일부에서는 ‘알리바바의 또다른 마윈’이라 칭할 정도다.

차이충신의 18년 전 선택은 금전적으로는 보상받았다. 올해 포브스가 발표한 2017년 홍콩 50대 부호 리스트에 차이충신은 372억 위안(한화 약 6조 4천억 원)로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돈을 보고 선택한 길이 아니었다 말한다. 1999년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는 질문에 차이충신은 큰 이유가 없었다고 답했다.

“알리바바에는 마윈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대표가 있었고, 드림팀이라 해도 무방한 인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늘 합리적인 이유로만 하지는 않는다. 마음속 강한 충동에 기인하기도 한다. 그저 열정있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좋았고 이곳이라 생각해서 결정했다. 그것이 알리바바를 선택한 이유다.”

글: 손 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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