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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오래전‘이날’]9월21일 이대 축제에 쌍쌍파티가 없어진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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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이날’]은 1957년부터 2007년까지 매 10년마다의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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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9월21일 ‘이화여대 축제에 쌍쌍파티가 없어진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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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이날, 소설가 최인호씨가 쌍쌍파티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이화여자대학교를 찾았습니다. 이대학보에 따르면 1962년에 시작한 이화여대 ‘쌍쌍파티’는 매년 1000~2000 커플이 참여해 포크댄스, 빙고게임, 캠프파이어 등을 진행하던 행사로 한때 ‘메이퀸 선발’과 더불어 이화여대 축제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혔습니다. 최씨는 “파티가 없어진단다. 쌍쌍파티가 없어진단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며 탐방기를 시작합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화여대 학도호국단은 “단과 대학별로 쌍쌍파티가 열리면 거의 매주 계속되므로 술렁거리는 분위기는 면학 분위기를 흐릴 수 있다”며 가을축제에서 쌍쌍파티를 폐지하기로 합니다. 당시 이화여대에는 총학생회를 대신한 학도호국단이 있었습니다. 1975년 전국 대학 총장회의가 창설을 논의해 발족된 전국중앙학도호국단의 영향이었습니다.

최씨는 “그러나 어쩔 것인가. 졸업하기까지 남자하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해보고 학교를 나서는 이 숙녀들을 어쩔 것인가. 이성 훈련 한 번도 못해보고 예방 주사도 맞지 못한 채 장티푸스와 콜레라가 창궐하는 이 늑대(?)같은 남자들이 욱실욱실거리는 사회로 어린양(?)처럼 나서는 숙녀들을 어쩔 것인가. 쌍쌍파티에 동반한 파트너가 설혹 아버지라 할 지라도 이 모처럼의 서구식 축제가 없어져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쌍쌍파티 폐지 결정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정작 이화여대 재학생 이수자씨는 이 문제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이씨는 “왜 매스컴들은 쌍쌍파티같은 대학생활에서 보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문제에 흥미를 가지시는 건지요?”라며 오히려 반문합니다. 또 “그것은 일테면 센세이셔널한 것을 노리는 신문의 상업성 때문이신가요?”라며 쌍쌍파티에 대해 묻는 언론에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합니다.

최씨가 기대한 반응이 아닌 듯합니다. 최씨는 이씨에 대해 “나는 주눅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느정도 부아가 치미는게, 그렇담 쌍쌍파티 따위의 이야기는 휴지조각 같은 의미없는 문제라는 것일까”라며 “완강한 침묵의 벽을 느꼈다”고 씁니다. 최씨는 당시 이화여대 쌍쌍파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해마다 축제가 가까와 오면 파트너 구하려고 혈안이 되어 남자친구 구하기 위해 망아지처럼 뛰다가 여의치 않으면 친척오빠 동원해서 모처럼 시집간 언니에게서 물려입은 투피스 입고 미장원에까지 들러 「후까시」 올린머리하고 수십년 만난 애인처럼 학교로 초대하고, 파트너 백원짜리 손수건을 천원에 바가지 씌우고, 백원짜리 솜사탕을 천원에 바가지 씌우고 운동장에 모여 유성기 음악에 맞춰 포크댄스 추어보고, 미경이 파트너, 순옥이 파트너를 안보는 체 내 파트너와 비교해 보는 쌍쌍파티가 없어진단다.”

“안경 쓴 남잔 싫어요, 키작은 남자는 싫어요, 잘생기고 멋져야죠. 왜냐하면 쌍쌍파티의 파트너는 우선 남에게 시위하고 싶은 마네킹이어야 하니까요. 머리 좀 빈 남잔 어때요, 멋지면 그만이죠. 넥타이는 매야죠. 싱글 양복을 입으세요. 그건 숙녀에 대한 에티켓이니까요.”

쌍쌍파티에 대한 이같은 최씨의 묘사는 이화여대 학생들과 그들이 누리는 문화를 향한 당시의 사회적 시선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수자씨는 “쌍쌍파티에 대해 저 개인으로는 찬성입니다. 있어야죠. 하지만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서 평소에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낯선 사내를 동반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봐요. 아빠하고 같이 오면 어때요. 안 그래요? 학도호국단에서도 쌍쌍파티를 아주 없앤다고 얘기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시행착오인 몇 가지의 점을 보완하려는 의미일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한편 이화여대 문리대 교수 서광선 박사는 “할 수 없이 하는 축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젊은이들이 모여서 대화를 할 수 있는 광장은 분명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분위기를 우리 모두가 만들어주어야 합니다”라며 쌍쌍파티에 대한 옹호론을 폅니다. “유희본능은 창조의 계기가 됩니다. 아카데믹한 학술만이 고귀한 창작을 유발시키지는 않지 않습니까?”라고도 합니다.

이 기사의 사진 캡션에는 “이대축제의 하이라이트가 되다시피한 쌍쌍파티. 이성교제를 금기해온 유교적 윤리관 속에서 보면 쌍쌍파티는 다소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유교적 윤리관 때문이었을까요? 이러한 논란 이후 이화여대 쌍쌍파티는 얼마간 더 지속되다가 1982년에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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