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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이명박, 박근혜처럼 '직권남용' 엮일까…검찰이 보는 혐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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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적폐청산' 수면 위로

"이명박·원세훈, 박근혜·최순실 유사 구조"

"직권남용 공모 공동정범 관계 해석 가능"

"MB 직접지시 입증할 물증·진술 확보 관건"

"구체적 지시→국정원 활동 인과 관계 중요"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각종 의혹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당시 국정 총책임자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의 수사의뢰에 따라 검찰이 수사중인 의혹 사건은 크게 세 가지다. MB 국정원의 민간인 사이버 외곽팀(댓글부대) 활동, '박원순 제압 문건', 그리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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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지난 6월 2일서울 삼성동 사무실을 찾아 온 이낙연 국무총리와 대화를 나누던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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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윗선’으로 이 전 대통령이 개입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는데다, 이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고소·고발건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9일 이 전 대통령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했고, 지난 18일 블랙리스트 피해자 조사를 받은 배우 문성근 씨 등도 민·형사 고소를 예고했다.

이 전 대통령의 처벌을 주장하는 쪽은 그의 혐의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공모 공동정범 구도로 보고 있다. 최순실씨가 박 전 대통령과 본인을 위해 ‘불법 행위’를 한 것처럼 원 전 원장이 이와 유사한 역할을 담당했고, 이 전 대통령은 이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에선 직권남용 혐의가 재판을 받고 있는 38명 중 15명에게 적용됐다. 이 중 12명이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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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재임 시절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 공동사진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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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이 원 전 원장의 ‘여론 조작 활동’을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도 있지만 이 전 대통령은 국정원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형법상 직권남용죄가 의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된다. 징역 5년이 법정 최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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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씨 페이스북]


하지만 혐의 입증은 간단치 않다. 먼저 이 전 대통령이 원 전 원장에게 ‘사이버 여론 조작’,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의 활동을 직접 지시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국정원 TF는 “원 전 원장이 이 전 대통령에게 ‘사이버 여론 조작’,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따른 사찰·퇴출 활동 등을 보고했다는 정황과 증거가 여럿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이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은 앞으로 수사 과정에서 이를 입증할 물증·진술 등을 확보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선 지난 7월 말 국정농단 사건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재판을 참고할 만하다. 당시 재판부는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유죄(징역 3년)를 선고하면서 “김 전 실장이 불법적 지시를 정점에서 내리고 실행 계획을 수립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반면,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은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해선 “블랙리스트 집행 등을 직접 지시하거나 보고받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블랙리스트 공범 관계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문체부 보고를 받았을 개연성이 크지만 범행을 지시 또는 지휘했다고 보기 어려워 공범으로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혐의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법조계는 “당시 재판부가 '공무원의 직권남용' 기준을 직접 지시, 계획 수립, 실행 관리 등으로 명확히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이 전 대통령이 원 전 원장으로부터 단순히 보고를 받고 국정원의 활동을 묵인·방조한 수준이라면 직권남용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 직무유기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이 또한 모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면 얼마나 구체적이었는지도 관건이다. 이 전 대통령의 지시와 국정원 활동의 인과 관계를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당시 활동들은 복잡한 단계를 거쳐 실행됐다. ‘원 전 원장 지시→국정원 간부 1차 실행(사이버 외곽팀 구성,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작성)→일선 2차 실행(사이버 여론 조작, 문화·예술계 인사 퇴출 압박)’등의 절차를 거쳤다.

만약 이 전 대통령의 지시가 ‘사이버 공간에서 좌·우의 균형이 무너져 있는 것 같은데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사이버 상에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표현됐다면 직권남용이 적용될 가능성은 낮다. 대통령의 업무 범위가 워낙 넓기 때문에 일반적인 국정운영 방침 전달 정도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은 19일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직후 일부 언론에 “대통령이 그런 보고를 받고 지시할 정도로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윤호진·손국희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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