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문 대통령 추석 선물에 ‘봉하오리쌀’ 빠진 까닭은…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정치BAR_문재인 청와대의 첫 명절

추석선물로 ‘특산물 5종 세트’

참여정부 연상되는 봉하오리쌀

야당 입장 고려 “다음번에 하자”

발송 대상에 사회배려층 늘려

문 대통령 전통술 넣길 원했지만

‘5만원 이하’ 김영란법 따라 제외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내용물에 견줘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이 더 분분한, ‘각별’한 물품이다. 국회의원, 장차관 등 유력인사들은 물론 소외계층에까지 두루 전해지는 상징성에, 제왕적 대통령 시대의 ‘하사품’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회 각계각층 중 누구에게 보냈느냐에 비춰 앞으로 대통령이 펼쳐나갈 정책의 가늠자도 될 수 있다. 물론 대통령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도 녹아든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추석 선물은 이미 알려진 대로 경기 이천 햅쌀, 강원 평창 잣, 경북 예천 참깨, 충북 영동 피호두, 전남 진도 흑미 5종 세트다. 농협중앙회 평가단의 품질우수 추천을 받은 국내산 농산물로만 꾸렸다. “여름휴가를 농촌으로 가자”고 제안했던 문 대통령의 ‘농촌 사랑’이 드러난다. “(특정) 지역 안배보다는, 우리 농어업인 생산 제품을 고루 담는 데 주력했다”고 품목을 선정한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은 밝혔지만,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평창 잣’이 추석 식탁에 오르며 평창올림픽이 화제로 함께 오르길 바라는 마음도 엿보인다. ‘진도 흑미’는 2012년·2015년에도 청와대 추석 선물로 선정된 바 있다.

■ 추석 선물의 ‘정석’은 전국 각지 특산물

각지의 특산물을 고루 섞는 것은 ‘지역감정 극복’을 정치적 화두로 삼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시작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때까지 이어지며 추석 선물의 ‘정석’처럼 자리 잡았다. 2003년 추석 호남의 복분자와 영남의 한과를 묶어 ‘지역 통합’ 선물을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 참여정부 청와대였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충남 서천의 한산 소곡주, 2005년 평양에서 유래된 향토술로 경기 김포에서 빚은 문배주, 2007년 전북 전주 이강주 등 전국 각지의 민속주와 지역 특산물을 함께 보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취임 첫해인 2008년 추석 때 강원 인제 황태, 충남 논산의 대추, 전북 부안 재래 김, 경남 통영 멸치 등 특산물 4종 세트를,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전남 장흥 육포, 경기 가평 잣, 대구 유가 찹쌀 3종 세트를 보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인삼 등 거한 선물을 했다고 하는데,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엔 보다 ‘소박’해졌다. 명절 선물로 늘 멸치를 보내 ‘YS멸치’라는 이름까지 붙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신안 김과 녹차, 한과 등을 즐겨 선물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출신 지역 및 취향이 반영된 경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명절 선물이 차례상에 오른다는 것을 고려해 각 지역 전통주를 선물한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선물에서 주류를 제외해 독실한 기독교인의 색채를 드러냈다.

■ 문 대통령 “예전엔 제사 술도 줬는데”

올 추석 선물 논의 단계 초기엔 선물 후보군에 ‘봉하 오리쌀’이 올랐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다음으로 미뤘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께서 ‘객관적으로 농어민 단체에서 품질로 선정된 것으로 (선택)하자. (정부의 색깔을 드러내는) 깊은 고민은 다음번에 하자’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선물을 받을 야당 의원들을 고려해 참여정부의 상징성이 큰 품목을 피한 것으로 해석된다. 농산물이 선물 아이템으로 결정된 뒤엔 농협중앙회·지역농협 평가단의 추천과 수급 여부를 고려해 총무비서관실이 선정했다. 과거에는 최종 단계에서 여러 시안을 내놓으면 대통령이 하나를 골랐다. 또 대통령의 부인이 관여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김정숙 여사의 경우 추석 선물을 정하는 데 참여하지 않았다.

이번 추석 선물의 최종시안을 처음 받아든 문 대통령의 첫마디가 “술은 어딨느냐?” 였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 매번 전통주를 명절 선물로 받았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술은 (지역별로 넣으려면) 단가가 세서 넣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예전엔 우리 술도 주고 해서 제사 지내는 사람들은 편리하던데…” 하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제정된 뒤 첫 추석을 맞으면서 청와대는 선물 단가를 5만원 이하로 맞추려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 받았냐 못 받았냐, 구설도

선물의 ‘메시지’가 중요해지다 보니 소동도 일어난다. 노무현 정부 때 2006년 청와대 추석선물이었던 각 지역 전통차 세트가 배송대상자 중 수해이재민들에게 걸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선물 품목을 놓고 적절성 논란이 일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설엔 소년소녀 가장에게만 전통주 대신 쌀과 상품권을 보냈다. 이명박 정부 때는 황태를 포함한 추석 선물 세트가 ‘생물을 불가에 보내는 것은 결례’라는 지적이 일면서, 막판에 다기세트로 바꿔 보냈다. 황태의 덕장은 강원 인제이지만, 원산지 명태의 국적이 ‘러시아산’인 게 알려지면서 ‘국내산 농수산물 장려 목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논란에도 휘말렸다.

받고 못받는 것도 논란이 된다. 2016년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추석 선물을 받지 못했다’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그러자 당시 박근혜 청와대는 ‘배송이 늦었을 뿐인데, 받지 않는 것이 더 좋은 모양’이라며 배송을 취소시켰다. 그 무렵 통합진보당 출신의 무소속 윤종오 의원 등도 추석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는데, 당시 청와대는 ‘재판중이거나 기소된 의원들에게는 보내지 않는 원칙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윤 의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지만 기소 전이어서 청와대의 해명이 아귀가 맞지 않았다.

관례적으로 대통령의 추석선물 배송 명단은 비공개이지만, 역대 대통령의 취임 첫해 명절 선물 수량이 대략 1만여개 선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그 정도 선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연평해전·천안함 등 국가유공자, 미혼모나 조손 가정 등 사회적 배려 계층에게 보내는 비중을 대폭 늘렸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도 선물 발송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이던 2014년 추석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명절 인사를 전할 때, “청운동-광화문 길거리에서 추석을 맞을 세월호 유족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달라”고 당부했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