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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MBC 장악 문건 만든 정보관, 최근 핵심 고위직으로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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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MBC본부 "정권의 무도함 보여줘, 관련자들 형사고발 예정"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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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20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의 'MBC 장악 문건'이 내부에서 어떻게 실행됐는지를 밝혔다. 김연국 본부장은 당시 문건 작성에 가담했던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핵심 고위직으로 승진했다고 밝혔다.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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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MBC 장악 문건') 문서는 저 정권이 얼마나 무도하고 천박했는지를 보여준다. 영구 퇴출, 척결, 물갈이 추진 등 원색적 표현이 동원됐다. 노조 파괴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소문이 많았는데 이 문서는 (소문을) 사실로 확인시켜줬다. (…) 문건 작성 당시 MBC를 담당했던 국정원 정보관 2명이 (이 문건을) 최초 기안·생산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중 1명이 서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인 아주 최근, 1급 고위직으로 핵심 요직에 발탁됐다."
_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김연국 본부장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 이하 MBC본부)는 20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2010년 3월 작성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 작성을 맡았던 정보관이 서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 1급 고위직으로 승진했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과연 이 상황에서 방송 장악과 블랙리스트의 흑막을 모두 밝혀낼 수 있을지, 제대로 청산할 수 있을지 우리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당시 국정원 요원들이 MBC 내부 인사와 무슨 말을 나눴는지 기록한 일일 보고서 원문을 모두 공개하라고 국정원에 요구했다.

이어, "국정원은 이 문건이 지휘부에 보고됐다고 하는데 누가 지휘부인가? 김주성 국정원 당시 기조실장, 원세훈 국정원장,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최시중 방통위원장,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문건의 작성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최종 책임자일 것으로 우리는 보고 있다"며 "법적인 검토를 거쳐 모두 형사고발하고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예고했다.

MBC본부는 또한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7년 동안 MBC 내에서 실제로 이 문건 속 계획이 실행됐으며,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밝혔다.

◇ '간부진 인적쇄신'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MBC본부는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이 취임 직후인 MBC 관계사 28곳 중 22곳의 사장을 바꾼 것, 이우호 논설위원실장 등 간부급 구성원 7명을 인사조치한 것 등이 '국정원의 계획' 아래 실행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이사장은 2010년 4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김재철이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쪼인트 까이고 MBC 내부 좌파 70~80%를 정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MBC본부 최장원 전 사무처장은 "김재철 사장이 들어오고 나서 (인사에서) 하나의 흐름이 시작된다"며 정수채·윤혁·이상로·심원택·이우용 등 공정방송노조 출신들이 MBC 자회사 및 지역사 임원 인사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다. 국정원 문건에는 공정방송노조를 "좌파정부 시절 비리 의혹 및 노조 배후 인물들의 부도덕성 등 내부비리 폭로 독려, 개혁 명분으로 활용"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최 전 사무처장은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불만이 국정원 문건에 포함돼 있고, 그대로 인사로 이어진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김우룡 이사장이 'MBC 논설위원들 이상하다'는 말을 하고 다녔는데 (국정원) 문건에 '논설위원실 대폭 물갈이 인사'가 반영돼 있다. 이우호 논설실장이 쫓겨나고 한밤중에 논설위원실 2명이 비제작부서로 발령났다"며 "(국정원 문건이) 기획되고 실행되는 과정에서 김우룡, 김광동, 차기환 등 방문진 이사의 개입과 조력이 전혀 없었을까"라고 반문했다.

최 전 사무처장은 보도국 장악이 본격화된 시점을 '2011년 2월'로 꼽았다. 그는 "엄기영 사장 잔여 임기를 채우고 연임한 김재철 사장은 전영배 보도본부장 임명 후 부장인사를 하는데, 이때 나온 사람이 김장겸 정치부장, 박용찬 사회2부장, 최기화 편집1부장(편집1부는 '뉴스데스크' 편집을 맡는다)"이라며 "이들이 등장한 후 뉴스가 어떻게 됐는지는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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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PD(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왼쪽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8기 집행부였던 최장원 전 사무처장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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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윤길용 시사제작국장 취임 후, 잔류를 원했던 'PD수첩' 밖으로 쫓겨나게 된 최승호 PD는 "영화 '공범자들'에서 빠졌던 (방송장악 시나리오) 내용이 마침내 나온 것"이라며 "다른 시나리오들도 굉장히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방송일을 해 온 사람이라면 '일을 잘할수록 (제작부서 밖으로) 내보내야 된다'는 기준을 갖고 (인사를) 할 수 없다고 본다. 상식적인 사고 범위를 넘어선다"며 "이 무지막지한 결정 배경에는 권력의 강력한 개입이 있었고, 김재철 씨가 그대로 이행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 언론노조 MBC본부 '무력화'는 이렇게 진행됐다

국정원의 'MBC 정상화' 추진 방안 2단계는 노조 무력화였다. 2010년 당시 사측은 39일 파업을 이끌었던 MBC본부 이근행 전 본부장을 해고했다. 민주화 이후 MBC 내 해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측과 대립각을 세운 노조에 대한 대응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MBC본부에 따르면 2010년부터 현재까지 해고자를 포함해 대기발령·감봉 이상의 징계를 받은 사람은 216명에 이른다. MBC본부 전체 노조원이 2천 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10명 중 1명이 징계 대상이 된 것이다.

MBC본부 이세훈 전 교섭쟁의국장은 △2010년 39일 파업 도중 노조 간부 1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것 △2012년 170일 파업 당시 민·형사 소송을 동시에 진행해 노조 통장과 노조 집행부 개인 재산까지 가압류한 것 △타임오프제 논의 해태 등을 사측의 '노조 파괴' 사례로 들었다. 그러면서 "(문건과) 시차를 두기는 했지만 (사측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건 내용대로) 하나씩 (실행)해 왔다"고 덧붙였다.

사측이 단체협약에서 '공정방송'을 담보할 수 있는 조항을 삭제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한 것도, 뒤늦게 드러난 국정원 문건 내용과 일치했다. 사측은 또한 방송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실무를 맡는 국장들이 보도·편성·제작의 책임을 진다는 '국장 책임제'를 빼고 '본부장 책임제'를 넣자고 주장했다.

MBC본부 안준식 전 편제민실위 간사는 "자기들도 이게(본부장 책임제) 왜 들어가야 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며 "(국정원 문건에는) 단협을 개정하라는 문구가 3번에 걸쳐 나온다. 경영권·인사권 침해, 편성권 관여라면서. 교섭할 때 사측이 끊임없이 했던 표현이 (문건에서) 그대로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 'PD수첩' 불방 사태, 사라진 '뉴스후'… 프로그램에도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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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발행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특보 (사진= 노보 특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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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파방송 주도 시사고발프로(PD수첩, MBC스페셜, 후플러스, 시사매거진2580) 제작진 교체, 진행자·포맷·명칭 변경…" / "당장 폐지가 어려운 'PD수첩'의 경우 사전 심의 확행…"

국정원 문건에는 MBC에서 방송됐던 프로그램 중 '조치'가 필요한 일부 프로그램명이 그대로 올라와 있었다. 각각 국제시사와 성역 없는 이슈 팔로잉을 맡았던 'W'와 '뉴스후'(이후 '후플러스'로 명칭 변경)가 2010년 말 사라졌고, 'PD수첩'에서는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불방 사태가 벌어졌다.

2006년 6월 첫 방송된 '뉴스후'의 창단 멤버인 이재훈 기자는 "'뉴스후'는 정부 비판 아이템은 물론이고 종교, 재벌, 노동, 언론처럼 기존 지상파 보도 프로그램이 잘 다루지 않았던 문제를 깊이있게 다뤄보자는 기조를 가졌다. 175회 방송 중 정부 비판 18건, 재벌 보도 14건(삼성 보도는 10번), 노동 6건, 종교 8건, 언론 6건 등 이슈를 계속 팔로잉해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어서 시청자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이던 2008년, 그가 장로로 있던 소망교회를 취재했을 때에도 '이게 방송에 나갈 수 있을까'를 누구도 염려하지 않았다고 회상한 이 기자는 "우리에게는 성역 없이 취재할 수 있는 프로지만 저들에게는 그냥 두면 위험할 것 같은 프로그램으로 비쳤을 것 같다"고 말했다.

'후플러스'를 만들었던 유충환 기자는 "시청률과 제작비 때문에 없앴다고 했지만 당시 시청률이 6~8%대였다. 지금 '뉴스데스크' 시청률의 2배를 넘는다. 게시판은 응원글로 도배가 됐고 항상 각종 상을 휩쓸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극렬히 저항해 봤다. 성명, 대자보 쓰고 피케팅도 했지만 조금 외로웠다. '공범자들'에 시사 프로그램들이 사라진 얘기가 나오는데 '후플러스'는 빠졌더라. 알고 보니 당시 영상이 없어서였다. 그래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굉장히 많이 깨달았다"고 전했다.

유 기자는 "저는 조그만 꿈이 있다. MBC 정통 탐사 프로그램 부활을 꿈꾼다. 1시간 내내 성역 없이 가진 자와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부활되기를 꿈꿔 본다"고 말했다.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을 제작한 최승호 PD는 '대외적 상징성 대문에 당장 폐지가 어려운 PD수첩'이라는 문구를 거론하며 "문건이 굉장히 섬세하다. 적어도 김재철 사장을 비롯한 공범자들과의 의견 교환을 통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최 PD는 "국토해양부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그건 방송 내용에 대해서는 법원의 OK 싸인을 받은 것인데도 사측은 임원회의 결정이라며 프로그램 불방 결정을 했다. 하지만 (불방) 통보 한참 전에 타사 국토해양부 출입기자가 부처에서 'PD수첩 불방 결정났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미리 알려줬다. 저는 청와대가 불방 결정을 하고 MBC 임원회의는 형식적으로 추인한 것이라고 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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