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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베네수엘라, 脫 달러 시동···원유·석유제품 수출입 대금 '다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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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양 주먹 쥔 마두로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베네수엘라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신규 국채 매입 금지 등 금융 제재 조치에 맞서 원유·석유제품 수출입 대금 결제에 더 이상 달러화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는 등 달러 의존도를 줄여나가기로 했다.

13일(현지시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밝히고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출 업자들이 송장(invoices)을 유로화로 바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장은 수출업자들이 계약조건을 정확히 이행했음을 증명하는 문서로 대금청구서의 역할을 한다. 상품명 및 수량, 단가, 품질 등 거래상품의 주요사항, 인도조건 및 지급조건 등이 적시돼 있다.

이 소식통은 베네수엘라의 대표적 국영석유기업인 페트로레오스(PdVSA)도 합작 파트너들을 상대로 은행에 유로화 계좌를 트고, 보유 중인 달러 현금도 유로화로 바꾸도록 요청한 사실도 전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아울러 수입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달러화 경매(auctions)도 중단했으며, 아시아와 유럽의 소규모 금융사들과 달러 부채를 유로화 등 여러 통화로 재구성하기 위한 상담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야당 인사들을 감옥에 보내는 등 독재로 치닫는 마두로 정부를 상대로 지난달 부과한 금융제재를 우회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WSJ은 전했다. 보유 통화 바스켓을 유로화 등으로 확대해 달러 의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금융제재는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베네수엘라 정부나 국영기업이 새로 발행한 채권을 사들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마두로 정부는 이러한 탈(脫)달러화 정책을 아직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트럼프 정부의 제재조치에 맞서 이미 이러한 의중을 내비친 바 있다고 WSJ은 전했다. 마두로 정부는 당시 국영 언론을 총동원해 이 제재 조치를 과거 쿠바를 겨냥한 미국의 ‘경제 봉쇄(blockade)에 빗대며 맞대응을 경고한바 있다. 마두로 대통령의 오른팔로 알려진 타렉 엘 아이사미 부통령은 “경제 봉쇄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바스켓을 구축할 것”이라며 “이러한 조치는 우리를 달러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수출입 결제 통화에서 달러화를 제외하는 조치가 실효성을 지닐 지는 의문이라고 WSJ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평가했다. 베네수엘라의 대미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 자원 부국은 원유를 수출해 경화의 95%를 벌어들이고 있으며, 수출은 대부분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경화는 달러, 유로화, 엔화, 파운드를 비롯해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화폐를 뜻한다.

노무라증권의 채권담당 애널리스트인 시오브한 모덴은 “국내 지지자들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해 어떤 선전선동도 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선동이 미국을 겨냥한 맞보복 조치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노림수는 결국 그들의 발등을 찍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이번 조치는 환전 등 거래 비용을 높일 뿐 실익이 없다”고 덧붙였다.

카라카스에 있는 컨설팅업체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의 헨켈 가르시아 이코노미스트는 “유로화를 운용하는 것은 차선의 선택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들이 러시아 루블화나 중국 위안화로 옮겨가겠다고 말할 때, 그것은 반 제국주의 선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두로 정부가 해외 자산 몰수 등 미국의 추가 금융제재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진단은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의 추가 제재 등을 염두에 두고 지지층을 결속하기 위해 이번 카드를 끄집어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마두로 대통령은 집권 이후 미국 시장에서 벗어나 교역 대상국을 확대하고, 러시아 루블화, 중국의 위안화, 인도의 루피아화 등으로 통화 바스켓을 구성해 수입업체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직 원유 금수 조치는 시행하지 않고 있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후계자인 마두로 대통령은 버스 운전사에서 노조 지도자,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지난 대선에서 야권 통합후보인 엔리케 카프릴레스에 1.5%포인트 차로 신승을 거뒀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조야를 쥐락펴락하며 장기집권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에 필적할만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이 부임한 이후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이 무려 27% 쪼그라든 데다, 올 들어 식료품과 의약품 부족 사태로 길거리 시위가 연일 격화되는 등 정정불안이 확산되면서 퇴진 압박에 시달려 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 상승률이 무려 720%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올해말 국채 35억달러 어치의 만기를 맞는다.

yungh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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