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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취업 한파ㆍ고용 불안에… 약대ㆍ로스쿨 쏠림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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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입문시험 응시 1만5100명

작년 최고 인원과 맞먹는 수준

로스쿨 응시생도 역대 두번째

자연계 넘어 공대까지 약대로

“기초과학 황폐화” 우려 커져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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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사립대 공과대학을 졸업한 신모(26)씨는 지난해 재수 끝에 모교의 약학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석유화학 전문가를 꿈꾸며 관련 학과에 입학했지만 취업 때문에 스펙 경쟁을 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불안감을 느껴 약대로 방향을 틀었다. 신씨는 “과거와는 달리 공대를 졸업하더라도 취업이 쉽지 않고 취업을 하더라도 언제까지 그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불안하다”며 “2, 3년 더 공부하더라도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전문직에 도전해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약사, 변호사 등 전문직이 되기 위한 통로인 약학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대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취업난이 계속되고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전문직 선호 현상이 더욱 더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약대나 로스쿨 입학을 위해 치러야 하는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와 법학적성시험(LEET)에는 올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험생이 몰렸다.

21일 한국약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시행된 2018학년도 PEET 응시자가 1만5,107명으로 역대 최고 인원이 응시했던 지난해(1만5,206명)와 거의 맞먹는 수준을 보였다. 전국 35개 약학대학 정원(1,693명)의 9배에 가까운 인원이 응시한 것이다. PEET 응시생 수는 2011학년도 입시에 첫 도입 당시 1만47명에서 7년만에 50% 이상 늘어났다.

같은 달 27일 시행된 LEET도 처음 시험이 도입된 2009년(9,693명) 이후 두 번째로 많은 9,400명이 치렀다. LEET 응시생은 2010년부터는 7,000~8,000명 수준을 맴돌았지만 사시 폐지를 앞둔 올해 다시 9,000명대로 올라섰다.
한국일보

대학생들이 3년(로스쿨), 4년(약대)간 경제활동을 미루면서까지 전문직을 희망하는 것은 그만큼 취업시장의 벽이 높고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방증이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입사원서를 넣고 기약 없이 합격발표를 기다리는 생활을 반복하기 보다는 차라리 공부를 더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셈이다. 수도권 대학 인문대학을 지난해 졸업하고 2년째 LEET 시험에 응시한 조모(27)씨는 “기업에 취업하려면 상경계열을 복수전공 하거나 공인회계사 같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전문 자격증을 보유해야 한다”며 “불리한 조건에서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리기보다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이 늦어지더라도 변호사 시험에 도전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생명공학과에 입학한 뒤 2학년 때부터 일찌감치 PEET 준비를 시작한 수험생 김모(22)씨 역시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두 세 차례 더 응시할 각오를 하고 일찍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우수 학생들이 전공을 살리지 않고 약대와 로스쿨로 방향을 틀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올해 PEET 응시자 중 공학계열 전공학생이 27.2%로 생물학(25.1%) 화학(21.0%) 전공자를 앞섰을 정도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자연계열은 물론 공학계열까지 약대로 몰리면서 기초과학 황폐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대학 입학 시기부터 약학을 전공할 수 있도록 학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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