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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독박육아' 부담에 사회와 단절… 참극 부르는 주부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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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자녀 살해사건 왜? / 서울서 40대 여성 아들·딸 살해 / “내가 죽으면 아이들도 죽은 목숨” / 전문가, 한국적 가족문화가 원인 / 일부 주부들 우울증 자각도 못해 / 산모 우울증 치료도 1%에 불과 / 국가 차원 관리 프로그램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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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앓거나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주부들의 자녀 살해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다. 올 들어서만 이같이 희생된 어린이가 10명에 육박하면서 사회문제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의 목숨을 빼앗은 뒤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 우울증 주부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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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주부들 자녀 살해 사건 잇따라

14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서대문구 A(44)씨의 아파트에서 A씨가 딸(11)과 아들(7)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다. A씨는 범행 후 자해했지만 뒤늦게 귀가한 남편이 발견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우울증 치료를 받아 온 A씨는 평소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10일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의 한 아파트에서도 이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우울증을 앓던 B(42)씨가 딸(6)과 아들(4)을 살해한 뒤 온몸에 피를 묻힌 채 자해를 하다가 출장을 다녀오던 남편에 발견됐다.

지난 2월 울산에선 “아이들이 세균성 뇌수막염에 걸려 성격이 변했다. 더 살아도 정상적으로 크기 힘들 것 같다”는 망상과 우울증에 빠진 주부 C(36)씨가 두 아들을 차례로 살해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정부 차원의 공식통계는 없지만 서울경찰청의 정성국 박사 논문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부모의 자녀 살해로 208명이 숨졌다. 상당수는 우울증 부모에 의한 범행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9세 이하 123명(59.1%), 10대 58명(27.9%)으로 20세 미만이 전체의 87.0%에 달했다. 전체 가해자 222명 중 30대 95명(42.8%), 40대 78명(35.1%)으로 30∼40대가 77.9%를 차지했다. 자녀를 살해한 부모는 범행 후 46% 정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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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부담에 따른 우울증 심각

우울증에 걸린 주부가 자녀를 살해하는 데는 “자녀는 내 것, 내가 죽으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라는 한국적 가족문화가 배경에 깔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때문에 겉보기에는 동반자살 형태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실제로는 판단력이 미약한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에 불과하다. 경찰 관계자는 “본인은 동반자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론 죽음의 의미를 잘 모르는 아이들을 꼬드긴 살해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울증 주부의 자녀 살해는 근본적으로는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치료도 어려운 사회적 환경이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독박 육아’라는 말에서 보듯 육아에 따른 부담이 주부에게 지워져 있고 사회 경력단절 등 개인 정체감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육아 관련 인터넷 카페를 들어가보면 산후우울증을 호소하는 글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다른 가족들은 아이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중요한 산모에 대한 관심을 놓치게 되고 이 때문에 산모들끼리 “힘들다”, “우울하다”며 심정을 토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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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 관리 서둘러야

주부가 우울증에 걸린지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울증은 흥미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기운이 없는 등의 증상이 있지만 가벼운 의욕상실 정도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정부 차원의 관리 또한 소홀하기 짝이 없다.

산후 우울증에 자녀를 살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정부는 산후우울증 통계를 작성하지 않다가 올 들어 처음으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여성이 결혼해 아이를 낳을 때 산후 우울증이나 이후 육아과정에서의 스트레스로 육아 우울증이 생길 수 있고 이때 자아실현이 좌절되는 감정을 많이 받는 듯하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관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죄를 저지른 여성들을 보면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고 남편과의 갈등이 있는 경우가 많다”며 “어떻게 보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데 같은 처지에 있는 엄마들이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위안을 나누는 모임을 만드는 게 일종의 사회적 안전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현준·남정훈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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