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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MBC 경영진, 국정원 ‘방송장악’ 시나리오 충실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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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조, ‘국정원 MBC 장악 문건’ 구체 사례 증언

“김제동·윤도현 출연 배제되고 소속사는 세무조사

김여진은 사규 만들어 방송 닷새 전 출연 무산시켜”

“김형석·서민·문성근·이하늬·표창원 등

박근혜 정부 때도 블랙리스트 실행 이어져

‘무한도전’에 창조경제 홍보 외압도”



한겨레

14일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가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MBC) 사옥에서 ‘국정원 문화방송 장악 시도’ 폭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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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MBC) 경영진이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의 방송장악 계획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는 구체적 증언이 나왔다. 또 문화방송에 특정 출연자를 배제하는 자체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14일 오전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노조)는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1일 국정원 개혁발전위가 발표한 자료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엠비시에 가해진 수많은 탄압과 간섭이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국가 정보기관이 동원돼 군사작전처럼 실행된 사실이 드러났다”며 “특히 2010년 3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지시로 작성된 ‘엠비시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은 실제로 이 문건대로 실행이 됐다”고 밝혔다. 국정원 개혁발전위가 11일 발표한 자료에는 이 문건을 포함해 △특정 연예인 진행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교체 유도(2010년 2월) △문화방송 대상 정부 비판 연예인의 출연 가능성 원천 차단 및 정부 비판 연예인 출연 프로그램 폐지 유도(2010년 3월) △문화방송 특정 문화·연예계 출연인물 퇴출 유도-특정 출연 인물을 전보 및 하차시키고, 사규에 출연제한 근거규정 마련(2011년 8월) 등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문화방송을 특정해 작성한 문건이 여러 건 포함돼있다.

노조는 이를 바탕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를 이날 공개했다. 대표적으로 가수 윤도현씨는 2011년 가을 라디오 프로그램 <두시의 데이트>에서 하차했다. 같은 해 방송인 김어준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색다른 상담소>가 퇴출됐다. 김미화씨도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그만뒀다. 노조는 “김제동·윤도현씨가 소속된 기획사가 두 차례 세무조사를 받은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좀 더 구체적인 증언을 내놨다. 조준묵 피디는 “2009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오마이텐트>를 기획해서 연출했다. 코미디언 김제동씨가 출연하고 가수 윤도현씨가 내레이션을 맡았는데 시청률 13% 나올 정도로 반응이 좋았지만 정규편성이 되지 않았다. 2010년 이후 간부들은 ‘기획이 모호하다’고 했고, 출연자·내레이션을 바꾸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한재희 피디는 “2011년 7월 <손석희의 시선집중> 고정 코너로 배우 김여진씨를 출연시켜 색다른 기획을 하려했다. 그런데 회사는 정치적 입장을 밝힌 출연자의 출연을 막는다는 사규를 만들여 김씨의 출연을 닷새 전 무산시켰다”고 밝혔다.

한편, 노조는 박근혜 정부 때도 교양·예능·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제작자율성 침해·특정 출연자 배제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최행호 피디는 “제작진이 유시민 작가를 2013년 <황금어장>에 섭외하려 했다. 하지만 담당 본부장이 ‘위에서 반대가 심하다’고 면담을 해왔고, 녹화가 취소됐다”며 “김형석씨도 <복면가왕> 시작부터 함께했지만, 경영진의 부당한 요구로 하차했다”고 설명했다. 그밖에도 서민 단국대 교수가 진보적 칼럼을 쓴다는 이유로 2014년 교양제작국장의 지시로 <컬투의 베란다쇼>에서 하차했고, 배우 문성근·이하늬씨와 2012년 파업에 참여한 뒤 퇴사한 오상진·박혜진 아나운서도 이유없이 출연배제를 당했다고 설명했다. 김철영 노조 편제부문 부위원장은 “<시사매거진2580>에서 2015년 2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선되기 전, 범죄심리학 자문을 받으려고 인터뷰를 했지만 방송문화진흥회 이사가 탐탁찮게 본다는 이유로 방송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창조경제를 홍보해달라는 외압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 피디는 “정부 관계자가 ‘창조경제를 홍보할 수 있도록 <무한도전>에서 방송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1년 가까이 의사를 전달했다. <무한도전> 제작진은 이를 거부했지만, 정부·청와대 관계자는 담당 보직부장을 창조경제 홍보관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김장겸 문화방송 사장도 보도본부장 시절 출연자 배제 지시를 했다고 설명했다. 문화방송은 2016년 총선을 대비해 토론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당시 제작진은 토론자로 유시민 작가·전원책 변호사 섭외를 제안했다. 그러자 김 사장이 이를 거절하며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고문을 토론 프로그램에 추천했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출연자뿐만 아니라 방송 주제에도 적용됐다. 노조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세월호’, ’촛불집회’ 관련 이슈가 배제 또는 삭제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해피피라미드 333> 제작진은 배구선수 김연경씨가 경기도 안산의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찾은 모습을 촬영했다. 노조는 당시 보직간부가 “방송 후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며 세월호 관련 부분 수정을 지시했고, 결국 자막 중 ‘진실 인양’이라는 부분이 삭제됐다고 전했다.

노조는 ‘국정원 문화방송 장악’ 논란의 관련자들을 향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김연국 노조위원장은 “국정원·문화방송 간부 등 관련자들을 국정원법 위반·직권남용·방송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법적 대응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피해자들과도 접촉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 개혁위원회에게 방송 관련 불법행위가 담긴 문건들을 공개해달라고 정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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