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범죄 노출’된 여성 1인 가구]“혼자 살면 무섭지 않냐” 배달원이 보낸 카톡에 ‘소름’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례 1 : 배달하다 이상형이라 친구라도 하고 싶어서…

#사례 2 : 살갑게 대했더니 아버지뻘 관리인이 ‘치근덕’

#사례 3 : 낯선 남성이 창 사이로 얼굴 들이민 채 ‘응시’

혼자 사는 여성, 올해 276만 가구…46% “불안” 호소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김가영씨(21·가명)는 지난 19일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주말에 배달 주문한 치킨을 가져왔던 배달원이 개인번호로 연락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메시지에 “토요일에 치킨 배달한 사람인데 이상형이라 고민하다가 연락을 했다”며 “기분이 나빴다면 죄송하다”고 썼다. 김씨가 당황해 “헐”이라고 답하자 배달원은 다시 “친구라도 하고 싶어서 나도 고민 많이 하다가 보내는 거다.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러면서 “혼자 살면 무섭지 않냐”고 했다.

김씨는 21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이 대목에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내가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살고 있었다면 과연 배달원이 이런 식으로 연락해왔을지 궁금하다”면서 “카톡을 차단하고 치킨집에 전화해 항의했지만 집 주소를 알고 있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에 혼자 살던 직장인 최은지씨(31·가명)는 얼마 전 급하게 이사를 했다. 최씨는 이사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불쾌감에 몸을 떨었다. 지난 7월 주말에 집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던 최씨는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오피스텔 관리인이 캔맥주 4개와 마른안주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최씨는 “평소 아버지뻘 되는 관리인에게 음료도 드리고 힘든 일 하신다 생각해 살갑게 굴었는데 ‘맥주나 한잔 하자’며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순간 거절하지 못해 관리인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는 최씨는 “식탁에서 술 마시던 관리인이 ‘남자친구 있냐’ ‘원래 그렇게 남자들한테 사근사근하냐’ 등의 질문을 하기 시작하자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최씨는 “근처에 사는 지인에게 문자를 보내 ‘집으로 와달라’고 도움을 구했다”며 “지인이 온 뒤에야 관리인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사를 결심했고, 한 달 만에 그의 표현대로 ‘오피스텔을 탈출’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성이 혼자 사는 자취방을 낯선 남성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연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창문 밖 낯선 그 사람,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자취를 시작한 지 3년이 안된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글쓴이는 “저희 집 창문에 낯선 남자가 저를 바라보고 있더라”며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글쓴이가 공개한 사진에는 한 남성이 열린 창문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 채 방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모습이 찍혀 있었다. 글쓴이는 “남성은 (사진에 찍힌) 상태로 10분 넘게 저를 쳐다보고 있었고 안쪽 창문까지 열려고 했다. 그 순간 제가 소리쳤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글쓴이는 “경찰은 정말 도움이 안됐다”며 “신고한 지 20분이 넘어서 도착했고 집 번지수까지 말해줘도 집도 못 찾고, 무서워서 창밖을 제대로 못 봤다는 사람한테 피의자 얼굴을 봤는지, 키는 몇인지 말도 안되는 질문을 퍼붓고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해당 글이 올라온 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조작 아니냐”는 등 진위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글쓴이가 112에 문자로 신고한 화면과 경찰 통화기록 등을 추가로 공개하며 사실로 밝혀졌다.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여자 혼자 자취할 때 조심할 점’이란 제목의 글이 수천건 공유되며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글에는 ‘한 번에 집에 들어가지 말고 돌아서 가기’ ‘집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지 않기’ ‘남자 구두나 옷 등을 곳곳에 놔두기’ ‘택배에 붙은 개인정보 찢어버리기’ ‘배달음식 시킬 땐 1.5인분 이상 주문하기’ ‘분홍색 커튼 달지 말기’ 등 총 21가지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혼자 사는 여자들이 조심할 게 아니라 몰래 훔쳐보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게 주의를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혼자 사는 여성들이 불안에 떠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통계청이 공개한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여성 1인 가구주들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안전에 대해 46.2%가 “불안하다”고 답했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13%에 불과했다. 남성 1인 가구주는 36.2%가 ‘불안하다’고 말해 여성보다 10%포인트 낮았다. 2015년 기준으로 강력범죄 피해자의 88.9%가 여성이다.

두려움에 떠는 여성 1인 가구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여성 1인 가구는 2017년 276만6000가구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2045년에는 지금보다 111만6000가구 증가한 388만2000가구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전문가들은 혼자 사는 여성들이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를 막기 위한 법적·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범죄학)는 “범죄자가 범행 대상을 물색할 때 상대적으로 용이한 대상을 고르는 것을 범죄학적 용어로 ‘합리적 선택’이라고 하는데 보호자 없이 혼자 사는 여성은 이 합리적 선택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혼자 사는 남성보다 훨씬 높다”면서 “혼자 사는 여성을 관음하는 행위는 범죄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행법상 담을 넘는 등 실제 범죄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집 안을 들여다보거나 관찰하는 행위만으로는 처벌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단순히 처벌 규정이 없다고 손을 놓고 있기보다는 피해 여성들의 신변보호 신청을 장려하거나 관음 행위 등을 처벌할 규정을 제정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