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단독]토익640점, 면접 탈락인데도…KAI 채용비리 천태만상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군 관계자, 목사 부인도 연루

자격요건 안 되는데도 합격

면접 점수 등 서류 조작도

20일 검찰에 긴급체포된 하성용(66)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는 KAI의 채용비리에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하 전 사장의 ‘오른팔’로 불렸던 이모(62) KAI 경영지원본부장이 연루된 채용비리의 정점에 하 전 사장이 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이 본부장이 육군본부 시험평가단장이었던 김모 준장(현재 전역)에게 사업 평가 편의를 봐달라고 부탁한 뒤 취업 청탁을 들어준 혐의(뇌물공여)를 포착해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본부장은 자격 미달자 15명을 서류 조작 등으로 정규직 사원에 채용한 혐의(업무방해)도 받고 있다.

김 준장은 이 사건으로 군 검찰에 기소(제3자뇌물수수 혐의 등)돼 재판 중이고, 그의 부하였던 송모 대령은 지난 2016년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들의 재판 과정엔 KAI의 채용비리 의혹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중앙일보

지난 1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된 하성용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전 대표의 모습 [연합뉴스]




토익 640점, 워드 자격증으로 30:1 경쟁률 뚫어

김모씨는 지방 사립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취업준비생이었다. 토익 점수는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비교적 낮은 640점이었고, 학점도 높지 않았다. 자격증은 워드 자격증뿐이었다. 흔히 말하는 ‘취업 스펙’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2013년 30:1의 경쟁률을 뚫고 KAI에 채용됐고, 부당 채용 의혹이 제기됐다. 김 준장과의 ‘하나 건넌 인연’ 때문이다.

김 준장은 ‘봉침 시술’ 과정에서 한 목사와 친분을 쌓았다. 목사의 부인 함모씨는 지인의 아들인 김씨가 취업 준비 중인 사실을 알고 김 준장에게 “KAI 취업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김 준장은 수리온 헬기의 수락시험비행 평가를 담당하는 위치에 있었다. KAI 측과 일종의 ‘갑을관계’였던 셈이다. 수리온 헬기사업은 당시 정부에서 중점 추진하던 국책사업이었고, 수락시험비행 평가는 수리온 사업의 ‘마지막 계단’으로 볼 수 있는 과제였다.

김 준장은 부단장인 송 대령에게 김씨의 취업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송 대령은 “KAI 입사 수준이 서울 중상위권 대학은 돼야하는데 김씨의 경우 지방대라 약해보인다”는 보고를 했다. 김 준장은 2013년 10월 경 송 대령에게 “가능하면 이번에 (김씨가) 입사되는 방향으로 해달라. 안 되면 가능한 방안을 (알아봐달라)”이라는 취지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2011~2015년 KAI의 대졸자 공채에서 사무직에 합격한 276명 중 수도권 대학 출신은 154명, 해외대학 13명, 지방대는 109명이다.

결국 김씨는 KAI 사무직에 최종 합격했고 함씨는 송 대령에게 감사 등의 명목으로 1000만원을 전달했다. 함씨는 검찰 진술에서 “돈은 갚는 것을 전제로 빌려준 것”이라고 진술했다.

‘면접점수 미달’ 군 관계자 아들과 친구까지 KAI 입사
김 준장의 ‘취업 청탁’ 지시를 받은 송 대령은 자신의 아들과 아들 친구 전모씨를 KAI 생산직에 채용되도록 손을 쓴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2013년 KAI 생산직 채용이 진행되기 2~3달 전 KAI 간부에게 두 사람의 이력서를 전달했다. 이 간부는 이력서를 보관하다가 채용이 시작되자 본사 인사팀에 전달했다. 두 사람은 모두 합격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비리’가 포착됐다. 애초 두 사람이 KAI 생산직에 입사할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아들 송씨는 고등학교 성적이 하위 35%였다. 상위 30%가 지원할 수 있다는 요건에 미달했다. 전씨는 면접점수 최저 합격선인 80점에 못미치는 76점을 받았다.

하지만 합격 과정에서 전씨의 면접점수는 ‘76→88점’으로 수정됐고 송씨도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합격에 성공했다.

송씨는 사진학과, 전씨는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생산직 입사에 학과 제한은 없지만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생산자 입사자는 모두 항공과, 기계과이거나 항공고 출신이었다.

지원서에 ‘대졸’ 기재하는 바람에…
김 준장은 함씨로부터 또다른 ‘취업 청탁’을 받았다. 함씨는 ”친구 아들이 수학을 전공했고 KAI 입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J씨 등 2명에 대한 취업을 부탁했다.

김준장은 KAI의 한 간부에게 이력서를 전달하도록 하고, 부하에게 지시해 KAI 인사팀장에게 “단장님의 지인이 KAI에 입사하려고 한다”며 채용 과정 등을 문의하게 했다.

하지만 이들의 KAI 생산직 입사는 문턱에서 ‘좌절’됐다. 이들의 지원 서류에 기재된 ‘4년제 졸업’ 문구 때문이었다. 당시 KAI 생산직군은 고졸, 혹은 전문대 졸업자가 지원할 수 있었다. 실제 J씨는 전문대 졸업자였지만 지원서를 작성할 때 대졸로 잘못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KIA 채용 비리를 총괄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 본부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20일 진행 중이다. 검찰은 하성용 전 대표가 채용비리 과정에서 불법 행위를 공모했는 지 등을 따져본 뒤 20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