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위 전체회의에서 공개된 문건에는 “심리전 활동은 국가 주요행사에 대비해서 한다”면서 총선과 대선 등의 정치 일정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놓았다. ‘장관님 지침’에는 ‘사이버사령부는 군 통수권자 및 군 지휘부 음해를 저지한다’고 돼 있다. 김 전 장관이 사이버사 활동을 단순히 보고받는 선을 넘어 사실상 작전을 지휘했음을 보여 준다. 문건에는 “국방부, 합참, 기무사, 청와대, 국정원 등과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보안 유지하에 정보를 공유한다”는 대목도 있다. 사이버사가 청와대, 국정원 등과 조직적으로 작전을 수행했음이 일목요연하다.
군의 정치공작 관여도 기가 막힐 일이지만 이런 내용이 축소ㆍ은폐됐다는 점이 더 놀랍다. 2014년 11월 국방부가 발표한 조사결과가 완전히 엉터리였던 셈이다. 당시 군 수사당국은 연제욱ㆍ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을 관리책임 소홀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심리전 단장의 독단적 범행이라고 밝혔다. 김 전 장관에겐 전혀 보고되지 않았으며, 국정원과도 관계없는 일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번 문건 공개로 김 전 장관이 작전을 직접 지휘했고, 국정원과 연계됐으며, 청와대에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얀 것을 검다고 하고, 검은 것을 하얗다며 국민을 철저히 속인 것이다.
국방부는 최근 사이버사의 댓글 공작 진상규명 태스크 포스(TF)를 꾸려 재조사에 들어갔다. 이번 조사에서 사이버사의 대선 개입 실체 규명과 함께 박근혜 정부 당시 군의 축소수사에 대해서도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사이버사의 선거 개입은 공작 시점과 인터넷이라는 활동 공간, 야당 대선후보 비방 방식 등에서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거의 일치한다. 청와대의 묵인이나 지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 확인도 불가피해졌다. 군의 대선 개입은 민주주의를 파괴한 군기문란 사건이다. 다시는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실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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