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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악몽이 된 중국시장, 문제는 ‘사드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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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 결국 사업 접기로… 수출시장 다변화 시급



‘차이나드림’은 한국 기업에 이제 ‘악몽’이 된 걸까. 진출만 하면 13억 인구의 거대 내수시장에서 승승장구한다던 낙관론은 이제 옛말이 됐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직격탄을 맞아왔던 롯데가 결국 중국에서 롯데마트 사업을 접기로 했다.

롯데가 던진 충격파에 시장은 뒤숭숭하다. 그간 롯데는 “중국 시장 포기는 없다”며 롯데마트 철수설을 부인해 왔지만, 지난 3월 이후 반 년 넘게 중국 내 매장 대다수가 강제 영업정지되면서 피해액이 불어나자 결국 손을 떼기로 했다. 롯데는 지난해 11월 경북 성주에 있는 골프장 ‘롯데스카이힐 성주CC’를 주한미군 사드 부지로 제공하기로 국방부와 협약을 맺은 뒤부터 영업정지 등의 제재를 받아 왔다.

롯데의 사업 철수는 이대로 버티기에는 상황이 나아질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드 갈등 이전부터 중국 진출 유통기업들이 시장 포화로 부진을 겪어온 데다, 예상치 못한 중국의 사드 보복이 치명타가 된 것이다. 롯데보다 먼저 사업 철수를 결정한 이마트도 2010년 초반 26개까지 늘어났던 점포를 올해 초 6개까지 줄였고,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영업적자만 1500억원에 달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양국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최근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로 양국관계는 더욱 얼어붙었다. 한·중수교 이래로 한국 기업들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셈인데, ‘사드 혹한기’만 지나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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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보복, 이제까지는 예고편?

“한·중관계는 고도화돼 있다. 쉽게 경제보복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황교안 전 국무총리) “전면적인 경제보복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유일호 전 부총리) “(피해를)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사드 배치를 추진했던 박근혜 정부 당시 정책결정권자들의 ‘낙관’과 달리, 올해 3월부터 본격화된 중국의 사드 보복은 예상보다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기업들은 아우성이다. 당장 중국에서 현대·기아차 판매는 반토막이 났고, 공장 가동과 중단을 반복하며 버티는 중이다. 한국산 화장품과 식품 등 소비재 분야와 유통·서비스업계는 물론 반 년 넘게 이어지는 중국의 ‘금한령(禁韓令·한국 단체관광 금지)’으로 여행업계 및 면세점도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매출의 80%를 차지했던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며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단숨에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최근 면세점과 인천공항공사가 임대료를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 역시 매출 감소로 면세점들이 생사의 기로에 몰렸기 때문이다. 인천공항공사에 사실상 임대료 인하 ‘최후통첩’을 보낸 롯데면세점의 경우 사드 보복 여파로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74억원)이 지난해 상반기(2326억원)보다 97% 급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의 외교·안보 자문그룹에서 활동했던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를 총 7단계로 봤다. 일단 외교적 비난(1단계)부터 시작해 비자 발급 제한(2단계), 단체관광객 통제 및 한류콘텐츠 유통 제한(3단계) 등 ‘여론전’ 차원의 제재가 있다. 이후에는 보다 직접적인 제재인데, 위생점검 등 비관세 제재(4단계), 세무조사 등 한국 기업에 대한 직접 제재(5단계), 자본시장 철수(6단계), 수출입 통제(7단계) 등이다. 이 단계 분류에 따르면 중국의 보복조치는 14개월 만에 5단계 수준까지 와 있는 셈인데,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내내 중국의 경제보복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피해규모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5%인 8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예상되는 중국의 피해는 1조1000억원으로, 경제규모에 따라 손해가 중국 명목 GDP의 0.01%에 그쳤다. 한국기업의 피해 중 관광분야가 7조1000억원으로 가장 크고, 수출은 1조4000억원, 문화·콘텐츠 피해는 87억원 수준으로 차이가 컸다.

■대중 수출 아직 호조라지만…

이런 차이는 대중국 수출 지표가 아직까지 나쁘지 않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현지 진출 기업들은 아우성이지만, 14개월간 지속된 중국의 보복조치에도 지난 3년간 감소세를 보여온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은 올해 들어 오히려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대중국 수출은 지난 8월 15.6%의 증가율을 기록해 2014년 4월 이후 40개월 만에 10개월 연속 증가했다. 신형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며 반도체 및 석유·화학제품의 수출이 증가한 영향이다. 2위 일본에 바짝 추격당하고는 있지만 한국은 올해 상반기 중국 최대 수입국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사드 이후 대중국 수출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 같은 수출 호조를 “올해 들어 중국의 수출이 증가세로 전환하면서 우리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드 배치에 따른 대중 수출에의 영향은 자동차부품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크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대중 수출 가운데 75%가량이 중간재 수출이며 소비재의 비중은 5.6%에 불과하다. 대중 수출이 계속 증가한 이유 역시 사드 보복의 직격탄을 맞은 화장품 등 소비재 수출 비중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중간재에 대한 전면적인 수입규제는 중국 입장에서도 자국기업의 제품 생산에 큰 타격이기 때문에 피해가 소비재 및 유통·서비스 분야에 제한된 것이다.

그러나 사드가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인 대중 수출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신현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의 대중 수출 확대가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일부 품목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반도체의 경우 국제 수급상황 변화에 따른 변동성이 비교적 심한 편이어서 수출의 안정성 측면에서 높은 수출의존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석유 관련 제품도 하반기 유가 안정세로 증가율이 크게 둔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산업 고도화를 추진 중인 중국이 중간재 국산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 장기적 불안요인이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추진해온 ‘홍색공급망(紅色供給網·red supply chain)’ 정책을 지난해부터 부쩍 강화하고 있다. 홍색공급망이란 중국이 수입 중간재 대신 부품소재를 국산화해 완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정책으로, 이는 대중국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에는 큰 타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수출 가운데 소재부품 수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 50.8%로, 이 가운데 중국 수출 비중이 35%에 달했다. 지난해 대중국 소재부품 수출은 827억 달러로 전년 대비 11.5% 감소했는데, 이는 지난해 전체 대중국 수출 감소율(-9.2%)보다도 컸다. 여기엔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로 인한 수입 감소도 있지만, 중국 정부가 홍색공급망 정책에 속도를 낸 요인도 컸다. 2000년 32.7%에 불과했던 중국의 현지 조달률은 지난 2015년 기준 44.0%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이에 맞물려 중국의 중간재 수입 비중은 2000년 63.9%에서 2015년 53.4%까지 떨어졌다.

■‘반도체 굴기’ 앞세운 중국 기업의 추격

특히 ‘반도체 국산화’는 중국의 홍색공급망 구축의 핵심이다. ‘반도체 굴기’를 앞세운 중국 기업의 추격도 심상치 않다. 이미 2015년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산업 육성을 내걸었던 중국 정부는 10년간 1조 위안(약 161조원)을 투입해 현재 10%대인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을 갖고 있다. 여기에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한국이다. 5년 이후에는 중국이 반도체시장에서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900억 달러(약 101조원)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수출 단일품목으로는 사상 최고액이다. 이렇듯 한국 반도체는 수출 역사를 다시 쓰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한·중 간 반도체 기술은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부문에서만 2~3년의 격차를 보일 뿐 대부분은 1~2년으로 단축된 상태다.

문병기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나서면서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시스템 반도체에서 메모리 반도체까지 모든 영역에서 우수한 인재를 스카우트해 가고 있다”면서 “올해 사상 최대의 수출실적에도 한국은 비메모리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추격이 매서워 향후 지속적인 경쟁력 보유를 낙관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 경제가 ‘중국 의존’, ‘반도체 독주’라는 기형적인 수출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현수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이번 사드 관련 제재를 중국 시장에 대한 지나친 무역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면서 “사드가 아니더라도 이미 중국 시장은 경제구조의 변화로 과거와 같은 높은 수출증가세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수출 확대를 위해서는 수출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 3년 만에 ‘무역 1조 달러 시대’에 재진입할 수 있다”며 벌써부터 장밋빛 전망을 내고 있지만, 특정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경기 하강 국면에 받을 타격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이미 조선·해운산업의 동반 몰락에서 이를 경험한 바 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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