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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friday] 결혼에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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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결혼하기 전 미리 겪어보자, 함께 사는 커플들

"생활비·가사 분담은 반반씩" "방귀는 절대 트지 않는다"… 결혼과 같은 듯 달라

한때 불장난? 현실적 선택!

"집 마련 등 경제적 이유로 동거 선택했다" 42.7%

"결혼 비슷한 과정 겪으니 확실히 어른이 된 느낌"

달라진 결혼관도 한몫

출산·복잡한 가족관계 거부하는 非婚족 급증

여성 47%·남성 56%만 "결혼은 꼭 필요하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고, 이것은 세간을 방에 들이고 내놓는 과정과 유사하다. 사랑은 옥신각신이라는 점에서, 상처 주지 않으려면 운위(云爲)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법. 대충 했다간 서로가 전부 흠집날 것이다.

"당신의 세계를 배우러 왔습니다." 영화 '인턴'(Intern)이 던지는 이 문장은 미지(未知)의 영역을 미리 체험해보려는 모든 경험의 순간에 대입이 가능하다. 사는 것은 늘 어려운 법인데, 함께 사는 것은 말해 무엇하랴. 그러니 배워야 하고, 연습하려면 그 세계를 일단 살아봐야 한다.
조선일보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게티이미지코리아 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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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同居)가 비정규 혼인을 미리 겪어보는 '결혼 인턴'이란 이름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혼에도 이혼하고 황혼에도 이혼하는 이별 편의의 시대. 쉽게 헤어지지 않으려고 함께 사는 법을 익히는 젊음이 있다. 직종 불문하고 모든 새내기는 미생(未生)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각자의 자취방에서 써내려간 청춘의 이력서는 지극히 현실이다.

경험해야 결혼한다… 청춘의 '결혼 인턴'

아는 것이 힘. 이 생각이 유명 웹툰 작가 S(28)씨가 여자 친구와 2년째 결혼 인턴을 유지하는 이유다. 그는 "결혼 전이지만 '같이 사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이지 않겠느냐'는 여자 친구의 제안으로 동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직장에 소속되기 전 인턴으로 직업 체험을 하듯 결혼도 그 전에 당연히 체험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전혀 모르고 있던 상대방의 습관이나 성격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저 몇 번 만나고 결혼하면 나중에 충격이 크지 않을까요? 생활 측면에서 확실히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결혼의 예행연습, 동거가 새로운 주거 형태로 조명받고 있다. 변화는 젊은 층에서 쉽게 발견된다. 지난 4월 통계청·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의 결혼과 가사에 대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청소년(13~24세) 응답자 5568명 중 61.7%가 "결혼 전 동거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혼전 동거에 찬성하는 비율은 꾸준히 늘어 2008년 56%, 2012년 58.4%, 2016년부터 60%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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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종영한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배우 이유리가 ‘결혼 인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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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인턴'이라는 단어를 처음 대중에게 알린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 지난달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신인 감독상을 받은 영화 '초행', 대학로 스테디셀러 연극 '옥탑방 고양이' 등 최근 청춘의 동거를 다룬 문화 콘텐츠가 늘고 이를 젊은 감각으로 그려낸 것도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8~49세 동거 유경험자 253명을 조사해 발표한 ‘비혼 동거가족 실태조사’에서 “주택 마련 및 생활비 절약 등의 경제적 이유로 동거를 택했다”고 답한 비율이 42.7%를 차지했다. 동거 시작 평균 연령 29.3세. 동거가 젊은이들이 경제난을 타개하려는 하나의 방책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공기업 인턴으로 일하는 김모(27)씨는 “서로 자취를 하다 보니 집 월세만 각자 40만원이 나가는 터라 방을 합쳐 1년간 살았다”고 말했다. “생활비는 절반으로 줄었고 각종 재정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면서 결혼 생활이 뭔지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힘든 과정이었다. 몰랐다면 나중에 무척 후회하고 또 고생했을 것 같다.”

달라진 결혼관, 달라지는 가족 형태

딸을 키우는 주부이자 작가인 은유(본명 김지영·46)씨는 최근 한 월간지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 “결혼과 출산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 혹은 결혼과 출산을 배제한 삶에 대한 나의 무지는 통한스럽다… 결혼이 존재의 표지이자 기준이던 때는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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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안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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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인턴의 부상에는 여성의 달라진 결혼관이 한몫한다. 지난 6월 여성가족부·통계청이 발표한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를 보면, 13세 이상 여성 3만8552명 중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47.5%였다. 2010년(59.1%), 2012년(56.6%), 2014년(52.3%)에 이어 이 질문의 응답률이 50% 이하로 떨어진 건 처음이다. 출산과 복잡한 가족관계를 거부하는 비혼(非婚)족의 증가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통계청이 만 13세 이상 국민 3만8600명을 대상으로 한 사회조사 결과에서도 “결혼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여성(47.5%)이 남성(56.3%)보다 적었다. 전체의 48%는 “남녀가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고 답했는데, 응답률은 2010년 40.5%를 기록한 뒤 매년 증가세다.

대구의 한 대학교수 박모(44)씨는 2년 전부터 동거 중이고, 지난해 아이도 낳았다. “결혼 자체가 일종의 형식이자 구속처럼 느껴졌다”면서 “행정적 불편함이 있을 순 있겠지만 어디 얽매이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자율성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우리나라가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변할 수는 없겠지만 차차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본다.”

부모 세대도 조금씩 열리고 있다. 박모(64)씨는 2년 전 맏딸(36)의 동거 통보에 크게 놀랐다. “솔직히 기성세대로서 걱정이 앞섰다. 여기는 외국이 아니잖나. 바깥 시선도 신경 쓰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결혼을 시킨다’는 말 자체가 잘못됐다. 결혼은 당사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다. 삶이 반드시 전통 방식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결혼해도 헤어질 사람은 헤어진다. 본인들이 실속 있게 잘 살기만 하면 문제가 되겠나 싶었다.” 지난 4월 통계청이 발표한 설문자료에서 부모 세대(50~69세)의 동거 찬성 비율은 2008년(27.4%), 2012년(32%), 2016년(34.5%) 등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동거하면 여자만 손해?… “차별 없어야”

조선일보

동거는 법적 구속력이 없고 책임감이 옅어 헤어지기 쉽다는 주장이 항상 따라붙는다. 그리고 이별 이후의 낙인은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30대 미혼 남녀 511명을 조사해 작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용납할 수 없는 애인의 과거는?” 항목에서 남성 응답자(245명)가 꼽은 압도적 1위는 ‘동거 경험’(49%)이었다. 반면 여성 응답자(266명)는 ‘양다리 경험’(33.8%)을 1위로 선택했다. ‘동거 경험’을 택한 경우는 12%에 머물렀다.

이번 ‘friday’ 인터뷰에 응한 결혼 인턴족 역시 “추후 여자 친구가 겪게 될 불편이 염려된다”는 이유로 대부분 익명 처리를 부탁했다. 지난 4일 결혼 인턴을 주제로 다룬 EBS 토크쇼 ‘까칠남녀’에 출연한 배우 전원주는 “동거 경험이 알려져도 남자는 큰 흉이 안 되지만 여자는 상처가 생기고 낙인이 찍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에서 만난 여자 친구와 1년 동거 끝에 최근 결혼식을 올린 김모(28)씨 역시 이 의견에 동의했다. “성 문제가 개입되기에 아직까지 남녀 간 연애에서 여성에게 더 보수적인 기준을 갖다대는 것 같다. 특히 아내가 많이 곤혹스러워했다. 외국에서 만나 동거하는 경우 금방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주변 시선에 더 위축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진은 “동거는 잠시 공동생활을 영위하다 헤어지는 책임감 없는 선택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면서 “책임감 부재에서 나온 행동이라기보다 가족을 형성하는 새로운 형태로 보는 것이 현대의 동거를 이해하는 데 적절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해 기획재정부는 ‘2016~2020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비혼·동거가족에 대한 사회·제도적 차별 개선’ 항목을 넣었다. 이어 지난 3월 중장기전략위원회는 “동거 가구에 임대주택 배정이나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등 결혼 가정과 동등한 혜택을 부여하는 ‘동거관계 등록제’ 도입에 대한 논의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동거 천국’ 프랑스… ‘성(性)진국’ 일본은?

동거 가족에게 법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프랑스는 동거의 나라로 워낙 유명하다. 1999년 시민연대협약(PACS)을 도입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성인 간 동거 관계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고 세금 납부와 상속세 감면 등 권리를 보장했다. 프랑스에서 혼외 가정에서 태어난 신생아 비율은 56.7%(2014년 기준). 프랑스 옆 나라 벨기에 역시 ‘동거 계약서’를 구청에 제출하고 남녀가 함께 사는 게 일반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성(性) 담론에서 한국보다 개방적인 ‘성진국’ 일본은 어떨까. 일본에서도 남녀 동거 문제는 관심의 대상. 일본 부동산 정보 사이트 스모(SUUMO)가 지난 5월 도쿄 일대에서 동거 경험이 있는 20·30대 남녀 300명을 설문 조사해 여덟 차례에 걸쳐 연재한 이유다. 가장 큰 동거 이유는 “함께 있고 싶어서”(47.3%)였고, “결혼할 상대인지 판단하고 싶어서”(32.3%)와 “집세를 절약하고 싶어서”(20.7 %) 같은 경제적 이유도 컸다. 응답자의 70.7%가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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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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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남자 친구와 도쿄에서 최근 6개월간 동거한 한국인 직장인 임모(23)씨는 “최근 남녀의 동거에 대한 한·일 인식 차이를 극명히 경험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사회 생활하는 성인끼리의 동거에 별 반감이 없어요. 주변엔 7년 동거하다가 최근 결혼한 분도 있고요. 남자 친구 부모님은 동거 사실을 알고 계셨어요. 반면 저희 부모님은 ‘동거하면 가만 안 둔다’고 펄쩍 뛰셔서 비밀에 부쳐야 했죠. 부모님이 가끔 방문하실 때마다 방에서 남자 친구의 흔적을 지우느라 진땀을 빼야 했고요.” 다만 일본에도 ‘속도위반’은 금기시된다. 동거 중 원치 않은 임신으로 결혼에 이르는, 이른바 ‘데키 타겟콘(できちゃった結婚·아이가 생겨버려서 결혼)’. 임씨는 “남자 친구 여동생이 이런 경우라 각별히 조심한다”며 “아이를 원하게 될 때 결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늘 해피엔딩 아냐, 원칙 세워 생활할 것

김모(27)씨는 결혼 인턴 1년 차에 결국 여자 친구와 갈라서고 말았다. “역할 분담을 하긴 했지만 청소랑 빨래, 요리까지 전부 제가 맡게 되더라고요. 자연스럽게요. 어느 순간 생활비까지 제가 다 떠안게 됐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죠.” 가정이 유지되려면 각자의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논리로 귀결된다. 임모(23)씨 역시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는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임씨의 주장은 “서로 합의를 깨는 행동은 금한다”는 것. 따라서 동거 전에 ‘각자의 부모님은 각자만 만난다’거나 ‘피임은 확실히 한다’ ‘개인 위생에 신경을 쓴다’ ‘생활비를 정확히 분담한다’는 일종의 협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곤 있지만 체계적인 계획과 실행 없는 동거 생활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friday] 온몸으로 느끼는 가을 하늘… 소백산·남한강이 만든 산수화 같은 절경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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