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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탈원전’의 길 찾기](6)전력설비 남아돌아…신고리 5·6호기 건설명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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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수급 영향 없다

원자력발전소의 건설 목적은 ‘전력 생산’이다. 건설인력 투입과 국가 보조금 지급 등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는 부차적인 사안이다. 신고리 5·6호기 역시 국내 전력소비량이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건설계획이 잡혔다. 무엇보다 전력수요 관리보다는 공급 위주의 전력 정책을 편 게 원전 건설을 부추겼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하면서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미래 전력수요 전망치가 과거보다 대폭 낮아지면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명분은 점차 동력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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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준공 목표는 각각 2021년 3월, 2022년 3월이다. 건설이 중단된다고 해서 당장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길 일은 없다는 것이다. 올해 여름철 전력수요 실적만 봐도 현재로선 전력공급 여유가 충분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17일 전력거래소의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최대 전력수요량은 84.59GW(7월21일)였다. 전체 발전설비 용량(올해 약 113GW) 가운데 가동되지 않은 발전설비 비중은 34.0%였다.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철에 발전설비 예비율이 30%를 넘어선 것은 14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는 2년 전 7차 수급계획을 통해 2029년까지 22%의 설비 예비율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는데 올해 이미 이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다시 말해 신고리 5·6호기가 없어도 현재 발전설비 여유는 충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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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결과는 전력수요 증가분보다 더 많은 전력을 공급할 설비가 갖춰졌기 때문이다. 최근 1년간 발전기 4기가 폐지되면서 1.24GW의 공급이 줄었다. 하지만 신고리 3호기(1.4GW), 태안 화력 9호기(1.05GW) 발전소 15기가 새롭게 가동하며 발전설비가 13GW 정도 늘었다.

7차 수급계획 때 전력수요 전망치를 높게 잡으면서 앞으로도 전력설비는 계속 늘어나게 된다. 올해에만 신고리 4호기와 화력발전 등을 포함, 총 4기(3.5GW)가 들어선다. 2022년까지 지어질 발전소는 신고리 5·6호기를 제외해도 원전을 포함, 총 17기로 전력공급량은 15GW에 달한다. 여기에 2030년까지 전체 발전 비중의 20%를 신재생에너지로 채우겠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전기부족 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는 신고리 5·6호기가 없어도 5년 후인 2022년엔 5GW의 전력설비가 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수요관리는 외면한 채 공급 위주의 정책을 펴온 시스템을 바로잡을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신고리 5·6호기가 반영된 7차 수급계획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전체 발전설비 용량은 130GW다. 신고리 5·6호기의 발전용량은 각각 1.4GW로, 전체 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에 불과하다. 하지만 올해 안에 나올 8차 수급계획에선 전력수요 전망치가 과거보다 큰 폭으로 낮아져 신고리 5·6호기 건설 명분은 더욱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8차 수급계획 작성에 참여하는 민간 자문가 그룹 ‘수요계획 실무소위원회’가 지난 15일 공개한 전력수요 전망치는 2030년 기준 100.5GW다. 7차 수급계획보다 12.7GW를 더 낮게 잡았다. 이를 1.4GW인 신고리 5호기에 대입하면 원전 9기를 더 지을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날 공개된 전망치는 지난 7월 나온 초안(101.9GW)보다도 1.4GW 줄었다. 초안이 나왔을 때 원자력계에선 전력수요 전망치를 너무 낮게 잡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발 여론 때문에 수요 전망치가 소폭 오를 것이란 예상도 나왔지만, 결과는 오히려 더 줄어든 셈이다. 초안보다 수요 전망치가 감소한 것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재전망(2.47%→2.43%)되면서 0.4GW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 또한 누진제 개편 효과를 제외하면서 0.6GW가 더 감소했다. 누진제 개편으로 인한 전력수요 증가 효과는 일시적인 것으로 “시간이 갈수록 누진제 개편의 체감도가 떨어지면서 수요 증가 효과도 사라진다”고 소위원회는 설명했다. 여기에다 수요관리(DR) 목표량 확대로 0.4GW가 더 줄었다. DR시장 제도는 사전에 계약을 맺은 기업들에 필요시 전력사용 감축을 지시하는 대신 이에 따른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부는 이 제도를 일반 가정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그간 정부는 전기수요 최대치에 맞춰 발전설비를 계속 늘려왔다. 전기수요를 잘못 예측하는 바람에 터진 2011년 순환정전 같은 사태를 막자는 취지였다. 그 결과 전기수요 성수기와 비성수기 간 전력사용량 격차가 2003년 20.5GW에서 지난해 37.1GW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력사용량 격차가 커지면 그만큼 비성수기 때 노는 발전설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경제급전’ 원칙(가격이 싼 발전원부터 가동을 시작)하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이용률이 계속 떨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는 설비를 짓는 데 수조원을 투자한 발전기업의 손해로 이어지고, 결국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 추진에도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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