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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박원순 왜 MB에 분노했나…인연과 악연 넘나든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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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시민운동가로 우호적 관계 시작

2009년 국정원사찰 의혹 제기-소송에 파국

뉴스1

박원순 서울시장 변호인 민병덕, 한택근 변호사가 19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 등 10여 명에 대해 명예훼손, 국정원법 위반, 집권 남용 등의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하러 들어가고 있다. 2017.9.19/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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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서울시장은 "앞으로 월급을 불우이웃돕기에 전액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얼마 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가 찾아갔다. 월급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 순직한 소방관, 환경미화원 유가족을 돕자고 제안했다.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두 사람은 '등불기금'을 조성하기로 하고 약정을 맺었다. 이명박 시장은 "기부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는데 등불기금을 만들게 돼 기쁘다"고 흡족해했다. 이 기금사업은 올해 5월 공식 종료될 때까지 이어졌다.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은 전직 대통령의 '선행사례'라고 널리 자랑하기도 했다.

한동안 이명박 시장과 박원순 이사는 괜찮은 '케미'를 보였다. 이 시장이 아름다운재단 명예고문을 맡고 출범 1주년 행사에는 직접 참석할 정도였다. 2005년 연말에는 함께 제야의 종을 치기도 했다. 함께 벌인 사업도 적지 않다. 그때만해도 누구도 2017년 현재의 상황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의 관계는 2007년 대통령선거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로 전환점을 맞았다는 게 중론이다. 대선 국면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압도적이었고 당시 여권인 열린우리당은 지리멸렬했다. 대선후보를 외부에서 수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후보 중 한 명이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이사였다. 그는 대선 출마는 사양했지만 이명박 후보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핵심공약인 대운하 사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한나라당에서도 선거를 도울 외부영입인사로 '박원순'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이명박 후보는 도울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물론 도움을 요청한 다른 후보들에게도 거리를 유지했다.

당선 후 취임 초기 밀어닥친 광우병 촛불시위로 휘청거렸던 이명박 대통령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이른바 '좌파 솎아내기'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이때부터 박원순 이사 주변에도 이상한 징후가 나타났다. 희망제작소와 정부가 진행하던 사업이 갑자기 해약되고 기업들도 줄줄이 지원에서 손을 뗐다.

아름다운재단 이사를 맡았던 유력인사가 이유없이 사임하기도 했다. 조직의 존폐가 우려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박 이사를 사정하다시피 해 이사로 영입했던 한 단체는 되레 그만 둬달라고 부탁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에게 우호적이었던 기업과 단체, 학교 곳곳에서 "국정원 직원이 찾아와서 당신에 대해 캐묻더라"는 귀띔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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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카자흐스탄으로 출국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4박 5일 일정으로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고려인과 한인 동포 등을 만날 예정이다. 2017.7.18/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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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이사는 2009년 '주간경향'과 인터뷰에서 이같은 내용을 폭로했다. 그에 따르면 인터뷰가 보도된 후 오해를 풀자며 당시 청와대 관계자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몇 달 지나 국정원은 박원순 이사에게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소송은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원고 '대한민국', 피고 '박원순'이었다. 헌정 사상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건 일은 처음이었다.

이 국정원 소송사건은 결국 대법원이 최종 기각했지만 시민운동가 박원순이 시민운동 외길에서 정치 참여를 고민하게 된 계기로 꼽히기도 한다. 박 시장은 예전부터 공식석상에서 눈물을 보이는 법이 거의 없다. 그 예외가 국정원 소송 후 자청한 기자회견에서였다. 얼마나 회한이 깊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 시장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됐다고 보고 아름다운가게 등 '소프트'한 공익활동에 전념했는데 이 일을 겪고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끊임없는 정치참여 권유를 마다할 명분도 점점 사라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정원 사찰은 의혹 수준이었지만 2011년 '박원순 제압문건'이 공개되면서 구체화됐다. 전직 국정원 간부가 국정원이 작성한 문건이라고 양심선언도 했다. 그래도 국정원은 부인했지만 정권교체가 둑을 무너뜨렸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박 시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검찰에 고소·고발하기에 이른 것은 시장 취임 후는 물론 박근혜 정부에서도 청와대와 정보기관의 공작이 계속됐다고 확신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민주당 적폐청산TF 회의에서 "서울시는 이명박 정권 동안 중앙정부와의 협치는 꿈도 꾸지 못했고 추진하는 정책마다 거부당했다"며 "문건에 나온대로 19차례나 어버이 연합의 표적시위가 진행됐지만 진상조사도,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특히 시장 취임 직후인 2012년 초부터 계속된 아들 병역의혹 제기로 비롯된 고통은 가슴에 사무칠 정도다. 그는 "15차례나 공공 검증을 통해 문제가 없다고 드러났는데도 국정원의 지시를 받는 단체들이 수없이 문제제기하고 사람과 댓글을 동원해 잔인하게 온오프라인으로 공격했다"며 "가족을 저열하게 공격한 것에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2009년 국정원에 소송당한 후 기자회견에서도 박 시장은 "정권이 바뀐 후 국정원장은 반드시 법정에 서게 될 것"이며 "대통령이 (국정원 사찰을) 몰랐을 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의 말대로 원세훈 국정원장은 2013년 이후 줄기차게 법정에 선 끝에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제 칼날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했다. '등불기금'으로 시작된 15년 우여곡절 인연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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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19일 오전 서울시청 신청사 브리핑룸에서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회의 관련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2017.9.19/뉴스1 © News1 임준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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