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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시기·규모' 유보한 대북 인도지원 결정…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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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北 미사일 도발·대북 강경 여론 의식한 듯…'정치와 무관' 원칙과 상충돼 비판도]

머니투데이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이 2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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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1일 국제기구의 대북 인도적 사업에 800만달러(90억원)를 공여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구체적인 시기와 규모는 남북관계 상황 등 여건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에 따른 국내외 강경 여론을 고려한 절충안으로 보이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인도지원을 이어간다는 원칙을 스스로 부인하는 자충수란 비판도 나온다.

통일부는 이날 오전 제286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고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아동 및 임산부 대상 영양강화식품 지원 사업에 450만달러, 유엔아동기금(UNICEF)의 아동·임산부 대상 백신과 필수의약품, 영양실조 치료제 사업에 350만달러 등 총 800만달러의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교추협 회의는 사안에 쏠린 관심을 반영하듯 2년여 만에 대면회의로 열렸으며, 통일부·외교부·기획재정부 등 8개 부처 차관과 2명의 민간위원 등 총 18명의 위원 중 11명이 참석했다.

교추협은 이날 국제기구 대북지원 사업에 대한 800만달러 공여 방침을 의결하면서, 실제 지원 시기와 규모는 '남북관계 상황 등 전반적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추진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당초 지원 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은 전해졌으나, '규모'까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이날 처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북한 도발 등 상황에 따라 '800만달러 지원' 집행이 무기한 연장되거나 대폭 축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대북 인도적 지원을 추진한다는 원칙과, 남북상황을 고려해 시기와 규모를 조정하겠다는 입장이 상충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800만달러 공여 방침은 확인한 것이며, 인도적 지원은 순수하게 인도적 측면을 고려해 결정한다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지원 액수가 줄어들 수 있냐는 질문에 "예단할 수 없다. 규모와 시기는 제반 여건을 보며 통일부 장관이 결정하기로 한 것"이라는 모순된 답변을 했다. 남북협력기금은 일반예산과 달리 반드시 연내 집행하지 않아도 된다.

논란이 커지자 이 당국자는 지원 시기와 규모의 변동 가능성에 대해 국제기구와 협의하며 바뀔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이라고 해명했다. 연내에 집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당장은 공여를 집행하지 않겠다는 뜻이어서 반대 여론을 의식해 지원을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무엇보다 지난 14일 북한의 6차 핵실험 감행 11일 만에 전격적으로 대북 인도지원을 추진하는 이유로 북한 취약계층 상황의 열악함과 지원의 시급성을 강조했던 통일부가 일주일 만에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하겠다고 정반대의 입장을 밝히면서 '말바꾸기'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통일부의 이 같은 '절충안'은 대북지원 추진 발표 다음날인 13일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일본 상공을 통과해 북태평양 해상으로 발사하면서 국내외 여론이 극심하게 악화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을 "완전 파괴(totally destroy)하겠다"는 발언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불가피했다는 시각도 있다. 시기와 규모는 부차적이고, 대북제재 국면에서 원칙에 의거해 대북 인도적 지원방침을 의결한 것 자체가 의미있다는 것이다.

반면 박근혜 정부 역시 남북관계 등 제반사항을 근거로 지난해 1월 이후 대북지원을 중단했다는 점에서, 결국 '베를린 구상'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여론을 의식해 전 정권과 다를 바 없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북 지원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면서도 조건을 내건 꼴이 돼 대북 주도권을 갖거나 북한을 남북대화로 유도하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이는 현재 통일부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드러낸다. 통일부 내에서도 이번 결정이 다소 모순되는 것을 알지만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토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자는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과 우려를 고려해 (시기와 규모를) 열어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지원이 집행되면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대북 지원이자 2015년 12월 유엔인구기금(UNFPA)의 '사회경제인구 및 건강조사 사업' 80만달러 지원 이후 21개월 만의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지원이다.

한편 통일부는 일각에서 우려하는 배급의 투명성에 대해 "국제기구는 '접근 없는 지원은 없다'(No Access, No Assistance)는 엄격한 투명성 기준에 따라 평양에 상주 사무소를 두고 정기적으로 지원 시설을 무작위로 방문하는 등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고 있다"며 "이번 지원은 현금이 아닌 현물 지원이고 아동·임산부용 의약품, 영양식 등의 품목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전용 가능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향후 국제기구의 체계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지원 물자가 지원 대상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사업을 철저히 관리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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